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제2화 안녕하세요, 곧 장마네요.
We've Entered the Rainy Season

 

 




방과 후. 부활동에 땀흘리는 학생들로 붐비는 그라운드 구석에 몇 명의 여학생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육상부에 속해 있는 학생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때때로 기쁨의 비명을 지르곤 했다. 개중에서도 가장 큰 비명을 이끌어내는 이는...


아오토
...흡!

기록 담당 남학생 1
오오! 키쿠다 장난 아니다! 신기록이잖아!

아오토
고마워! 후우, 겨우 뛰어넘었네... 하지만 아직 불안하니까 좀 더 안정시켜야겠지. 대회도 머지 않았으니까.

기록 담당 남학생 1
우리한테는 마지막 대회기도 하지. 아쉬움이 남지 않게 확실히 해 나가자!

아오토
그래!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꽤 많네.


아까부터 내리꽂히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아오토가 그쪽을 바라보자, 구경하던 여학생들이 꺄악 하는 비명을 질렸다. 그 반응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적당히 손을 흔들어서 인사한 아오토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기록 담당 남학생 1
아... 오늘 테니스부가 교류 시합 하는 중이거든. 그래서 평소보다 구경꾼이 많은 모양이야.

아오토
그렇구나... 그래서 본 적 없는 교복 입은 애들이 섞여 있는 거였어.

...미안, 잠깐 세수 좀 하고 올게.

기록 담당 남학생 1
그래. 넌 이런 거 부담스러워하지? 내가 대충 흩어놓을 테니까 천천히 쉬고 와.


남학생의 마음씀씀이에 감사의 말을 전한 아오토는 그라운드 밖에 있는 수돗가로 향했다.


아오토
후우...

카이
오! 아오토도 쉬는 시간?

아오토
응. 너도?

카이
그래. 시합 끝나서 빠져나왔어. 그나저나 육상부는 여전히 인기가 엄청나네.

아오토
아냐, 관중 수라면 축구부가 항상 더 많잖아.

카이
아... 뭐, 눈에 띄는 녀석들이 많으니까. 거 뭐냐. 해외에서 전학온 녀석 있잖아? 그 녀석도 축구부에 들어갔어.

아오토
...축구부 쪽은 엄청 떠들썩하네. 카이는 저런 분위기 괜찮아?

카이
딱히 신경쓰이지는 않아. 그 스파르타 고문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애초에 그런 거 신경쓸 여유도 없고.

아오토는 옛날부터 그런 분위기 힘들어했지.

아오토
으음.... 가끔이라면 모를까, 항상 사람 눈이 따라다니는 건 아무래도 익숙치 않아서... 소리지르는 것도 불편하고. 난 어느 쪽이냐고 하면 혼자 조용히 하고 싶은 쪽이랄까...

카이
하하, 대회 신기록 냈을 때에도 주변에선 난리가 났는데 혼자만 차분했었지. 하지만 아오토가 편지 주고받는 그 아이가 서프라이즈로 응원하러 와 주면 기쁠 거 아냐?

아오토
뭐...!? 그, 그건……

(만약 그 아이가 응원하러 와 준다면...)


예상도 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아오토의 머리 속에는 어떤 광경이 떠올랐다.


검은 머리의 소녀
힘내요, 아오토!


구경꾼 사이로 들려오는 귀여운 목소리는 방울이 굴러가는 듯했다.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처음 보는 교복을 걸치고 긴 머리를 휘날리는 기억 속의 소녀였는데...


카이
...토. 아오토. 어이. 괜찮아?

아오토
허억!


망상에 빠져 있던 아오토는 카이가 어깨를 두드리자 간신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카이
....풉. 크크큭...

아오토
…… 뭐야...

카이
아니, 아오토 군도 어쨌든 건전한 남자구나 싶어서. 그렇겠지. 오랜 시간 못 만났던 좋아하는 애가 응원하러 와 주면 그야 들뜨기도 하겠지!

아오토
따, 딱히 그런 거 아니거든!

카이
에이, 그렇게 풀어진 얼굴로 말해 봤자 설득력 하나도 없거든?


카이가 놀리자, 아오토는 삐진 듯이 빨개진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그에 버티지 못했는지 결국 카이가 웃기 시작하자, 아오토는 정강이에 가볍게 발차기를 날려 주었다.


카이
아하하하! 미안, 미안해. 농담이야. 응?

아오토
......

카이
그보다 진지하게 말야, 편지만 쓰지 말고 가끔은 직접 만나러 갈 수 없겠어?

아오토
...그야 가끔 생각하긴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닌걸.

카이
그래 봤자 관동이잖아? 주말같은 때에는 충분히 갈 수 있을 텐데.

아오토
뭐... 그렇긴 한데. 말하기 힘들다고 할까, 얼굴 마주치는 게 부담스럽다고 할까...


말끝을 흐리는 아오토를 보며 흠, 하고 고개를 끄덕인 카이는 그 이상 언급하지 않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카이
뭐 기회가 되면 권유해 봐. 여차하면 대회에 초대한다던가? 만약 응원하러 와 주면 평소보다 더 힘이 솟아날지도 모르잖아.

아오토
어?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면 오히려 긴장해서 전력 못 낼 것 같은데... 가 아니고! 또 그 얘기 꺼내면 나 진심으로 화낼 거다!


순간 머리속에 떠오른 그 아이의 응원하는 모습을 떨쳐내며 아오토는 카이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아오토의 마음 속에는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고 있었던 감정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2-2


아오토
조용한 교실에 규칙적인 초침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그 소리를 멍하니 들으며, 나는 텅 빈 편지지 위에 펜을 집어던지고 곁에 있던 봉투에 손을 뻗었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안녕하세요. 5월도 곧 끝날 무렵이라 조금씩 비 오는 날이 늘었네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루루짱하고 아미짱... 아, 같은 반 친구들하고 숨은 맛집인 카페에 갔었어요.

그 가게의 치즈 케이크가 엄청 맛있거든요! 저랑 친구들 모두 3번씩이나 더 시켜 먹었답니다.

다른 디저트도 전부 엄청 맛있는 곳이에요. 언젠가 당신도 먹어봤으면 좋겠어요.

 


아오토
숨어있는 맛집이라... 그러고 보니, 얼마 전 Tv에서 특집으로 소개했던 거기려나?

 


그 아이가 보내 온 답장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내 편지에 대한 반응,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 적혀 있었다.

요즘에는 특히 친구들과 놀러갈 기회가 많은 모양으로, 매번 감상이 세세하게 이어져 있었다.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무엇이 아름다웠는지. 무엇이 맛있었는지. 그 아이가 무엇에 이끌리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면 알수록 나는 일상 속에서 그 아이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비가 계속해서 오던 어느 날의 귀갓길이었다. 미쿠, 그리고 카이와 논두렁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논에서 개구리가 뛰쳐나왔다. 그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그 아이가 보낸 편지. 여기에 그 아이가 있었다면 괜찮아졌다고는 해도 분명 놀랐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실에서, 돌아가는 길에서. 지금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들에서 그 아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는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라는 소망이 부풀어올랐다.

얼굴을 만나서 이 감상을 전하고 싶다. 이 풍경을 공유하고 싶다. 함께 이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한번 솟아난 소망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을 솔직히 전하는 것은 무서웠다.

 


...아니, 난 뭘 적고 있는 거지.

 


문득 손끝을 바라보자, 난잡한 글자로 적힌 지저분한 뇌 속의 망상이 나열되어 있었다.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편지지를 구깃구깃하게 접은 후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졌다.



하아... 최악이야. 이상한 얘기 쓰지 않게 조심해야겠어.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다시 펜을 들었지만, 한번 생겨난 소망은 그렇게 쉽게 사라져 주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만나고 싶다」고 솔직히 전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직 그 아이에 대해 빚을 진 느낌이 내 안에 남아있다는 점이 컸다.

사소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 아이는 이제 신경쓰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첫 편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그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커다란 후회로서 응어리져 있다. 그렇기에 만나러 가지도, 전화를 하지도 못하고 그 아이의 다정함에 기대어 편지만을 주고받고 있었다. 편지라면 감정적으로 흐르는 일 없이 그 아이에게 제대로 된 말을 전할 수 있으니까.

 

 

...난 정말 비겁해.

 


편지라는 잘 퇴고된 문자의 나열을 방패삼아, 나는 그 아이에게 진짜 마음을 계속해서 감춘 채이다. 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상반되는 감정에 소리지르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긴 시간을 들여 겨우 편지쓰기를 마칠 수 있었다.

 


......

 


다 쓴 편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펜을 들어 마지막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그것은 수 년 간 그 아이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내가 용기를 낸 첫 순간이었다.



추신: 얼마 전, 전망대에서 본 밤하늘이 엄청 아름다웠어. 언젠가 너한테도 보여 주고 싶어.


그 아이는 이 뜻을 눈치채 줄까? 눈치채지 못해도 좋다. 하지만 눈치채 주었으면 좋겠다. 상반되는 마음을 편지지와 함께 접어서 봉투 안으로 집어넣었다.

 

 




2-3


미쿠
할머니, 안녕하세요!

 

 

 


센베 할머니
어머나, 미쿠짱. 아오토짱. 오늘은 카이짱도 같이 왔구나. 조금 전에 마침 센베를 구운 참이었단다. 자, 어서 먹으렴.

카이
늘 고마워요, 센베 할머니! 아, 같이 계산해도 돼요?

센베 할머니
어머나. 항상 고맙구나. 센베 한 장 덤으로 가져가렴.


어느 날의 방과 후. 함께 귀가하던 아오토와 미쿠, 카이는 오랜 기간 단골인 센베 집에 들른 참이었다.


센베 할머니
어머나? 아오토짱, 기운이 없네. 고민이라도 있니?


계산하는 아오토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운 것을 눈치챈 가게 주인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아오토
네? 아... 아뇨. 조금 우울할 뿐이에요. 그래도 아무 문제 없어요.

센베 할머니
그러니? 그래도 너무 참으면 못 써. 슬프거나 괴로워지면 언제든 할머니한테 얘기하렴.

아오토
응. 고마워요. 걱정시켜 드려서 미안해요, 센베 할머니.

센베 할머니
후후후, 괜찮아. 아오토짱이 기운 낼 수 있도록 센베 잔뜩 줘야겠구나.


산 것 이외에도 바구니 한가득 센베를 받은 아오토는 감사 인사를 한 후 가게를 나섰다.


미쿠
아오토, 늦었ㄴ... 센베 엄청 많네?


가게 앞 벤치에서 아오토를 기다리고 있던 미쿠와 카이는 그의 손에 들린 센베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오토
풀 죽어있는 걸 들켰거든. 기운 내라면서 잔뜩 주셨어.

카이
아오토는 얼굴에 쉽게 드러나니까. 긴장하면 금방 표정 딱딱해지지.

어디 보자... 그 아이한테 편지 보낸 지도 10일쯤 됐나? 아직 답장 안 왔어?

아오토
...응.


카이의 물음에 아오토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요 며칠간 아오토를 고민에 빠뜨린것. 그것은 소꿉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이 평소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오토
평소에는 아무리 늦어도 일 주일이면 도착했었어.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미쿠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요즘 바쁘다는 문자가 왔었던 것 같은데...

아오토
미쿠한테는 연락하고 있구나...

미쿠
무, 문자 오는 빈도도 줄었으니 바쁘다는 건 거짓말이 아닐 거야!

다른 문자도 그냥 인사나 질문 정도고 긴 이야기는 못 하고 있는걸...

카이
뭐, 몇 줄로 끝나는 문자하고는 다르게 편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니까.

아오토한테 오는 편지는 항상 장수가 꽤 많잖아? 그거라면 시간도 꽤 들여야 할 걸.

미쿠
맞아! 그리고 그 뭐냐, 옛날부터 그 아이는 엄청 성실했잖아? 우리가 그냥 기분 내려고 시작했던 교환일기에도 매번 시간을 들여서 정성스럽게 적어 줬었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그렇게 풀 죽지 마.

아오토
그런 거라면 좋을 텐데...

미쿠
괜찮다니깐. 그때하고는 달리 그 아이하고 싸운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답장은 분명히 올 거야.

아오토
......

카이
...저기, 옛날에 무슨 일 있었어?

미쿠
어? 아, 그렇지. 미안해. 얘기한 적이 없었네.


아오토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미쿠와는 달리, 카이는 중학교에 올라온 후에 사귄 친구였다. 편지 상대나 초등학교 시절 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방금 전 이야기를 이해할 정도로 자세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 점을 떠올려낸 미쿠는 고개를 떨구고 조용해진 아오토를 곁눈질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미쿠
그 아이가 전학가기 직전에 말이지, 그 아이랑 아오토가 싸우는 바람에 좋지 못하게 헤어졌었거든. 타이밍이 여러 가지로 나빴어... 화해할 기회도 없이 한동안 어색한 사이로 지냈지...

카이
....그랬구나. 하지만 아오토. 네가 옛날 일을 신경쓰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겠냐?

아오토
......

카이
이미 몇 년씩이나 편지를 주고받은 상대가 갑자기 싫어져서 연락을 끊겠냐고. 내 생각에는 뭐든지 나쁜 방향으로 생각한 나머지 그 아이를 의심하는 쪽이 더 실례일 것 같은데. 


카이의 말을 들은 아오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오토
...그러려나.

미쿠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만약 너무 안 오면 내가 슬쩍 그 아이한테 무슨 일인지 물어봐줄 테니까!

아오토
...응. 고마워 미쿠, 카이. 그렇겠지. 그 아이한테는 그 아이의 사정이 있을 테니까 끈기있게 기다려 볼게.


친구들의 격려에 힘입어 겨우 불안을 떨쳐낸 아오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것을 본 미쿠와 카이는 안도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2-4


아오토
그 아이에게서의 답장이 끊어진 지도 오늘로서 딱 보름째. 며칠 전 미쿠와 카이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에는 불안이 남아 있었다. 왜냐면 그 편지에는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나의 솔직한 마음이 적혀 있었으니까.

그 여름날 이후로 나는 솔직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때보다는 나나 주변인들이나 성장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소중한 친구를 잃을 뻔했던 사실은,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공포로 남았다.

 


...오늘도 안 왔을까?

 


기대하지 않고 연 우체통 안에서 매일 질리지도 않고 쑤셔박히는 광고물들을 끄집어냈다. 그 안에 익숙한 색의 봉투가 없는 것을 알고 한숨을 쉬었을 때, 통 안에 편지가 하나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하늘을 한 자락 베어낸 듯한 그 봉투였다. 기다려 마지않던 그것을 손에 든 나는 날아갈 듯한 마음을 억누르며 집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안녕하세요. 여름 향기도 진해지고 하루도 길어졌네요.

답장이 늦어져서 미안해요.

기말고사랑 위원회 인수인계 작업 때문에 정신없어서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어요.

드디어 조금 한가해져서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답니다.

 


아오토
...그랬었구나. 미쿠랑 카이가 말한 대로였어...

 


내가 두려워하던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요 며칠간 계속 마음 속에 진치고 있던 불안이 한 순간에 사라져 갔다. 나도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만큼 그 아이의 편지는 내 일상에 큰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인수인계 작업을 하다 보니, 머지않아 졸업이라는 걸 실감하게 됐어요.

얼마 전에 3학년이 된 것 같은데, 요새는 시간의 흐름이 너무나 빠르게 느껴져요.

 


아오토
그 아이의 편지에 적혀 있던 내용은 평소와 다름없이 잔잔한 내용들로, 내 속마음을 눈치챈 듯한 기색은 없었다. 안심한 듯한, 실망스러운 듯한. 그런 복잡한 기분을 품은 채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한동안은 바쁜 일 없을 테니까 편지도 평소대로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점점 밤에도 더워지는 계절이니까 아프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러면 잘 지내요. 

총총.

 


아오토
결국, 내가 용기를 내서 적은 문장에 대한 언급 없이 끝나버린 편지에 조금 낙담한 기분이 들었다.

 


...어라? 종이가 한 장 더 들어 있네.

 


원래대로 접은 편지지를 집어넣으려고 봉투를 연 나는 그 안에 작은 메모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추신: 여름 방학이 짧긴 하지만 어쩌면 그쪽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때 밤하늘을 바라보며 당신과 천천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오토
이거...

 


나를 위해 준비된 꿈인 걸까, 아니면 내 망상인 걸까. 눈 앞의 현실을 믿기 힘들어 메모를 몇 번이나 다시 읽기도 하고,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해냈어...!

아얏!

 


책상에 손을 부딪쳐서 책이 떨어지고, 그걸 밟고 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들떠 있는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아픔과 기쁨 탓에 바닥 위를 구르는 나를 내려다본 비가 질렸다는 듯이 수조의 벽을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