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제3화 안녕하세요, 푸른 하늘이 그리워지는 계절이에요.
It Makes You Miss Clear, Blue Skies

 

 


 


다음날 쉬는 시간, 시끌벅적한 교실 구석에서 아오토는 평소와 다름없이 편지 답장을 쓰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아오토
(으음... 뭐라고 쓰지. 평소처럼 최근에 있었던 쓰는 건 그렇다 치고... 여름방학 때 돌아온다는 이야기에는 어떻게 답장하지? 너무 노골적으로 좋아하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잖아...)


어제 도착한 소꿉친구의 편지에 적혀 있던 「여름방학에 만나러 갈지도」 라는 말. 그 후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지만 답장을 쓰는 동안에도 이게 꿈은 아닌지 의심하며 다시 읽곤 했다.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기쁨을 곱씹은 아오토는 최고로 들떠 있는 상태였다. 그가 얼마나 들떴는지는 곁에서 봐도 적나라한 모양이었던지, 아침부터 미쿠와 카이에게 실컷 놀림받을 정도였다.


아오토
(아, 맞다. 언제 오는지 정해지면 미쿠한테도 말해 줘야겠지. 미쿠도 그 아이와 만나고 싶을 테니까. 시간 맞으면 셋이서 같이 노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아니,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닐까. 아직 온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 정신 차려.)

같은 반 남학생 1
와, 실환가...?

같은 반 남학생 2
제대로 등교하는 걸 보는 게 얼마만이지?


교실에 들어온 인물을 보고 교실 전체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그러나 편지지와 마주한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아오토는 주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오토
역시 여기서는 무난하게 살짝 언급하는 정도로...

어? ...!

???
호오, 대단히 열렬한 러브레터인걸. 너도 꽤 여간이 아니네.

아오토
오리베...!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든 아오토는 오리베가 미소지으며 들고 있는 물건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아오토
돌려줘!

오리베
오, 이런. 잠깐만 기다려 봐.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니까.


오리베는 빼앗긴 소꿉친구의 편지를 되찾으려고 손을 내미는 아오토를 가볍게 피하며 글자를 일어내려갔다. 남이 편지를 마음대로 읽는 것을 본 아오토는 수치와 분노에 떨면서도 몇 번이나 손을 뻗었다.


오리베
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헤실거리는 표정을 지을 정도의 편지라니, 대체 어떤 내용인가 싶었다만... 이거 상당히 순진하다고 해야 되나... 읽는 쪽이 쑥스러워질 정도로 훈훈한 편지네.

아오토
너 대체 뭐야...! 남의 편지를 마음대로 훔쳐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내뱉고! 너랑은 관계없잖아! 빨리 돌려줘!

오리베
오~ 무서운데. 그렇게 이 종이가 소중해?

아오토
당연하지! 편지는 그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적어 준 거야! 그런 걸 바보 취급하다니, 절대로 용서 못 해!

오리베
오, 그래? 그럼 힘으로 빼앗아 보시지.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아오토
이...!


싸구려 도발임을 알면서도 편지를 되찾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아오토는 오리베에게 덤벼들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러나...


오리베
안타깝네. 땡이야!

아오토
컥...!


공격을 가볍게 피해낸 오리베가 복부를 발로 걷어차자, 아오토는 쓰러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오리베
어이, 농담하는 거지? 벌써 끝이야?

아오토
큭....! 젠장...!


그 자리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이쪽을 노려보는 아오토를 보고, 오리베가 몸을 기울이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오리베
창고 뒤쪽에 수풀 있는 거 알지? 오늘 학교 끝나고 너 혼자 거기로 와. 시키는 대로 잘 하면 이 편지를 돌려주는 것도 생각해 볼게.

아오토
......

오리베
그럼 안녕, 아오토. 방과 후에 보자고. 후후후...


기분 좋은 듯이 사라지는 오리베를 그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아오토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카이
아오토, 미안. 어제 제출한 고전 숙제 말인ㄷ... 아오토!? 어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오토
......

카이
아니지, 이야기보다도 우선 양호실에 데려가야겠네... 자, 붙잡아 아오토.

아오토
...아냐,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미쿠
아오토! 카이! 조금 전에 저기서 오리베 군을 발견했는데, 혹시...

카이
보는 대로야.... 일단 나는 아오토를 양호실로 데리고 갈게.

미쿠
...알겠어. 여기는 나한테 맡겨.

자, 너희들도 계속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정리하는 거 도와줘! 괜찮아! 오리베 군이라면 이미 어딘가로 갔으니까 돌아오지 않을 거야.


미쿠의 목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어지럽혀진 교실을 정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오토는 카이가 이끄는 대로 양호실에 향했다.


아오토
(... 최악이야)


아오토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조금 전에 들은 오리베의 말이었다. 보나마나 그 말에 따라 봤자 편지가 순순히 돌아올 리는 없다. 그러나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쳐 봤자 좋지 못한 상황만이 기다리고 있을 이 상황에, 아오토는 스스로의 불운을 저주했다.

 


 


3-2


미쿠
뭐!? 그게 뭐야, 완전히 그냥 괴롭힌 거잖아!


오리베와의 소동이 있었던 후, 점심시간이 되어 평소처럼 아오토와 밥을 먹던 미쿠와 카이는 사건의 전말을 듣고 분개했다.

 


카이
그래서 돌려받고 싶으면 방과후에 혼자 오라는 거야? ...분명히 뭔가 있을 거야. 얌전히 그 녀석이 시키는 대로 따를 필요 없지 않아?

미쿠
하지만 편지를 돌려받지 못하면 곤란하잖아. 그 사람이니까 어디 이상한 데에 이용하기라도 하면 큰일이고...

아오토
응. 게다가 봉투도 같이 빼앗기는 바람에 그 아이 주소도 적혀 있고... 이미 봤을 테니까 돌려받는다고 해도 반드시 괜찮은 건 아니겠지만, 그냥 둘 수는 없어.

카이
그것도 그렇겠네... 난감한걸...

미쿠
이번에는 정말로 너무해. 평소처럼 놀리는 정도의 영역을 넘어갔잖아.

아오토. 역시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오토
선생님이 말한다고 해서 순순히 들을 리가 없어. 그랬다면 진작에 얌전해졌겠지.

미쿠
으으음... 그러게.

아오토
나로서는 역시 나 자신이 아니라 그 아이한테 불똥이 튈까봐 두려워. 한 번 정도 시키는 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진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이 일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개인정보가 잡혀 있으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오토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미쿠와 카이는 곤란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카이
...저기,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오토는 왜 그렇게 오리베랑 엮이게 된 거야?

아오토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처음으로 얽혔던 건 분명 패싸움 사건 후였는데...애초에 나한테 말을 걸었던 건 오리베가 아니라 후와 쪽이거든.

카이
후와...? 이거 또 골치아픈 녀석이...

아오토
음... 그 사건에 대한 소문도 사그라졌을 무렵이었지...

 

 


 


???
어이.

아오토
...어, 나 말야?

그날 당번 일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교실에 남아 있었더니 후와가 말을 걸었어.

 

 

 


후와
너 말고 누가 있지.

아오토
미, 미안... 너는 그... 나랑 같은 반인 후와 군이었던가...?

후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내게 협력해라.

아오토
어? 저기, 무슨 말인지 감도 못 잡겠는데.

후와
얼마 전 패싸움. 그게 참사로 발전하기 전에 막은 건 너였지. 그 외에도 몇 번인가 비슷한 소동에 휘말려서 해결한 모양이더군. 말고는 딱히 기재할 만한 능력이 없지만, 이용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다.

아오토
허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 사람, 이상한 소문도 있고 해서 엮이기 싫단 말이지... 또 귀찮은 일에 휘말려서 할머니를 걱정시키는 것도 싫고)

...어, 미안해.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못 도와줘. 그때는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휘말린 거라,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 신고했을 뿐이었어.

후와
그런가.

아오토
...뭐였던 거지?

 


깜짝 놀랄 정도로 깨끗하게 납득하더니 사라져 버린 후와의 반응에 당황한 것은 내 쪽이었다. 하지만 귀찮은 일을 피했으니 이거면 됐겠지, 라고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랬다. 지금 생각났다. 그 다음날이었다. 그 때까지는 말도 나눠본 적 없었는데 갑자기 오리베 군이 달라붙기 시작한 것은.

 

 


 


오리베
키쿠다 아오토였나...? 너, 퍼 씨의 제안을 거절했다면서.

아오토
퍼 씨...? 어... 미안. 누구 얘기하는 거야?

오리베
아, 습관이 튀어나왔네. 후와 말이야. 후와 다이코쿠. 어제 너랑 얘기했었잖아?

아오토
아! 아... 응. 그렇긴 한데. 그게 왜?

오리베
무슨 생각이야?

아오토
어?

오리베
당연히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

아오토
어... 없는데?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친하지도 않고... 아니 그보다 왜 오리베 군이 그런 걸 묻는 거야? 너랑은 관계없는 이야기 아냐?

오리베
관계가 없다라...

아오토
큭....!

뭔, 데....

오리베
뭐냐고? 글쎄. 너랑은 “관계 없어”.

아오토
관계가 없다니...! 갑자기 사람을 때려 놓고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오리베
오, 이래도 겁 안 먹네. 아무래도 너한테는 제대로 가르쳐 줄 필요가 있겠는걸. 우리한테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가르쳐 줄게.

 

 


 


아오토
...그때부터 그렇게 된 거야. 무슨 일이든 오리베 군이 날 건드리게 된 건.

카이
어... 그뿐이야?

아오토
응. 그뿐이야. 그래서 나도 놀랐어. 후와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만으로 왜 오리베 군이 저렇게 화를 내는 걸까 하고.

미쿠
...추측이지만. 자기랑 친한 사람이 거절당했다는 것에 화가 나서 그런가던가...?

카이
아... 그러고 보니 오리베와 후와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는 사이랬지.

미쿠
그렇다고 해도 불합리한 건 마찬가지지만 말야. 아오토. 역시 방과 후에 오라고 한 거, 나도 같이 갈래. 혼자 가는 건 위험해.

카이
그러게. 교사 뒤편 수풀이라면 사람 눈에도 안 띄는 막다른 길이야. 순순히 따라갔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아오토
마음은 이해하지만 괜찮아.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게 싫긴 하지만, 거슬렀다간 큰일로 번질 것 같거든. 그러니까 날 믿고 기다려 줘. 그 녀석이랑 얽히는 건 익숙하니까. 무사히 돌아올게.

미쿠
하지만...

아오토
아! 다음 시간 이동수업이지? 지각하면 실험기구 청소 전부 떠맡게 될 거야!

카이
으악, 서둘러야겠다!


이야기를 끝내듯 울려퍼진 예비종 소리에 세 사람은 서둘러 수업 준비를 하고 교실을 나섰다. 

 

 


 


방과 후. 여전히 내키지 않는 듯한 미쿠와 카이를 달랜 아오토는 약속한 대로 혼자 교사 뒤편의 수풀을 찾았다.


오리베
...어라? 아무래도 온 것 같네.

후와
......

아오토
……! 후와가 왜...?

후와
……? 아, 이건가. 이 녀석이 재미있을 테니까 읽어 보라고 밀어붙여서 왔을 뿐이다. 한심하군. 내용도 없고 요점도 정리되어 있지 않아. 무엇이 재미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오리베
퍼 씨, 자비가 없네.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하지만 그렇게 재미없지는 않잖아? 중학생씩이나 되어서 초등학생 교환일기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걸?

아오토
...그쯤 해 둬. 단순히 바보취급이나 하려고 여기로 부른 거야?


눈 앞에서 소꿉친구의 편지가 바보취급을 당하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아오토가 큰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러나 후와는 흥미가 없다는 듯이 편지를 밀어놓더니 독서를 시작했고, 오리베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아오토
너희들...!

오리베
오, 그렇게 화내지 마. 이 편지를 돌려받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네가 원하는 건 지금 내 손 안에 있어. 쓸데없는 짓을 하면 어떻게 될지는 알지?

아오토
......

오리베
후후... 그래야지. 평소에도 그렇게 순종적이면 좀 귀여울 텐데 말야.

아오토
...목적이 뭐야? 어차피 약속을 지켰다고 해서 순순히 돌려줄 생각도 없겠지.

오리베
당연하지.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우리가 하는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 기간은 졸업할 때까지. 간단하지?

아오토
...싫다고 한다면?

오리베
글쎄? 그게 네 대답이야? 그렇다면 여기서 교섭 결렬이겠네. 다시는 네 손에 편지가 돌아가지 못할 거야.

...아, 맞다. 너는 자기 자신보다도 친구가 다치는 걸 싫어했었지.

아오토
……!

(이 녀석, 내가 거절하면 미쿠나 카이, 그 아이까지 건드릴 셈이야. 절대로 그렇게 둘 수는 없어. 그렇게 두지 않아.)

...알겠어.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아 줘.

오리베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아오토. 네가 나한테 지시할 수 있는 위치야?

아오토
...부탁드립니다.


노기를 품은 목소리를 들은 아오토는 아차 하고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머리를 숙였다. 굴욕적인 기분이었지만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그마한 프라이드 정도는 별 것 아니었다.


오리베
...뭐 좋아. 퍼 씨도 이거면 되겠어?

후와
마음대로 해. 네가 멋대로 시작한 일이니까.

오리베
알았어. 그럼 교섭 성립인 걸로.


그렇게 말하며 오리베는 가지고 있던 편지를 아오토에게 내밀었다. 약간 경계하면서도 편지를 받아든 아오토가 봉투가 없는 걸 깨닫고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오리베
아, 봉투라면 내가 맡아 둘게. 혹시 모를 때를 위한 보험으로.

아오토
약속이 다르잖아!

오리베
아니지? 나는 분명히 편지를 돌려준다고 했지, 봉투를 돌려준다고는 한 번도 말한 적 없어.

아오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오리베
마음에 안 들면 찾아가 보시던가? 그 순간 조금 전에 맺은 계약은 끝이겠지만 말야.

아오토
......

오리베
후, 후후후, 우후후후... 그럼 안녕, 아오토. 졸업할 때까지 친하게 지내자고.


오리베가 친한 척하며 어깨에 팔을 두르자, 아오토는 아래를 내려다본 채 견디듯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아오토의 평온했던 중학교 마지막 생활은 갑자기 끝을 고하게 되었다.

 

 




3-3



다음날. 평소라면 학생들의 잡담 소리로 시끄러운 쉬는 시간. 그러나 어떤 반에서는 학생들이 경악과 공포가 섞인 목소리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오리베
흐아암...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는데, 익숙치 않은 일은 하는 게 아니라니까.

후와
......

오리베
아, 안 되겠다. 잘 것 같아. 어이, 아오토. 뭐 잠 깰 만한 것 좀 가져와 봐.

아오토
...알겠어.


교실의 창가 가장 뒤. 그 자리에 진을 친 후와와 오리베, 그리고 그들의 시중을 드는 아오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어딘가 이질적인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는 아침부터 수많은 억측이 오가고 있었다.


카이
...갑자기 둘 다 등교했나 싶었더니, 저게 뭐야.

미쿠
진짜 너무해. 편지를 돌려받은 대신 저 둘한테 부려먹히고 있는 모양이야. 어제 불려나갔다가 돌아온 이후로 자세히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저 상태를 보니 그렇게 된 거겠지.

카이
아마도 저 녀석들한테 협박당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아오토가 얌전히 말을 들을 리가 없으니까.

미쿠
아마 아오토가 숨기고 있는 뭔가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걸 모르면서 함부로 손을 댔다가 아오토가 큰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서...

카이
무작정 손을 대면 지금 아오토가 참고 있는 것도 물거품이 될 테니까.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하던 미쿠와 카이는 돌아오자마자 다시 오리베에게 휘둘리며 고개를 떨군 아오토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이 저 문제아들이 질려 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오토
......

카이
어라? 아오토, 무슨 일이야? 오늘 육상부는 휴일 아냐?

아오토
어? 아... 맞아. 좀 일이 있어서...


어느 날의 방과 후. 휴식중이던 카이는 그라운드 바깥의 수돗가에서 아오토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그 순간, 아오토가 등 뒤로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것을 눈치챈 그는 바로 아오토의 팔을 잡아챘다.


카이
이건...! 너덜너덜하잖아! 다친 데는 없어?

아오토
안 다쳤어. 좀 넘어졌을 뿐이야...

카이
거짓말이지. 신발 자국도 있는데 넘어졌다니 말도 안 돼.

아오토
......

카이
...그 녀석들이지. 오리베야, 후와야?

아오토
...그 녀석들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 둘한테 맞은 건 아냐. 이건 진짜야.

카이
너는 잘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요즘에 계속 여기저기 상처 늘어나는 거 다 알거든. ...아직 우리한테는 말 못하는 거야? 이 이상은 이제...

아오토
응... 알고는 있어. 하지만 이건 내가 정한 일인걸. 진짜 일이 심각해지면 선생님이랑 제대로 이야기할게. 물론 미쿠랑 카이한테도. 그러니까 한동안은 상관하지 말아 줘.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

카이
......

오리베
찾았다~


오리베가 갑자기 아오토의 등 뒤에서 나타나자, 카이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오리베
좀처럼 돌아오지 않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설마 우릴 내버려두고 친구랑 이야기하던 중이었다니.

카이
오리베...!

아오토
미안, 금방 돌아갈게. 그럼 안녕, 카이. 부활동 힘내.


카이는 담담하게 내뱉은 후 오리베를 따라가는 아오토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카이
아오토...


소중한 친우를 구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오토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리베의 괴롭힘은 하루이틀 겪은 게 아니었고, 후와는 나한테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오리베 한 명 정도라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리베
그럼 안녕, 아오토. 또 보자.

아오토
......

매일 아침 통학로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질릴 때까지 곁에 붙어있으면서 이것저것 명령하는 오리베. 누군가를 괴롭히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되는 일도 몇 번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괴롭히는 것에 질리면 후와와 함께 방과 후가 될 때까지 모습을 감췄다. 방과 후가 되면 다시 불려나가야 했기에, 그들이 땡땡이치는 이 시간만이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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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들었어? B반 키쿠다라는 녀석, 3 중학교 불량학생들을 전부 때려눕혔대.

구경꾼 2
진짜로? 되게 얌전하게 생겼던데. 요즘에는 오리베네랑 어울린다면서?

구경꾼 1
맞아. 그러니까 그 외에도 엄청 위험한 일에 얽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소문이...

아오토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들려오는 수많은 소문들. 부정하고 싶어도 내가 말을 걸면 다른 사람들은 전부 도망가 버렸기에 결국 정정하는 것도 포기했다.

아리타
키쿠다 씨, 잠시 시간 괜찮은가요?

아오토
아리타 선생님? ... 무슨 일이 신가요?

아리타
최근에 당신이 얽힌 수많은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짚이는 데는 있나요?

아오토
......

아리타
...타지리 씨와 인도 씨에게 대략적인 사정은 들었습니다. 어린애들 싸움에 어른은 모른 척 하라고들 하지만, 당신이 정말 곤란한 상황이라면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요. 대놓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교사 입장에서 대대적으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만...

아오토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전에 들은 적 있는데 선생님도 교감 선생님한테 경고받으신 적 있다면서요? 그 둘한테는 손대지 말라고요. 아마 교감 선생님은 걱정이 되셔서 그럴 거예요. 그 두 사람, 지금까지도 선생님 몇 명 그만두게 만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아리타 선생님까지 그만두시면 다들 정말 슬퍼할 테니까요. 물론 저도요.

아리타
...지금은 당신의 의사를 존중해서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죠. 하지만 이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지도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교사와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말해 둡니다. 견디기 힘들어지기 전에 의논해 주세요. 알겠습니까?

아오토
...알겠습니다. 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아리타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를 지키는 것이 교사의... 어른의 역할이니까요.

아오토
미쿠나 카이뿐만이 아니라 담임인 아리타 선생님도 내 편이 되어 걱정해 주고 계시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매일 근거 없는 소문이 들려오고, 많은 사람이 내 시선을 피해서 고립되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만 참으면 그 아이도 미쿠도 카이도, 모두 무사할 수 있다. 여름방학에 무사히 그 아이와 만나기 위해서.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오리베가 지키게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일이든 얌전히 따랐다. 순종적이기만 하면 이 이상 심한 것은 요구받지 않으리라고 믿으면서.





아오토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오리베
그러니까. 편지에 적혀 있는 애, 여름방학 때 여기 온다면서? 소개시켜 줘. 궁금하거든. 도시 애는 이 근처 애들하고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 보고 싶으니까.

아오토
그런 이유로...!

오리베
어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우리가 하는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계약.

뭐, 거절해도 상관은 없는데. 근데 나 도쿄에도 아는 사람 있거든?

아오토
그렇게 말하며 그가 슬쩍 보여준 것은 매일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던 푸른 하늘 색의 봉투였다. 오리베가 하려는 말을 알아챈 이상,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알겠어.

오리베
그럼 잘 부탁해. 아, 뭣하면 너도 같이 와도 돼.

셋이서 즐기자고. 응? 아오토.

아오토
사라지는 오리베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갈 데 없는 분노와 절망에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방과 후. 당번 일을 끝내고 집에 가기 위해 계단 쪽으로 향했을 때였다.

 


오리베
퍼 씨. 그때 왜 그 녀석한테 말 걸었던 거야?

아오토
(오리베 목소리? 날 눈치재지는 못한 것 같은데,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근처의 빈 교실에서 오리베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숨을 죽이고 문 건너편으로 귀를 기울였다.

오리베
딱히 싸움이 강한 것도, 머리가 좋은 것도 아냐. 체력이야 좀 있지만 그뿐이지. 퍼 씨가 일부러 말을 걸 정도의 가치는 없었던 것 같은데.

후와
...아직도 지나간 일을 마음에 두고 있나.

오리베
그치만 신경쓰이잖아? 퍼 씨의 계획을 망가뜨린 것뿐만이 아니라 권유마저 거절했는걸? 아무 장점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 말야.

후와
네가 뭘 신경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량학생들 건에 대해서라면 이미 해결했다. 애초에 나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마을에서 날뛰던 어중이떠중이들이 사라지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

오리베
그건 알아. 그래서 큰 세력들을 정면충돌시켜서 양쪽 다 한번에 없애버리려고 한 거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지. 어디의 누구 씨가 흘러들어서 경찰을 부르는 바람에 말이지. 그때 중견 녀석들은 잡혔지만 그 밖의 조무래기들이랑 리더 격 녀석은 화를 면했잖아. 그래서 퍼 씨가 쓸데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만 했지. 그 한 명 때문에 말이야.

후와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그 정도는 사소한 일이야. 나는 네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그 녀석에게 집착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군.

오리베
그치만 우연이라고는 해도 퍼 씨의 계획을 망가뜨렸잖아? 엄청 재미있는 녀석일 것 같잖아? 그런데 실제로는 재미없고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년이었지. 솔직히 김 빠지더라. 그래서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버리려고 했는데 말야.

후와
...기르던 개에게 손을 물렸나.

오리베
교육이 덜 된 강아지한테는 확실히 가르쳐 줘야 하지 않겠어? 그래도 이렇게 순종적이 되니까 확실히 질리긴 하네.

있지, 퍼 씨. 그 녀석이 진심으로 이를 드러낼 정도의 계획 뭐 없을까?

후와
모른다. 흥미 없으니 날 끌어들이지 마라.

오리베
에이~ 그렇게 말하지 말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퍼 씨도 그 녀석을 잘 쓰고 있잖아.

후와
...그럼 그 편지의 상대를 잘 이용해라. 그걸 위해서 소개해 달라고 명령한 거 아닌가.

오리베
어라, 들켰었어? 역시 퍼 씨야. 전부 다 꿰뚫어보고 있었구나.

아오토
(...그런가. 그래서 오리베는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거였어... 그 아이를 소개시켜 달라고 한 것도 전부 날 괴롭히려고 그런 거였나.)

 


모든 사실을 알게 되자 지금까지 당한 일의 부당함에 격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렇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 이쪽이 순순히 복종하든 복종하지 않든, 저 녀석에게는 관계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녀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살며시 그 자리를 떠났다. 아무래도 내 주변에 피해를 끼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니 이 이상 얌전히 따를 이유가 없었다. 불안과 분노가 뒤섞인 채로도 내 안에는 새로운 결심이 피어났다.

 

 




3-4


아오토
그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책상에 앉아 쓰다 만 편지를 꺼냈다. 평소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일상적인 화제는 아무래도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딱 하나. 한 가지 답만을 전하기로 했다.

 


여름방학에 오기로 했었지? 모처럼의 기회인데 미안해. 수험 대비하느라 여름방학엔 정신없을 것 같아.

미쿠도 오늘 가족들하고 친척집에 가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니까 올해는 다른 곳에 여행하러 가는 게 어떨까? 전에 얘기했던 카루이자와같은 곳.

나는 아무 데도 못 가니까, 대신 이런저런 곳에 대한 이야기를 선물삼아 들려 주면 좋겠어.



하아...

 


사실은 전부 거짓말이다. 수험 대비는 커녕, 지망 고교도 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미쿠도 이용하기로 했다. 미쿠한테는 나중에 제대로 사정을 설명하면 이해해 줄 거다. 이야기도 맞춰줄 거고.

나의 결심. 그것은 오리베를 거역하고 그 아이가 여기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서는 보복의 위험이 있으니 하나 더, 나는 큰 각오를 했다. 그 아이에게서 답장이 오면 오리베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힘으로라도 봉투를 빼앗는 것. 그리고 얼마 없는 아군인 아리타 선생님의 힘을 빌려 그들에게 못을 박아두는 것이었다. 얼마나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할 작정이었다.

근 2주간 오리베의 명령에 따르며 불량학생들의 싸움에 휘말리긴 했지만, 솔직히 나는 싸움에 그렇게 강하지 않다. 그러니 승산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싸워야만 한다. 그 녀석과.

그렇게 결심한 나는 평소보다 얄팍한 편지지를 정성스럽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입구를 붙이려고 하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

 


이대로 봉투를 부친다면 그 아이는 여름방학때 이 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는 분명 슬퍼하겠지. 모처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그렇다. 그 아이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런 애매한 방식으로 돌려 적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스스로 버리려고 하고 있다. 그 아이가 만들어 준 기회를 말이다.

 


...만나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 이상 그 아이를 오리베와 얽히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굳은 결심으로 평소보다 풀을 잔뜩 묻혀 입구를 붙였다. 미련이 넘치는 내 마음도 통째로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히듯이.

 

 


 

 

아오토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그 아이가 보낸 답장은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왔다. 내용을 볼 용기가 없어서 봉투는 아직 열지 못한 채지만 말이다. 그 아이라면 분명 이해해 줬으리라 믿으며, 나는 오리베가 기다리는 수풀로 향했다.

 


오리베. 아직 그 봉투 가지고 있어?


오리베
...되게 뜬금없네. 여기 있어.

아오토
오리베가 품에서 봉투를 꺼낸 순간, 나는 땅을 박차고 오리베에게 달려들었다. 허를 찔린 오리베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듯했지만 다음 순간, 나는 충격과 함께 지면에 처박혀 있었다.

오리베
이봐, 무슨 생각이야? 약속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오토
이제야 알았어. 내가 너한테 순종한다고 해도 네가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네가 왜 나를 자꾸 건드리는지, 계속 이상했었지. 하지만 이제야 알았어. 너는 내가 복종하든 복종하지 않든, 나를 절망시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걸. 약속을 어기게 된다고 해도. 그렇다면 나도 계속 너한테 복종할 이유가 없어!

오리베
...호오. 혹시 들었어? 퍼 씨랑 이야기한 거.

아오토
그래. 전부 들었어. 너희가 나를 괴롭히던 이유도, 그 아이에게 뭘 시키려고 하는지도!

오리베
후후후... 하하하하!

...아, 정말이지. 너는 진짜 너무 반항적이라 짜증스러워.

아오토
......

오리베
한동안 순종적인 척을 하더니, 이쪽을 방심시켜서 물고 늘어지질 않나.

좋아. 네가 그럴 생각이라면 상대해 주지!

아오토
큭...!

오리베
내기 하나 할까? 아오토. 네가 나한테 한 방이라도 먹인다면, 그 애한테는 손 떼 줄게. 하지만 그 전에 네가 쓰러진다면... 그때는 계약 위반의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다시는 밖으로 나다닐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주지. 네 소중한 그 아이와 친구들까지 전부 말야.

아오토
절대 그러도록 두지 않아.

 

나는 입 밖으로 그렇게 말하는 대신, 욱신거리는 몸을 채찍질하며 일어나 오리베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