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온천 거리에 떨어진 마물의 시체와 마정 가루는 레비온 기사단에 의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부상자는 한 명도 없었고, 건물의 파손도 전혀 없었기에 온천 거리는 평소의 활기를 되찾은 상태였다.

그런 온천 거리 입구에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다.


빅토르
정말 나와 같이 도는 건가?

오드릭
응...


빅토르는 뒷편에 서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힐끗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노
......

빅토르
늑대 남자는 계속 따라오는 건가?

오드릭
응... 안심해. 우릴 방해하진 않을 거래.

빅토르
...처음엔 어딜 갈 거지?

오드릭
상점가. 새로운 특산물이 많이 있거든...

빅토르
알겠다. 안내해.


어색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형제는 나란히 온천 거리 입구의 아치를 통과했다.

 

 

 

 

제6화 화해는 온천 거리에서
All Ends Well at the Hot Springs

 

 




오드릭
어음... 여기는 원래 투기장의 전사한테 개방됐던 온천 치료소인데... 온천수가 상처 치료에 특화되어 있어. 그 밖에도 몇 가지 원천이 있는데, 예를 들면 족탕 쪽은 살균 작용이 강해. 그래서 발냄새도 억제해 주고, 단순히 시원해지기도 해. 들어가고 싶으면 들러도 되는데...

빅토르
됐어. 신발 벗기 귀찮아.

오드릭
아, 그래... 그럼 이대로 상점가에 갈게.

빅토르
(형님의 설명 늘어놓는 버릇이 시작됐군... 역사 이야기가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긴 하다만)


중심가로 향하자 달콤한 냄새를 머금은 흰 증기가 피어오르는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온천만쥬 가게 주인
오, 형제분들이 같이 오시다니 별 일이군요! 오늘은 사이좋게 시찰하시나요?

오드릭
아, 네네, 네에... 그, 시찰이라고 할까...

빅토르
내가 여길 오는 건 처음이기에 안내받고 있다.

온천만쥬 가게 주인
그렇군요! 전하께서 와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자, 드시죠! 온천 만쥬 한번 시식해 보고 가세요!

오드릭
아, 네... 감사합니다.

빅토르
......

온천만쥬 가게 주인
마음에 드셨나요? 그럼 이번에는 이걸 시식해 보세요! 그 다음에는 이것도!

오드릭
저, 저기... 그렇게 많이는...


점장님, 이거 주세요!

실바
저도 여기 새로 나온 맛으로 부탁드립니다.

온천만쥬 가게 주인
어머, 당신들은 어제 그 분들?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방 포장해 드릴게요.

오드릭
어...?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고 왕님은 다음 장소로 가 봐.

오드릭
...! 감사합니다.

빅토르. 이번에는 선더 돔 공방에 가자.

빅토르
그래...





빅토르
......


공방에 놓인 선더 돔 견본품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빅토르는 튀어오르는 정전기를 바라보았다.


오드릭
잘 하네.

빅토르
이런 일로 칭찬받아 봤자...

오드릭
이거, 마력 유지 힘들어하는 사람은 잘 못 가지고 놀아서 개량하는 중이거든. 원래는 북부의 무기 기술자가 어렸을 때 장난감 삼아서 만들던 물건이래. 지금은 양산화시켜서 도매로 받고 있어. 모형 부분은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 이 공방에서 만들 수도 있고...

시에테
우왓! 엄청 잘 만들어졌네! 번개가 반짝이는 별무리 마을이라는 것도 나름대로 박력있어서 좋은걸!

오드릭
아... 마침 가지러 온 사람들이 저기 모여 있네.

빅토르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군)

카토르
이 상황은 대체 뭔데?

엣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왕님이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고 늑대 사람이 말했어.

시스
잠깐 마음이 풀리는 정도밖에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만.

빅토르
......

오드릭
아, 기다려!

카토르
사이 완전 나쁘네... 저만큼이나 나이 먹은 어른 둘이서 뭘 하는 건지.

시에테
마을 사람들도 저 형제가 같이 있는 건 본 적이 없다고 말했었지. 이런 건 처음이지 않을까?

카토르
뭐 스탬프 모으는 김에 온 거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요.





사라사
이번엔 푸왁! 하는 시간이지? 이거 끝나면 또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우노
체험도 시켜 주다니 좋은 서비스인걸. 그럼 갈까.

유모미 시설 직원
폐하와 전하도 유모미 체험 해 보실래요?

빅토르
됐다.

오드릭
하, 하지만... 해 보면 즐거울지도 몰라.

빅토르
온천물을 휘젓는 것뿐이잖아. 질철질척해서 기분 나빠. 난 나가겠어.

오드릭
......





그 후로도 오드릭은 빅토리를 데리고 온천 거리의 시설들을 돌아보았지만...


관광객 1
저기 봐. 저기 있는 게 레비온 왕님하고 그 동생이래! 작은 쪽이 형이라나 봐.

관광객 2
뭐!? 반대일 줄 알았어! 동생 쪽이 훨씬 높으신 분같아 보이는걸.

관광객 1
그치~ 어딜 가는 걸까? 좀 따라가 볼까?

빅토르
쳇...

관광객 1
째려봤어! 동생 무서워!

관광객 2
따라가는 건 그만 두자... 응?

빅토르
......

오드릭
어때...? 즐기고 있어?

빅토르
글쎄.

오드릭
그렇구나...

빅토르
(흥... 내게 어떤 표정을 지으라는 거지?)

오드릭
(조금이라도 빅토르의 흥미를 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침묵이 따가워...)

두 사람
(어색해...)

오드릭
(어떡하지? 여기서 "인연을 묶어주는 바위"까지는 한참 걸어가야 되는데...)


오드릭은 문득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입간판 쪽에 눈길을 주었다. 그것은 레비온 땅을 더 잘 알리기 위해 오드릭이 적은 왕국의 역사 해설이었다.


오드릭
빅토르... 이 나라를 교역 도시로 만들고 싶어한 이유 말인데...

빅토르
...?

오드릭
장류역이랑 가까우니까 옛날에는 칠요의 기사도 여기를 공역을 넘는 거점으로 사용했고, 왕국에는 많은 물건들이 모여들었어. 항로는 당시에도 험했지만, 레비온 기사단이 각 상업용 비공정을 지켜줬지. 정말정말 용감하고 믿음직스러웠어.

빅토르
......

오드릭
뭐 방금 한 칠요의 기사 얘기는 상당한 억측도 들어있긴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뇌제가 수치스러웠던 당시의 기록을 불태워 버렸으니까. 그래서 실제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영광의 시대 이후 급격한 쇠퇴에 대해 납득이 간다고 생각해.

빅토르
......





비이
어! 왕님이랑 동생 왔다!

루리아
후후. 온천 거리에서 친해지기 작전, 잘 되어가고 있을까요?

오드릭
그래서 타국의 침략도 실패만 이어지고, 애초에 레비온 왕국이라는 건 옛날부터...

빅토르
...

니오
이 느낌...

비이
딱 봐도 안 좋아 보이는데...

제노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계속 저 상태였다.

니오
서로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은 같은데...

제노
가족이기에 더욱 쓸데없는 감정이 방해하는 거겠지.

루리아
어렵네요...

제노
가급적 개입은 피하려 했다만, 더 보고 있을 수가 없군. 다녀오마.

오드릭
레비온 기사단은 대군이라기보단 소수정예 부대니까 그 기질로...

빅토르
그 이야기와 온천 거리 순례에 무슨 관계가 있지?

오드릭
뭐...?

빅토르
옛날 이야기에는 흥미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장황하게 밑도 끝도 없이...!

오드릭
미안! 이제 역사 얘기는 안 할게...!

빅토르
쳇... 불쾌하군! 난 돌아가겠어!

제노
폐하나 전하나 정말 한숨이 나오는군. 그런 상태로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나?

빅토르
형님이 문제인 거야!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이상한 장소에만 끌고 다니고!

오드릭
미안... 이러려던 게 아닌데...

제노
그게 아니잖아.

두 사람
어!?
뭐야!?


제노는 빠르게 몸을 굽히더니 형제를 좌우 어깨에 가볍게 얹었다.


제노
이래선 끝이 안 날 거다. 같이 와 줘야겠어.

빅토르
기, 기다려! 내려줘! 내려 달라고!


아연해하는 오드릭과 날뛰는 빅토르를 어깨에 얹은 채, 제노는 바위터를 걸어내려갔다.

 

 




6-2

 

 

 


두 사람
......

제노
좋아.

빅토르
왜 온천에 들어와야 하는 거지?

제노
에크렐 님과 아스트리스 님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때에는 자주 온천에 들르곤 하셨지. 

빅토르
네놈도 세인트 레잔 이야기 광신도냐?

제노
실화입니다.

빅토르
...그 털가죽으로 탕에 들어와도 되는 거냐?

제노
허가는 받았습니다.

 


제노는 두 사람 사이에 앉더니 형제를 껴안듯이 어깨를 치며 각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제노
전하. 폐하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탈선하면 제가 자르겠습니다. 부디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폐하. 내가 옆에 있다. 천천히라도 좋으니 회의에서 제후들을 설득하던 때처럼 이야기해 봐라.

빅토르
마음대로 판 깔지 마라!

제노
전하. 제발 부탁입니다.

빅토르
쳇....


빅토르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돌로 된 가장자리에 팔을 얹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제노
폐하. 전하를 온천 거리에 데려간 이유를 이야기하면 어떻겠나?

오드릭
네...

(따듯해서 마음이 차분해져... 지금이라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탕 안에서 심신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오드릭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오드릭
저기... 온천 거리에 와 달라고 한 건 빅토르가 새로운 레비온을 봐 줬으면 해서였어.

빅토르
...새로운 레비온?

오드릭
응. 나는 나라를 아주 많이 바꾸려고 해. 지금까지처럼 무력에 의존한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매력적으로 느낄 정도의 문화로 넘치는 교역 도시로...

빅토르
그런 얘기를 아바마마가 들으신다면...!

오드릭
화내시겠지... 그리고, 빅토르도 화내겠지. 알고 있어...

빅토르
유리우스가 꼬드긴 건가? 그런 녀석이 하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어!

오드릭
유리우스 님하고는 관계 없어. 이건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는 일이야.

빅토르
형님이 직접...?

오드릭
응... 믿기 힘들지. 나는 정말 뭘 해도 안 되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이제 예전과는 달라. 유리우스 님을 용서한 것도 나야.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했어.

빅토르
미치기라도 했나...? 그 남자는 아바마마를 살해했다고!

오드릭
알고 있어. 하지만... 아바마마도 너무하셨어. 왜냐면 아바마마는 유리우스 님을 주살하려고...

빅토르
그 이야기는 사실인 건가?

오드릭
...응.

빅토르
말도 안 돼! 아바마마께서 그런 비열한 짓을...!

오드릭
그게 사실이야. 여러 가지로 조사해 보면서 알았어. 선인인지 악인인지는 간단히 정할 수 없겠지. 하지만 주살 계획은 분명히 잘못된 거였어.

빅토르
분명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주살하고자 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유리우스가 용서받아야 한다고? 아바마는 돌아가셨어! 설마 형님은 아바마마를...!

오드릭
당연히 살아계셨으면 했지!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하지만 울어 봤자 아바마마는 살아나시지 않아. 유리우싀 님의 죄도 사라지지 않아.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빅토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뭘 하겠다는 거야?

오드릭
어음...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제노
유리우스를 구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기에 죄를 사했다는 것 아닌가?

오드릭
네, 맞아요.

빅토르
어떻게 그런 사고가 가능한 건지 전혀 이해가지 않는군.

오드릭
그... 왕이 되면 계획서같은 걸 많이 읽잖아? 그거, 정말 자기네 생각밖에 안 하는구나 싶은... 사인할 기운조차 잃게 만드는 내용이 꽤 많잖아.

빅토르
사인할 기운조차 잃는다니... 설마 형님이 펜을 쥔 채로 서류 앞에서 굳어있었던 건...!

오드릭
응... 맞아. 그치만 회의에서 채택된 서면들을 훑어보고 있을 때, 깜짝 놀랄 만큼 아무 욕심도 없는 것이 있더라고. 항목들이 차분하게 나열되어 있고, 내용도 다 이치에 맞는 것들이라 혹시나 하고 작성자를 봤더니...

빅토르
유리우스였다는 건가?

오드릭
응. 마치 번개에 맞은 듯한 기분이었지. 나라를 빼앗을 생각이었다면 어렴풋이 알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유리우스 님은 그렇지 않았어. 속죄를 하고 있었다고. 죄를 숨기고 있었던 것도 나라에 헌신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구해낼 수밖에 없잖아! 그가 이 나라를 위한 일을 해주고 있다면 그게 최선일 테니까.

빅토르
하지만 아무리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나는 용서 못 해. 어떻게 형님은 그렇게 냉정할 수 있지?

오드릭
그건... 내가 레비온 왕이니까.

빅토르
레비온의 왕...

오드릭
제대로 해내기로 마음먹었어. 왕위는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아.

빅토르
...그랬나. 그런 거였나... 형님은 협박당하고 있는 게 아니었어. 레비온이 변한 것은 모두 형님의 의지에 의한 거였어...

오드릭
미안... 계속 걱정해 주고 있었지? 그런데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해서...


빅토르는 고개를 떨구더니 힘없이 좌우로 저었다.


빅토르
나는... 왕이 될 수 없어. 나라는 내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키를 꺾었어. 이제 내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건가?

오드릭
빅토르...

제노
전하. 만약 진심으로 형님의 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저와 함께 형님을 지키는 기사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빅토르
내게 기사가 되라고?

제노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왕실 분들은 무예에 뛰어나시죠. 기사의 길을 택하시는 분들도 많으십니다.

빅토르
하지만 나는...

오드릭
응... 그러게... 빅토르라면, 나를...

제노
폐하!?

오드릭
부글부글부글...

빅토르
설마 머리에 열이 오른 건가?

제노
열이 올랐다고?

빅토르
형님은 옛날부터 열에 약해! 어서 끌어내자!

 

 




6-3


오드릭
민폐... 끼쳐서, 미안...

빅토르
됐으니까 조용히 누워 있어! 물에 적신 타월은?

제노
여깁니다!


빅토르와 제노는 탈의실로 끌려나온 오드릭을 부채로 열심히 식혀 주었다. 


빅토르
번거롭게 만들기는... 열이 오를 거 같으면 바로 말하란 말이야!

오드릭
하지만... 겨우, 빅토르랑 얘기할 수 있었는걸...

빅토르
그렇다고 해서 쓰러질 때까지 참는 녀석이 어디 있어?

제노
너무 그러지 마시죠. 내가 눈치채지 못한 게 잘못이니.

오드릭
제노 님은 아무것도... 내가 말하지 않은 게...

빅토르
아 정말, 그만 해! 보기 괴로우니까!

오드릭
미, 미안...

빅토르
하아... 정말 왜 이렇게까지 한심한 건지. 사람 눈 보고 제대로 얘기하지도 못하고, 귀족들과의 교류회에 나가면 어느 샌가 사라져 있고. 항상 내가 손님들을 상대했어! 형님은 몸 상태가 안 좋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야!

오드릭
응, 알고 있어...

빅토르
싫은 일이 있으면 서재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그대로 밤을 샜다가 감기에 걸린 적도 셀 수 없을 정도지. 넌 너무 손이 가! 조금은 형답게 굴 수 없겠어?!

오드릭
응...


빅토르는 짜증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으로 튕겨나듯이 일어나더니 탈의실 안을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비이
아, 큰일났다... 이 쪽으로 온다!

빅토르
...거기. 뭘 하고 있지?

시에테
아~ 그게 그... 저희는 지금부터 온천에나 들어갈까나~ 하고요...


시에테 일행은 쓴웃음을 지으며 숨어 있던 선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빅토르
쳇... 그래서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 여기저기에 있었군.

카토르
얼음 필요하면 받아올 수 있는데요.

빅토르
필요 없어... 얼굴의 붉은기가 가시고 있으니.

비이
그나저나 안심했어. 왕님의 동생도 말로는 이러니저러니 하지만 왕님한테는 다정하구나!

빅토르
흥... 나는 그저 동생으로서 저 무능하고 물러터진 인간의 뒤치다꺼리를 강요받아 왔을 뿐이다. 그래... 저렇게 한심한 형 때문에 나는 항상 나쁜 일만 떠안았어. 형님이 도망칠 때마다 성 내외를 뒤지며 찾아다니고, 왕에 즉위한 후로도 내가 조언해야 했고...

나는 형님이 정말 싫었어! 울보에 근성도 없고 나를 실망시킬 뿐인 무능한 형이 말이다!





[회상]


오드릭
그건... 내가 레비온 왕이니까.

오드릭
제대로 해내기로 마음먹었어. 왕위는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아.





빅토르
옛날부터...!

시에테
시건방진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만, 솔직해지시는 게 어떨까요? 형님하고 사이 좋아지고 싶으시죠?

카토르
고집을 피우다가는 화해할 것도 못 할 겁니다.

빅토르
시끄러워! 내 문제에 끼어들지 마라!


빅토르는 그렇게 말한 후 발걸음을 돌렸다.


빅토르
(내겐 아바마마와의 약속이 있어...)





[회상]


형제의 아버지
빅토르여, 언젠가 왕위를 이은 후에도 오드릭을 신경써 줬으면 한다. 그것이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대가 지켜 줬으면 한다. 





빅토르
(하지만 내가 정말로 바라던 것은...)

오드릭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분도 훨씬 나아졌어요.

제노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군. 앞으로는 온천에 너무 오래 있지 않도록 나도 신경쓰지.

빅토르
쳇...!

이봐, 제노라고 했었나? 왕 직속의 기사란 뭘 하면 되는 거지?

제노
받아들여 주시는 겁니까?

빅토르
아니야! 참고하고 싶으니 말해 보라는 거다.

오드릭
흥미가 생겼어? 어째서?

빅토르
이 나라에 두 명의 왕은 필요 없다. 형님이 왕을 계속할 거라면, 나는 다른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어.

오드릭
나를 왕으로서 인정해 준다는 거야?

빅토르
나는 아바마마의 생각이야말로 옳은 말씀이라 믿으며 나라를 지켜봐 왔어. 형님의 생각이 정말 나라를 위한 것인지 어떨지는 전혀 모르겠군. 하지만 온천 거리에서 본 자들은 다들 표정이 밝았다. 그렇기에 형님에게 걸어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오드릭
그렇구나. 조금 의외인걸.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할 줄 알았는데. 계속 왕이 되려고 노력해 온 것은 빅토르였고, 나는 정말 방해만 됐을 텐데...

빅토르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

오드릭
어?

빅토르
내가 노력했던 것은 형님에게 왕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오드릭을 부탁한다"고...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셨을 때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르겠지?

오드릭
...응.

빅토르
형님이 자신의 의지로 왕이 되고자 결정한 거라면 막지 않아. 그 대신... 두 번 다시는 한심한 짓 하지 마! 왕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왕위를 빼앗겠어!

오드릭
고마워. 빅토르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제노
...음?


문득 밖에서 불꽃이 펑펑 쏘아올려지는 소리가 울려퍼져 일행은 고개를 들었다.


오드릭
불꽃 테스트를 하고 있는 모양이네. 그러고 보니 슬슬 불꽃놀이 대회가 시작될 시간이던가요. 

빅토르, 우린 이제부터 불꽃놀이 대회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빅토르
그래, 난 상관없다만... 그런가. 불꽃놀이 대회... 벌써 그럴 시간이 됐나...

오드릭
빅토르...? 왜 그래?

빅토르
아니, 그게... 그... 미안해, 형님. 이대로라면 불꽃놀이 대회는 중지될지도 몰라.

오드릭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알베르
여엉...차!

유리우스
불꽃 발사용 장치는 이걸로 전부야?

알베르
그래. 도와줘서 고맙다.


그때, 알베르와 유리우스는 온천 거리에 근접한 강변에서 불꽃놀이 대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알베르는 예전에 인기 관광지인 아우규스테를 시찰하러 갔을 때, 불꽃놀이 기술자의 제자로 들어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배운 기술을 레비온 기술자에게 알려주긴 했으나, 이번에는 첫 대회 개최이기 때문에 알베르가 대회 장소를 감수하며 현지를 지휘하기로 한 것이었다.


알베르
슬슬 가 봐야 하지 않나? 회장 시찰하러 갈 거잖아?

유리우스
전하가 회장에 계실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 부분은 부하에게 맡겨 뒀어.

알베르
그렇군. 맞부딪치는 것을 피하려는 건가.


알베르 일행이 불꽃놀이 준비를 하는 사이, 하늘에서 우르릉거리는 낮은 소리가 울렸다.


유리우스
오늘 아침에도 신나게 울렸다만, 또 뇌운이 나온 모양이군.

알베르
어느 정도의 비바람이라면 쏘아올리는 데 지장이 없다만... 이 이상 심해지지 않았으면 좋겠군.

유리우스
그러게... 응?


유리우스는 문득 어둠으로 물든 언덕 위에서 수상한 빛이 튀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유리우스
친우여, 저런 데에도 불꽃을 뒀었나?

알베르
설마. 불꽃놀이 장치 설치는 여기에만...

레비온 기사
알베르 단장, 큰일입니다! 언덕 위에 마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알베르
마물이라고? 너희들끼리 대처할 수 없는 건가?

레비온 기사
놈에게는 번개 마법이 듣지 않고, 방전도 격렬한 바람에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유리우스
대체 어떤 마물이...

...!

의문의 마물
!!

알베르
저 녀석인가? 이쪽으로 온다!

 

 




6-4


빅토르
불꽃놀이 회장에 풀어놓은 것은 "레빈 록"이라고 하는 북부 뇌화정 채굴장에서 나타나는 마물이야. 레빈 록은 뇌화정의 거대 결정에 뇌화혼이 기생한 녀석이지. 놈에게는 번개마법이 전혀 듣지 않아. 레비온 기사단에 있어서는 대처하기 힘든 상대일 거다. 그렇기에 나도 그걸 고른 거다만...

오드릭
정말 빅토르가 그걸 풀어버린 거야? 다른 사람이 계획한 게 아니고?

빅토르
오늘 아침의 마물 소동과는 달라. 내가 북부 영주에게 명해서 풀었다. 형님의 평판이 떨어졌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왕위를 내놓고 싶어질 거라고...

오드릭
그랬구나. 솔직히 말해 줘서 고마워.

(빅토르는 반성하고 있어... 빅토르 때문에 누군가를 다치게 만들 수는 없어!)

제노
불꽃놀이 회장에 가려면 이쪽이 지름길이다. 폐하, 서둘러라!

오드릭
네!



 

 



레빈 록
...!

레비온 기사
큭...! 불꽃놀이 회장이 점령당했어!

유리우스
저대로는 불꽃이 인화될 거야. 포대가 무너져서 관객석 쪽으로 날아가면 대참사다.

알베르
회장 경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관객들을 피난시켜야 한다!

레비온 기사
예!

오드릭
하아... 하아... 알베르 님, 무사하신가요?

유리우스
폐하...!

!?

빅토르
...!

오드릭
(큰일이다... 유리우스 님도 여기에 계실 줄이야!)

시에테
난감한 상황이라면서? 우리가 뭐 도울 거 있어?

알베르
당신은 십천중의...!

유리우스
폐하는 어쩌다 여기에?

제노
사정은 내가 설명하지.


제노는 이동하는 동안 빅토르에게 들은 이야기를 알베르 일행에게 전달했다.


알베르
레빈 록... 유리우스, 들어본 적 있나?

유리우스
선더 돔의 상품화 건으로 북부에 들렀을 때 소문으로는 들었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한번 생겨나면 며칠이나 맹위를 떨친다고 하더군. 자연소멸될 때까지 채굴도 중지되고.

오드릭
......

알베르
자연소멸... 그 외의 수단은 없는 건가?

유리우스
일종의 자연 재해같은 거라서. 물론 느긋하게 소멸되기를 기다릴 생각은 없지만...

엣셀
음... 비전문가의 생각이지만 바위로 된 몸을 부수면 뇌화혼도 떠나가지 않을가. 사라사라면 저걸 부수는 건 간단할 것 같은데.

사라사
응? 저거 부수면 돼? 좋아! 그럼 당장...

유리우스
지금 부수는 건 관두는 게 좋아. 부쉈을 때의 방전이 불꽃을 인화시킬 위험성이 있으니까.

니오
저기에서 레빈 록을 치워야만 한다는 거야? 하지만...


무리겠네. 저렇게 번개를 뿜어서야 가까이 갈 수 없으니...

실바
저런 거구라면 저격류의 공격은 효과가 약할 것 같군...

카토르
물 안에 떨어뜨리는 건?

우노
상당히 위험해. 순식간에 강에 방전된다면 불꽃놀이 회장의 불꽃 전체에 불이 붙을지도 몰라.

퓐프
으음... 뭔가 여기로 와~ 하고 부를 방법이 없을까~

유리우스
(유도라... 혹시 전하라면...)


생각을 짜내던 유리우스의 시선이 자연히 빅토르 쪽으로 향했다.


빅토르
...?

유리우스
...! 죄송합니다.

빅토르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라. 이 건은 내게 책임이 있으니.

오드릭
빅토르...!

유리우스
...감사합니다. 레빈 록은 헤매지 않고 정확히 불꽃놀이 회장으로 내려왔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유도된 것처럼 말이죠. 그 이유를 알고 계신지요?

빅토르
...백화정이다. 뇌화정 채굴장에서 캘 수 있지. 번개가 통하지 않는 투명하고 흰 결정. 백화정은 평범한 돌멩이나 마찬가지라 폐기되는 물건이다만, 레빈 록은 대단히 싫어하는 것 같더군. 북부에서는 레빈 록을 피하기 위해 마을 주변에 심어두곤 한다. 그것과 같은 요령으로 여기에도 백화정을 뿌려 불꽃놀이 회장 쪽으로 오게끔 장치했다.

유리우스
그렇군요, 백화정이라...

빅토르
...이런 이야기가 도움이 되나?

유리우스
예, 엄청나게요. 

친우여, 제노 공, 그리고 여러분. 서둘러 이 근처에 묻힌 백화정을 모아 줬으면 좋겠군. 어느 정도는 자갈이 섞여 있어도 상관 없어. 아무튼 양이 중요해. 부탁해도 될까?

알베르
알았어! 나는 저쪽에서부터 모을 테니까 남은 사람들은 이 앞에서부터 부탁한다!

오드릭
저와 빅토르도 같이 모을게요!

유리우스
알겠습니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노
그렇군. 백화정을 모아 불꽃놀이 회장에 흩뿌려서 쫓아내려는 전법이군?

시에테
뇌화정을 부수는 건 우리한테 맡겨. 그런 거 잘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으니까.

유리우스
감사합니다.

...!?

레빈 록
...!

옥토
도화선에 불이 옮겨붙었나...

니오
포대도 이쪽을 향해 쓰러지려고 하고 있어... 위험해.

유리우스
큭... 이 단시간이라면 아직 피난이...!

시에테
이미 올라탄 배인 이상 어쩔 수 없지! 다들 불꽃을 되받아치자!

유리우스
불꽃을 되받아쳐...?

시에테
뭐, 해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 되지 않을까? 라기보다 이제 이 방법밖에 없잖아.


그러게... 실바, 할 수 있겠어?

실바
사정권 내니까 문제 없어. 게다가 너와 나란히 싸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

카토르
하아... 정말 엄청난 온천 여행이 됐군요.

엣셀
응... 하지만 멋진 추억을 망치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힘내자.

사라사
하하하하핫! 뭔가 재미있어졌는데!

니오
날아가는 순서는 내가 소리를 듣고 전해줄게.

우노
고마워.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면 방벽을 펼쳐서 막도록 하지.

퓐프
할부지, 나루 언니! 섬 사람들이랑 손님들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하자~!

나루메아
응! 하나도 놓치지 않을 거야!

옥토
잘못 쳐내면 즉시 폭발할 거다. 부디 방심하지 말거라.

시스
부상자가 나오게 두진 않겠어... 간다.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