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하늘의 미래편
제2화 특이점의 선택
Singularity's Choice

 

 




일행은 메두사를 비롯한 성정수들에게 뒤를 맡긴 채 그랑사이퍼를 전속력으로 몰아 지오를 쫓았다.


비이
반드시... 반드시 그 녀석을 되찾고 말겠어!

지오
짜증나는군... 인간 따위가 조종하는 기공정으로 나를 쫓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

이오
어떡하지? 저 녀석이 지금 단장을 밑바닥으로 던지기라도 하면...

로제타
이 정도 거리라면 그가 단장님의 몸에서 손을 뗀 직후에 받아낼 수 있을 거야. 지오도 그건 알고 있을 거고.

이오
그런가... 그렇구나. 하지만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겠네.

오이겐
그 부분은 뭐 우리의 조타수와 그랑사이퍼를 믿을 수밖에. 

그보다 조이, 아까 말했던 거 말인데. 단장과 루리아에게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무슨 소리지?

조이
아아... 그래. 나도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 조정이라는 시스템에 어떠한 오류가 생긴 것 같다.

이오
그게 무슨 소리야? 고장났어?

조이
코스모스가 별의 세계에 숨어있는 것은 조정의 힘이 하늘의 세계로부터의 간섭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나는 코스모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비이
그래서 고전장의 섬에서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던 거구나.

조이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적인 부분이다만... 우리가 본체인 코스모스에게서 부여받은 속박은 원래 절대로 깰 수 없다. 본능보다도 훨씬 더 강한... 이 속박 앞에서는 나의 의지도 바람도 힘을 쓰지 못한다.

카타리나
하지만 너는 아까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지.

조이
그래. 그게 이상한 거다. 나와 같은 존재인 대행자 중 하나가 "특이점을 파괴한" 것이 시스템의 오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특이점을 파괴한 결과로 이 오류가 발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아직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이
저, 정말이야? 정말로 아직 가능한 거야?


일행은 조이가 보여준 한 줄기 희망에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오
저기, 어떻게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단장이랑 루리아가...!

조이
지, 진정해 다오. 나도 어떻게든 하고 싶다. 하지만 중요한 방법에 대해서는...

오이겐
모르겠다는 건가.

조이
다만 지오가 단장의 몸을 빼앗아갔다는 점에서 부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로제타
그렇네... 단장님이 정말 이미 죽어버린 거라면 그 몸을 빼앗아 봤자 의미가 없는걸.

조이
그래. 그렇기에 나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단장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면...!

(이것은 나 자신의 바람이다. 설령 코스모스의 대행자로서의 존재의의와는 모순되는 것이라 해도... 나는...!)


조의는 결의에 가득찬 채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오
뭐가 됐든 일단은 지오 녀석한테서 단장의 몸을 되찾아야만 하는 거겠네.

비이
제길... 어떻게든 붙잡아야 하는데!





루리아
코스모스 씨를 구해달라니,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유니
......

시간의 수면을 통한 여행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어?



 


[회상]

 

루리아
그렇다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유니
원한다면.

루리아
그럼...!

유니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만 해.


유니의 눈이 단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유니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으로 치자면 꽤 긴 여행이 될 거야. 하지만 알고, 생각하고, 선택해 줬으면 좋겠어. 하늘과 별 사이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의미를...





루리아
유니쨩은 먼저 알게 된 후에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었죠.

유니
응.

루리아
저희는 패공전쟁과 그 후 성정수와 인간 사이에 일어난 다양한 일들에 대해서 보았어요. 코스모스 씨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하늘의 세계를 지켜보며 조정이라는 역할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다는 것.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니
응... 고마워.

루리아
그래서 저희는 뭘 선택하면 되는 건가요?

유니
이대로 죽을지, 계속 살아갈지.

루리아
네? 하지만...


루리아와 단장은 당황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10-2


루리아
어, 그치만...아까 유니쨩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회상]


유니
특이점은 코스모스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형태로 하늘의 세계에 나타났어. 천칭을 외부에서부터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칭을 지지하는 축이었지.

루리아
어, 그럼 이 사람은 세계에 있어서...

유니
그래.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잃는다면 파멸이 찾아올 존재.





루리아
요컨대 이대로 이 사람하고 제가 죽어서 세계도 끝나 버리던가... 살아돌아가서 원래대로 돌려놓던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건가요?

유니
맞아.

루리아
어... 저기, 그거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단장도 루리아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질문의 진짜 의도를 말해달라는 듯이 유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니
......


유니는 뭔가 망설이는 듯 잠시 침묵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니
당신들이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한번 집행된 조정을 부정한다는 뜻. 망설이고 있는 코스모스에게 끝을 안겨주게 되겠지.

루리아
네? 끝을 안겨주다니...

유니
코스모스라는 시스템은 종언을 맞이하고, 하늘의 세계는 별의 조정하에서 벗어나게 돼.

루리아
잠시만요! 그러면 코스모스 씨는 어떻게 되는데요?

유니
...코스모스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고 각오하고 있었어. 루시펠하고도 약속했지...





[회상]


코스모스
내가 두려워하는 사태가 현실화된 날에는... 네가 판단해 다오. 천사장으로서 특이점과 코스모스의 조정을. 네가, 너 자신이 지고 있는 역할에 비추어 판단해도 상관없다. 특이점과 코스모스의 조정... 하늘의 세계의 진화에 있어 어느 쪽이 선택되어야 하는지를. 만약 사라져야 하는 쪽이 코스모스라고 판단했다면, 그때는...

네가 코스모스를 심판해 다오.


코스모스의 진지한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루시펠은 깊고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루시펠

...알겠다. 약속하지.

 

 




유니
하지만 코스모스를 심판할 수 있는 천사장 루시펠은 이미 이곳엔 없어. 그러니 특이점. 당신이 선택해 줘. 

루리아
유니쨩은 코스모스 씨를 구해 달라고 하셨죠. 저희가 선택하는 것이 코스모스 씨를 구하는 결과가 되는 걸까요?

유니
...사실은 모르겠어.


유니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유니
나는 모르겠어... 나는 그저 내 역할과 바람을 억지로 일치시키려고 하는 것에 불과한지도 몰라. 하지만... 당신들이 코스모스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망설이고 있는 코스모스에게는 의미있는 일이리라 생각하니까.


[알겠어]


유니
특이점...


단장은 루리아의 손을 다시 꽉 쥔 후, 유니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어느 쪽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어떤 일을 일으킨들 말이다.

 

 




10-3


라캄은 전속력으로 그랑사이퍼를 몰았으나 지오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이오의 목소리
라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속력 높일 수 없어?

라캄
나도 알아! 하지만 슬슬 한계에 가까워...!

이오의 목소리
어떡하지... 진짜 조금만 더 따라가면 되는데...!

라캄
뭔가 자그마한 돌파구라도 있다면...

조이
내가 여기서 혼자 날아오르ㅁ...

로제타
위험해. 공중에서 무방비한 단장의 몸을 지키면서 홀로 지오와 대치하는 건 힘들 거야.

조이
큭...

오이겐
같은 이유로 여기서 포를 쏠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지.


갑판 위의 동료들은 안타까움에 이를 악물었다.


지오
끈질기군... 하지만 특이점을 돌려줄 수는...

!? 뭐지?

티아마트
...!

지오
으악!

이오
저기 봐! 티아마트가!

카타리나
단장의 몸을 빼앗았어!

오이겐
완전히 지오의 허를 찔렀군! 멋진데!

티아마트
...


성정수 티아마트는 단장의 몸을 안은 채 그랑사이퍼 갑판으로 내려섰다.


이오
대단해 대단해! 고마워, 티아마트!

티아마트
...

지오
제길...!

로제타
방심하지 마! 지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지오
너도 성정수면서 특이점의... 인간의 편을 드는 거냐?

티아마트
...

지오
대체 왜...

로제타
나나 티아마트나 성정수지만 단장님을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것이 우리가 이 하늘의 세계에서 찾아낸 삶의 방식이야.

지오
그게 언제까지 갈 것 같아? 그 방식은 한 순간의 속임수에 불과해.

로제타
...슬픈 일이야.


안타깝다는 듯이 눈을 내리까는 로제타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은 조이가 앞으로 나섰다.


조이
지오, 들어 다오. 너도 느끼고 있겠지? 코스모스에게 이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지금 코스모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나?

지오
글쎄? 내 인식 따위, 너와 별반 다를 거 없을 것 같은데.

이오
그럼 지오도 단장을 되살려낼 방법을 모른다는 거야?

지오
하하하핫! 머리 속이 완전 꽃밭이시군! 역시 오만한 인간이야! 아니, 특이점의 동료답다고 할까?

그걸 알 리도 없고,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절대 알려줄 리가 없잖아. 절대로... 절대로 특이점을 부활시킬 수는 없어!

비이
왜 그러는데! 왜 그렇게까지 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데! 전에 고전장의 섬에서 만났을 때도 인간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일부러 이 녀석을 죽이려고 들지는 않았었잖아!

지오
그야 뻔하지. 코스모스의 조정이 집행되었으니까! 한번 내려진 집행을 되돌린다는 것은 코스모스를 부정한다는 거다! 그런 짓을 하면 코스모스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이오
어, 어떻게 되는데?

조이
......

지오
너는 알고 있겠지? 조이. 그러면서도 너는 특이점을 이 세계에 다시 불러들이려고 하는 거냐?

오이겐
뭐야?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건데? 조이.


조이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등진 채 무언가를 각오한 듯한 눈으로 지오를 쳐다보았다.


조이
나는 설령 내가...

지오
웃기지 마! 난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냐! 코스모스가 사라지면 누가 이 세계에서 성정수를 지켜줄 수 있지? 조정의 힘이 존재하는 지금도 이 하늘의 세계는 성정수에게 이다지도 잔혹해. 그런데 코스모스의 힘에서 풀려나기라도 한다면, 이제 아무도 성정수를 구해낼 수 없어!

조이
진정해라, 지오! 성정수란 그렇게 가엾고 연약한 존재가 아닐 텐데!

지오
시끄러워! 그러면 나는 어째서 이 세계에 현현한 거냐고!

 

 




10-4

 


지오
성정수가 구원을 바라고 있기에 내가 여기 있는 거야! 별에게 버려지고, 완전히 하늘에 적응하지도 못한 채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스러져가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조이
그러면 나도 묻겠다, 지오. 특이점인 단장을 잃으면 이 세계 자체가 붕괴해 버린다고 해도 너는 같은 말을 할 건가?

이오
뭐? 바, 방금 뭐라고 했어?

오이겐
세계가 붕괴한다고?


깜짝 놀란 일행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지오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조이 쪽을 향해 내뱉었다.


지오
붕괴될 거면 붕괴되라지. 인간을 위해 성정수들만 괴로워해야 하는 세계라면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아.

조이
너는 그렇게까지...

지오
평행선이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지오는 천천히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지오
나는 여기서 이대로 특이점을 끝장낼 거다. 어떻게든...

비이
절대 그러도록 놔두지 않아!


비이는 그 작은 몸으로 지오와 단장 사이를 가로막았다.


비이
성정수니 인간이니 세계니... 전부 엄청나게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들이겠지. 그치만 난 지금 그런 거 알 바 아냐! 이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하나밖에 없는 내 파트너라고! 그런 이 녀석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다른 거 신경쓸 여유가 있겠어?

지오
어찌나 오만한지... 말이 안 통하는군.

비이
내가 할 말이거든!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녀석을 포기하지 않아! 성정수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도 세계에 대해서도... 이 녀석이 돌아온 후에 같이 고민해서 어떻게든 할 거라구!

지오
됐어... 더 들어주기 힘들군.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전부 여기서 죽여주겠다. 그리고 정성들여 특이점의 몸을 파괴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부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마!

오이겐
온다...!

 

 

 


지오
하하. 저항하겠다 이건가?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성정수의 힘이...

!?


당장이라도 일행을 덮칠 듯하던 지오의 몸이 갑자기 움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