6-1
제6화 이 편지가 닿을 때쯤에는
By the Time This Letter Reaches You
비
......
아오토
오리베와 교실에서 치고받은 후, 나는 다친 곳도 회복할 겸 일 주일 간 자택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오리베는 출석 정지 처분을 받았고, 후와는 다시 등교하지 않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원래 학교에 오는 날이 더 적은 녀석들이었으니 이 정도의 처분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을 것이다.
하아...
...편지, 잘 읽어 줬을지 모르겠네. 오해가 풀렸으면 좋을 텐데. 결국 미쿠가 편지 보냈는지도 못 물어봤고... 답답하다.
「미쿠와 사귀게 되었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급하게 편지를 쓰긴 했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빨리 써야만 한다는 초조함에 제대로 퇴고하지도 않고 그대로 보내고 말았다.
...이럴 때 전화가 되면 금방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번호를 알고 있었다면 애초에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겠지...
설령 그 아이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고 해도. 나는 과연 그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편지처럼 말을 고를 수도 없고, 숨기는 일이 있다면 금방 들킬 거다. 그 아이는 평소에는 둔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민감했으니까.
비
......
아오토
비도 역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겠지. 난 결국 겁쟁이야. 그 아이한테 진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무서워서, 또 떠나버리는 것이 무서워서.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질질 끌고만 있어.
비
......
아오토
하하, 미쿠가 들으면 질려하겠다. 또 그런 걸로 고민하고 있는 거냐고.
...저기, 비. 나 말야, 그 아이가 엄청 소중하고, 잃고 싶지 않아. 비도, 미쿠도, 카이도, 할머니도. 모두가 소중하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하지만 그 아이는 특별해. 그래서 괜히 더 무서운 것 같아. 그 아이가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게.
비
......
아오토
사람이란 뭔가를 좋아하기는 힘들지만 싫어하는 건 간단하잖아?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상대도 똑같이 좋아할 것인지는 알 수 없어. 그래서 나는 소중한 사람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게 두려운 것 같아. 조금이라도 삐끗했다간, 사람은 너무 쉽게 사람을 미워하게 되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쉽게 헤어지게 되니까. 쓸데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지.
비
......
아오토
...뭐래냐. 항상 비한테는 이상한 소리만 하네. 미안해.
신경쓰지 마, 라고 말하는 듯이 비가 한쪽 발을 들어 보이자, 나는 무심코 웃어버리고 말았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그 아이에게 연락하지도 못하고. 시간이 가는 것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던 나는 초조함을 품고 눈을 감았다.
덥다...
그때의 싸움으로 입은 상처는 완전히 나았고, 3일이나 틀어박혀 있었더니 슬슬 지겨워졌다. 마침 항상 쓰던 편지지가 떨어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살짝 쇼핑을 하러 나가기로 했다.
아오토
으아! 할머니, 우체통 안 열어봤구나. 아무리 그래도 광고지 양 엄청난걸...
땅 위로 흘러내린 종이를 줍던 나는 그 안에서 익숙한 색깔을 발견하고 손을 멈췄다. 쾌청한 하늘을 베어낸 듯한, 그 아이가 사용하는 봉투. 나는 그것을 주워든 후 급하게 집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안녕하세요, 머지 않아 여름방학이네요.
편지 잘 읽었어요. 미쿠도 편지에 적었는데, 뭔가 엄청난 일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돌이켜보면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잘 읽어보니 평소의 미쿠랑 다른 부분도 있었어요.
저도 성급하게 그런 편지를 써 버려서 미안해요.
아오토
...다행이다. 오해는 잘 풀린 모양이야.
조심조심 열어본 편지에 적혀 있던 내용을 본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걸로 만사 해결이네, 라고 생각한 순간, 내 안도를 뒤엎는 듯한 말이 한 줄을 비우고 주루룩 이어져 있었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당신에게 전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요.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사실은 아버지의 회사 사정으로 큐슈 쪽에 이사하게 됐어요.
오로노시마라는 작고 외딴 섬인데, 하루에 페리가 1~2 척밖에 없는 엄청 한적한 곳이에요.
그래서 이사가기 전에... 여름방학 때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했는데요...
지금은 만나려고 하면 노력해서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요.
또 멀리로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슬펐지만, 그런 때에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정말로 기뻤어요. 물론 놀라긴 했지만요, 그 이상으로 마음이 놓였다고 할까요.
제가 먼 곳으로 떠난다고 해도 분명 두 사람이라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이 웃으며 지내줄 수 있다면 저도 행복하니까요.
저는 두 사람이 정말 좋아요. 그러니 둘이 함께 행복한 채라면 저도 슬프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멀리 떠나서 계속 만나지도 못하고, 만약 두 사람이 저를 잊는다면
그건 조금... 외롭겠네요.
아, 이상한 이야기를 적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마지막이니까요. 너그럽게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사 예정일이 앞당겨져서 7월 14일 마지막 기차로 도쿄를 떠날 예정이에요.
그러면 잘 지내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당신을 생각할게요.
아오토
이사라고... 큐슈? 왜 그런 중요한 일을...
분명 그 아이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했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버리는 미래는 바꿀 수 없다고 해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만이라도 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거절하고, 그때 오리베가 거짓말로 문자를 보냈을 때. 그 아이는 모든 걸 포기해 버렸다. 나와, 우리와 만나는 것을.
7월 14일이라니... 오늘이잖아!
달력에 표시된 날짜는 편지에 적혀 있던 날짜, 바로 그 날이었다. 나는 편지를 손에 쥔 채 거의 충동적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그 아이가 포기해 버린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건 싫어.
그때와 마찬가지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헤어져 버리는 건 싫어.
그 옛날 내가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만으로 말이다.
6-2
달렸다. 계속 달렸다. 만나지 못한 채 헤어진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고 마음 어디선가 확신이 들었다.
아오토
으악!
카이
아야... 아오토?
아오토
카이... 랑, 미쿠. 미안해. 나 지금 서두르는 중이라.
카이
야, 기다려! 너 뭔가 이상해. 무슨 일 있었어?
말을 나눌 시간조차 아까워서 짧은 대답만을 남기고 사라지려는 아오토의 팔을 카이가 붙잡아 억지로 멈춰세웠다. 아오토가 카이를 뿌리치려고 한 순간, 미쿠가 조용히 아오토 앞에 섰다.
미쿠
...그 아이한테 가려는 거야?
아오토
어...? 어, 어떻게...
미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역으로 가는 방향이고, 쇼핑하러 갈 때는 안 가는 길이니까. 애초에 우리가 몇 년이나 친구였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정도는 금방 알 수 있거든.
아오토
...못 당하겠네.
응, 맞아.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미쿠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후회할 만한 뭔가가 있는 거구나.
아오토
...응.
미쿠
...그렇구나.
납득한 듯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미쿠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카이도 뭔가를 눈치챈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
...그래서, 지갑도 없이 도쿄까지 달려가겠다 이거냐?
아오토
......
...까먹었어. 진짜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튼 빨리 가야 한다는 마음만으로..
카이
진짜 못 말리겠구만...
자, 지갑 빌려줄게. 나중에 꼭 돌려줘.
아오토
뭐? 하, 하지만……
카이
급한 거 아니었어? 대신에 다 끝나면 이야기 제대로 들려줘야 된다.
미쿠
아오토, 나도 갈래.
아오토
뭐? 왜 미쿠까지...
미쿠
나도 그 아이랑 만나고 싶은걸. 아오토한테 거부권은 없어.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라는 아오토를 향해 미쿠가 당연하다는 듯이 선언했다. 그 말과 표정에서 뭐라 말하기 힘든 압력을 느낀 아오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
그럼 정해진 거네. 지금부터 가면 밤에는 아슬아슬하게 도쿄에 도착할 거야, 아마도.
미쿠
그러게. 가자, 아오토!
아오토
어, 응...
카이! 고마워. 돌아오면 지갑 꼭 돌려주러 갈게!
카이
그래! 둘 다 조심해라!
하아...하여간. 잘 되어야 할 텐데... 힘내라, 아오토.
달린다. 계속 달린다.
심장은 찢어질 듯이 고동치고 있었고 폐도, 옆구리도, 다리도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두 사람은 계속해서 달렸다. 그 아이를 반드시 만나겠다는 마음 하나를 힘으로 바꿔서.
오리베
와, 청춘이네. 그렇지 않아? 퍼 씨.
후와
......
정신없이 달리는 아오토와 미쿠를 멀리서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발 아래에는 척 봐도 질이 나빠 보이는 불량학생들이 뒹구는 채였다.
오리베
그나저나, 한번은 이 마을에서 떠났던 이 녀석들이 복수 따위를 하겠다면서 돌아올 줄이야. 평범한 일반인한테 농락당한 끝에 경찰 신세를 지는 꼴이 된 것이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네.
후와
몰라. 목적이 뭐든 쓰레기들은 빨리 쓸어버리는 것이 좋다.
오리베
「다시는 이 마을에 접근하지 않는 대신 이번만은 봐 주지」
라고 이런 녀석들한테도 퍼 씨가 자비를 베풀었는데 말야. 나 슬프다 진짜.
후와
쓸데없는 입 놀릴 시간 있으면 빨리 이 거슬리는 녀석들 치워.
오리베
알았어. 퍼 씨는 사람 진짜 험하게 쓴다니까...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거린 오리베가 고개를 들자, 마침 신호를 기다리느라 멈춰 있던 아오토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서 봐도 경계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그 표정을 본 오리베는 가볍게 손을 흔든 후 그를 등졌다.
미쿠
아오토? 왜 그ㄹ... 저거 오리베 군이랑 후와 군?
아오토
…… 신경쓸 거 없어. 가자, 미쿠.
미쿠
아, 응!
안내 방송
...3번선 열차 곧 출발합니다. 조심하세요.
아오토
...!
미쿠
조금만 더...!
들려오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마지막 계단을 몇 단씩 뛰어올랐다.
그리고...
아오토
겨...
아오토, 미쿠
겨우 탔어...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전차에 올라탄 아오토와 미쿠는 문 앞에서 쓰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6-3
아오토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는 전차 안,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서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산그림자와 산기슭에 펼쳐진 시골 마을 풍경. 변하지 않는 풍경은 마지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미쿠
...이렇게 전차로 멀리 가는 거 말야.
아오토
문득 옆에서 똑같이 바깥을 바라보던 미쿠가 말을 꺼내자, 나는 귀를 기울였다.
미쿠
부활동 원정 경기 때는 가끔 있었지만, 그 외에는 처음인 것 같아. 심지어 도쿄라니.
아오토
...응, 나도.
대화가 끊어졌다. 다시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끼익대는 전차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퍼졌다.
...저기, 미쿠.
미쿠
뭐야?
아오토
왜 따라온 거야?
미쿠
...그 사건 말이지. 나도 편지 보냈지만 역시 직접 말하면서 오해룰 풀고 싶었거든. 편지로 사실은 전할 수 있지만 마음이나 기분까지는 전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지.
아오토
...그렇구나.
미쿠
아오토도 그렇지 않아? 그 아이랑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잖아?
아오토
...글쎄, 어떠려나.
단지 그 아이가 또 먼 곳으로 가 버리기 전에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렇게 온 건 좋은데, 아무 생각도 없었네. 뭘 얘기하면 좋을지, 만나서 어떻게 할지. 생각이 전혀 정리되지 않아서...
차장
“...선로 내에 일반인이 뛰어들어 긴급 정차했습니다. 현재 안전을 확인중입니다...”
아오토
제자리걸음만 하는 내 마음을 읽어낸 것처럼, 전차가 갑자기 정차했다.
금방 출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스물스물 초조함이 솟아났다. 만약 몇 시간이나 여기서 멈춰서게 된다면. 이 전차 때문에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못한다면.
미쿠
...괜찮아. 분명 늦지 않게 갈 수 있을 거야.
아오토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 걸 알았어?
미쿠
알지. 나도 같은 기분인걸. 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 아이랑 만나서 이야기할 거라고 정했으니까, 늦지 않을 거라고 믿어.
...아오토.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아오토한테 있어 그 아이는 정말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거 알아. 그래서 괜히 신중해지기도 하고, 무서워지기도 하지? 떠나갈까봐.
아오토
...미쿠는 대단하네. 그것까지 아는구나.
미쿠
뭐 그렇지. 난 누구랑은 다르게 한번 터트린 상태니까. 인생경험이 다르다고 할까?
...있지, 지금이니까 말하는 건데 나도 그 아이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오토나 카이, 다른 친구들하고는 달라. 이 세상에서 딱 한 명. 소중하고 특별하고 너무 좋아하는 내 친구. 그렇기 때문에 내 입으로, 말로 얼굴을 보면서 제대로 설명하고 오해를 풀고 싶어. 깨끗이 정리된 말이나 문장으로는 진짜 마음까지 전해지지 않을 거야.
아오토도 본인의 입으로 얼굴을 보면서 제대로 자신의 말을 전하는 게 좋을걸.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 아이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잖아?
아오토
...정말 못 당하겠네.
...아직은 뭘 전하고 싶은 건지, 솔직히 나도 잘 정리가 안 돼. 하지만... 이제 변명은 그만둘게. 여기까지 왔으니까 제대로 생각할 거야. 생각해서, 이번에야말로 그 아이에게 전할 거야.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헤어져 버렸으니까.
그렇다. 여기까지 왔으니 슬슬 각오해야겠지. 그때 일을 되풀이하진 않겠다고 정했잖아. 그걸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거야.
차장
“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안전이 확인되어 운전을 재개합니다...”
아오토
아, 움직인다.
미쿠
그대로 멈춰서지 않아서 다행이네. 뭐,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도쿄에 도착할 때까지 천천히 생각해 봐.
아오토
…응, 그렇게 할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전차 안에서 흔들리며, 나는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감정을 하나하나 주워담았다.
미쿠도 말했지만 그 오해 건에 대해서는 나도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되어버린 이유도. 줄곧 숨겨왔던 일이지만 제대로 말해야 하겠지. 그리고 그 날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 편지로는 나도 사죄의 말을 전했고, 그 아이의 답장도 받았지만 역시 제대로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그리고.
말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순간, 지금까지 눌러 왔던 감정들이 점점 넘쳐흘러 수습하기 힘들어져 버렸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내게는 소중한 감정이었다. 모든 것을 전하기에 하루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창문 밖은 여전히 시골 풍경이었다. 오히려 산이 조금 많아지면서 점점 도시에서 멀어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높이 떠 있던 태양은 저물어 가고, 창문 밖에는 어둠이 고개를 드는 중이었다.
(어서 만나고 싶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딱 한 마디라도 좋아)
벌써 몇십 분, 몇 시간을 전차에 실려 흔들렸을까. 해는 점점 떨어지는데 그 아이가 사는 곳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이 철로 된 상자 속에서 흔들려야 그 아이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
미쿠
...멀다.
아오토
...응.
미쿠
도쿄는 이렇게 멀었구나.
아오토
가기 쉽고 생각보다 가깝고, 옆 동네나 마찬가지라고 누가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마치 다른 나라에 가는 듯한 머나먼 장소.
하지만 그 아이는 오늘 밤 훨씬 더 먼 곳으로 떠나가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가 말한 것처럼 간단히는 만날 수 없을 것이고, 편지도 금방 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멀리 떨어진다는 것이 어찌할 수 없이 슬프고... 쓸쓸했다.
아오토
몇 시간이나 전차에서 흔들린 끝에 겨우 도착한 도쿄 역. 그곳은 지금까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고, 역 안은 미로처럼 느껴졌다.
하카타행 신칸센... 아마 여기일 건데...
미쿠
사람 엄청 많다... 그 아이, 아직 타지 않았어야 할 텐데.
아오토
헤맨 끝에 겨우 목적했던 홈에 도착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아이를 찾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가능한 한 구역을 나눠서 그 아이의 모습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초등학생 때였다. 그로부터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 그 아이도 성장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와 같은 나이가 된 그 아이의 모습을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계속 찾았다.
언젠가의 여름날, 하얀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며 웃어 주었던 그 아이의 모습을.
미쿠
...!
아오토! 저기!
아오토
갑자기 미쿠가 큰 목소리를 내서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미쿠가 가리킨 쪽에는 이 장소에서 보기 힘든 교복 차림의 여자아이가 보였다.
미쿠
기다려,
...!
아오토
기다려 줘,
...!
그때 비로소 눈치챘다.
미쿠
어라...?
아오토
그 아이의 이름이... 뭐였지?
그렇게나 편지에 잔뜩 썼던 이름인데. 그렇게나 마음 속에서 불렀던 이름인데, 나오지 않았다.
미쿠
어째서...? 만날 수 없어도 항상 부르던 이름인데...!
아오토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아이를 붙잡아야 해!
앞쪽을 보자 그 아이는 당장이라도 신칸센에 올라타려는 참이었다.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멈춰 있을 수는 없었기에 다시 발을 움직였다.
앞으로 10미터.
5미터.
조금만 더 가면 그 아이에게 손이 닿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미쿠
기다려……!
아오토
가지 마!
아오토, 미쿠
루리아!
소녀
...!
아오토
그 아이가 돌아본 순간, 신칸센 문 앞에서 눈부실 정도의 빛이 뿜어져나왔다.
언젠가 보았던 기억. 바람에 나부끼는 긴 머리. 새하얀 구름같은 색의 원피스. 언젠가 본 여름 하늘과 같은 푸른빛이 눈 앞을 가득 메웠다.
6-4
미쿠
응... 어라? 여긴 어디야?
빛에 둘러싸인 아오토와 미쿠가 눈을 뜨고 처음 본 것은 위도 아래도 없는 새하얀 공간이었다.
미쿠
아, 아오토! 여긴 어디야? 우리 조금 전까지 역에 있었지?
아오토
진정해, 미쿠.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뭐랄까... 뭔가 그리운 듯한, 잘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미쿠
으아! 뭐, 뭐지?
아오토
이거... 책?
미쿠
어, 글자가 적혀 있어. 어디... 『푸른 소녀 편』, 포트 브리즈 군도...?
아오토
들은 적 없는 단어인데, 소설같은 건가?
자세히 들여다보자 주변에 떠 있는 책은 어느 것이나 비슷한 제목이 적혀 있었다.
아오토
뭘까... 이거, 시리즈로 된 장편 소설인가?
호기심에 이끌린 아오토는 근처에 떠 있던 책을 한 권 집어들어 두꺼운 표지를 펼쳤다. 곁에서 들여다본 미쿠는 첫 장에 적힌 문자를 보고 어, 하는 소리를 냈다.
『닫혀 있는 섬 장크틴젤』
미쿠
장크틴젤...?
아오토
어라? 그 이름, 어디선가...
표지를 연 직후 눈에 들어온 문자열에 두 사람은 강렬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 이야기는 주인공이 우연히 어떤 소녀와 만나는 일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푸르고 긴 머리를 가진 소녀. 그 소녀의 이름은...
아오토, 미쿠
...루리아.
페이지를 훌훌 넘기는 소리, 그리고 빛의 격류가 아오토와 미쿠의 전신을 감쌌다. 동시에 두 사람의 머리속에는 빨리감기를 한 듯한 수많은 영상들이 지나갔다.
아오토
...아, 그렇구나. 그랬었지.
미쿠
생각났어... 아니,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아오토
이 모험은 우리들의 기억.
미쿠
이 여행길은 우리들의 기록.
하늘에 섬이 떠 있는 세계, 그 세계 한쪽 구석에서 내가.
지타
루리아와 만나서 시작된... 하늘의 끝, 별의 섬으로 향하는 이야기.
눈부신 빛이 잦아들었을 때, 그곳에는 단장과 또 한 명, 익숙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루리아
...그립네요. 어느 새, 당신과의 기억이 이렇게 잔뜩 늘어났어요.
루리아는 공간에 떠오른 책을 손에 들더니 그립다는 듯이 페이지를 넘기여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루리아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을 때부터 얼마나 지났을까요. 즐거웠던 일,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전부 소중한 추억이에요.
...저, 가끔 생각하곤 해요. 만약 그날,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당신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라고요. 이렇게 수많은 것들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수많은 추억을 만들고 경험하면서...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떤 사람과 만날 수 있을까, 매일이 너무 즐거워서.
...물론 지금까지 한 여행 중에는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슬픈 일도 잔뜩 있었어요.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었고, 때로는 생명의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함께 이겨내서 지금도 이렇게 같이 여행을 할 수 있는게 얼마나 기쁘고 멋진 일인지...
지금도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당연한 일이 아닐 거예요. 수많은 우연과 기적이 겹쳐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한 덕분에...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내게 힘과 용기를 주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나도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며 루리아는 단장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표정은 어딘가 애달프게 일그러져 있었기에 단장은 무심코 숨을 들이켰다.
루리아
...하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보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지금의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지금까지 이상의 크고 힘든 싸움이 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어떤 일에 휘말려서 멀리멀리 떨어지게 될지도 몰라요.
...어쩌면. 어쩌면 말이죠.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서 우리가 멀리 떨어지게 된다고 해도, 내가 곁에 있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당신은 여행을 계속해 주세요. 아무도 본 적 없는 것을 잔뜩 보고,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수많은 추억을 앞으로도 만들어나가 주세요.
...라고 말은 해 봤지만, 저도 사실은 당신과 계속 여행을 같이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저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요. 하지만... 미래에 있을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요.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제가 아까 말한 이야기를 떠올려 주세요.
[그런 미래는 있을 수 없어]
루리아
......
사라질 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침묵한 루리아에게 단장은 무심코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뻗어 봐도 루리아에게 손 끝은 닿지 않았고, 그녀의 윤곽이 흔들리며 흐릿해져 갔다.
[우린 계속 함께야]
루리아
...네. 약속이에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갑자기 나타난 빛 속에 루리아의 모습이 녹아들었다.
[루리아!]
사라져 가는 그녀를 붙잡으려는 듯이 이름을 부른 순간, 단장의 세계가 새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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