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별의 유산편

제2화 조정의 화신

Arbitrator's Duplicate

 

 




루리아
그렇겠네요. 루시펠 씨는 2000년 전부터 있었던 천사님이시니까... 당연히 패공전쟁도, 그 후로도 쭉 보아 오셨겠군요. 그리고 코스모스 씨라는 분은...


질문하는 듯한 루리아의 시선에, 유니는 눈을 내리깐 채로 끄덕였다.


유니
특이점을 심판한 것은 코스모스에 의한 조정의 힘... 하지만 당신들을 여기에 부른 것도 코스모스야.

루리아
어... 그럼 코스모스 씨는 저희를 죽이셨지만 구해 주기도 하셨고...? 으음... 적인 걸까요? 아니면 아군...?

유니
조정의 힘은 누구의 적도 아군도 아니야. 그저 세계를 내려다보며 천칭을 올바른 위치로 돌려놓기 위한 존재지. 하지만 코스모스는...


유니는 약간 망설이는 듯이 말을 끊었다.


루리아
유니쨩? 왜 그러세요?

유니
...아무튼 간접적이라고는 하나, 코스모스가 하늘의 세계에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여시킨 것이 저때였어. 여기서부터는 정말로 인세의 역사로는 전해지지 않는 뒷면. 별이 남기고 간 짐승들과 하늘의 세계의 인간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며 인도해 온 루시펠과 코스모스의 이야기를... 당신들도 봐 줬으면 좋겠어.





패공전쟁이 끝난 후, 병기로서의 역할을 잃은 성정수들은 하늘의 세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티아마트
...


그리고 지금, 바람의 힘을 관장하는 성정수 티아마트가 포트 브리즈 군도에 도착한 참이었다.


티아마트
......

섬 주민 1
어라? 오늘은 평소보다 바람이 세네.

섬 주민 2
으음... 기분 좋은 바람이야. 빨리 일 시작하지.

티아마트
......


포트 브리즈는 맑게 개이는 날이 많은 온화한 기후의 군도였다. 티아마트는 내키는 대로 너른 고지와 각 섬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며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꼈다.


티아마트
......


방랑에 지쳐 있던 티아마트는 청량한 공기에 이끌려 포트 브리즈에 머무르기로 했다.





섬 주민 3
아, 오늘도 바람이 좋네~!


티아마트가 포트 브리즈를 거주지로 삼은 뒤,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섬 주민 4
풍차가 쌩쌩 도니 일도 잘 풀리는구만!

섬 주민 3
빨래도 잘 마르고~

티아마트
......


인간의 말을 할 수 없는 티아마트는 그들의 마을에서 거리를 둔 채 주민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 그녀는 인간들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며, 기분에 따라 노래하듯이 바람을 불어보내곤 했다.


티아마트
......

갓난아이
꺄아~!

섬 주민 3
후후. 바람이 기분 좋지?


그녀에게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그러나 인간들이 그 바람을 맞으며 보여주는 미소는 그녀가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따듯한 무언가를 느끼게 했다.


티아마트
......!


어느 새, 군도 사이에서 쉴새없이 부는 바람은 포트 브리즈 사람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공사 1
이래서는 한동안 배도 못 띄우겠군...

섬 주민 4
요새 계속 날씨가 나빠서 우리도 곤란한 참이야...

기공사 2
모처럼 기공정 좀 괜찮게 다루게 됐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이 폭풍우 속에서 날고 싶지는 않구만.


별의 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하늘의 민족들은 남겨진 별의 기술을 탐욕스럽게 이용하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기공정의 가치가 빛을 발했으며, 각지에서 기공단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풍요로운 바람이 넘쳐흐르는 포트 브리즈에는 수많은 기공정들이 모여들어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섬 주민 4
용감한 기공사들이라고 해도 폭풍은 무서운 모양이군.

기공사 2
당연하지. 게다가 나는 기공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할아버지한테 폭풍 조심하라는 말을 귀 따가울 정도로 들었거든.

기공사 1
패공전쟁에서 싸우셨다던 할아버지 말인가.

기공사 2
할아버지가 전장에서 싸웠던 성정수 중에 바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폭풍우를 일으키는 녀석이 있다고 그러셨어. 

섬 주민 3
성정수라는 건 별의 민족이 쓰던 병기 아냐?

섬 주민 4
그렇게 무서운 녀석도 있었나.

기공사 2
그 바람 다루는 녀석뿐만 아니라, 성정수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놈들뿐이래.

섬 주민 3
난 본 적도 없지만 성정수라는 건 아직 하늘의 세계에 있는 거지?

기공사 1
혹시 이 폭풍우도 그 녀석이 한 짓 아냐?

섬 주민 3
무서운 얘기 하지 마!

기공사 2
그렇게 허튼 소리도 아닐걸? 성정수라는 건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뛰어넘은 괴물이라고 하니까 말야.

 

 




6-2


소문은 섬 주민들 사이에 퍼져나가, 점점 그 크기를 불려나갔다.


섬 주민 4
이봐, 구름 움직이는 게 심상치 않은데?

섬 주민 5
오늘은 빨리 끝내고 갈까... 또 폭풍이 불어닥칠지도 모르니.

섬 주민 4
무서운 소문도 있고 말야.

섬 주민 5
성정수가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건지도 모른다는 소문?

티아마트
......?


티아마트는 바람을 관장하는 성정수이긴 하나 모든 기후를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포트 브리즈를 덮친 폭풍도 그녀가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섬 주민 5
제발 좀 그러지 말지. 바람이 좋은 동네라서 포트 브리즈였던 거 아니냐고.

티아마트
...


인간들의 불만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티아마트에게 내리꽂혔다.


티아마트
......


음습한 불만의 목소리는 티아마트의 안에서 진흙처럼 쌓여 그 힘을 탁하게 만들었다.


티아마트
...

섬 주민 5
우와, 뭔가 진짜로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섬 주민 4
뭔가 미지근한 게 닭살이 돋네...

섬 주민 5
제길! 진짜 이 동네가 어떻게 된 거야?


인간들이 공포와 혐오를 보내는 것을 보며 티아마트는 떠올렸다.

 


티아마트
...


그 옛날, 자신이 휘감고 있는 바람이 전장에서 하늘의 민족들을 다치게 했으며, 공포에 떨게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코스모스
포트 브리즈 군도라... 모처럼 인간과 성정수가 잘 공존해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계기는 한없이 사소한 의심. 포트 브리즈의 바람은 풍요로운 은혜의 상징에서 언제 이빨을 들이댈지 모르는 공포스러운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루시펠
감정에는 힘이 있다. 그것이 쌓이다 보면 끌어들이는 것도, 내치는 것도 지극히 간단하지. 전장에서도 그랬다. 휘몰아치는 감정이 성정수들을 휘두르고, 찢어발기며 그들을 바꿔 갔다.

게다가...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쉽게 의심을 낳았고, 한번 시작된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코스모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라...





섬 주민 6
오늘 날씨는 나쁘지 않다만...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섬 주민 5
안정되어야 할 텐데 말이지. 기공정이 접근하질 못해서 장사가 엉망이 되니.

코스모스
이 섬에는 티아마트 님의 가호가 함께한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섬 주민 6
티아마트 님? 무슨 소리야?

코스모스
바람을 조종하는 성정수다. 모르는가?

섬 주민 5
성정수라는 건 엄청 무서운 녀석들이잖아? 폭풍을 일으키는 녀석 아니었어?

코스모스
그런 말도 안 되는.


코스모스는 인간들 앞에서 약간 과장스러운 말투로 외쳤다.


코스모스
성정수란 본디 인지를 초월한 거대한 힘을 가지는 자들. 정말로 이 땅과 척을 지려고 했다면 포트 브리즈 군도는 오래 전에 빈 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섬 주민 6
뭐...?

코스모스
허나 생각해 보라. 폭풍이 인간에게 피해를 입혔는가?

섬 주민 6
기공정이나 마을이 조금 부서지기는 했지만...

섬 주민 5
그러고 보니,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은 것 같은?

코스모스
그렇겠지. 성정수 티아마트 님께서 섬에 가호를 부여하고 계시다.

섬 주민 5
성정수의 가호라...

섬 주민 6
티아마트 님...





코스모스
성정수 티아마트여.

티아마트
......

코스모스
자신의 힘과 존재... 인간과의 관계 사이에서 헤매이는 별의 짐승이여. 네가 인간 근처에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겠다면 떠나가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포트 브리즈에 머무르고 싶다고 바란다면... 인간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도록 해라.

티아마트
......?

코스모스
네게 있어서는 기분좋게 부는 바람도, 거친 폭풍우도 똑같이 자신의 입김에 불과하겠지.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다르다. 

티아마트
......

코스모스
너는 바람의 힘으로 인간에게 가호를 내리는 성정수가 되어라. 네가 그들의 바람에 응한다면 그들은 네게 신앙을 바칠 것이다.

티아마트
...

 

 




섬 주민 4
날씨 엉망이구만. 빨리 개이면 좋을 텐데...

섬 주민 5
어! 저거 봐! 저기!

티아마트
......

섬 주민 3
꺄아악! 폭풍 속에 사람이 떠 있어!

기공사 2
잠깐... 저게 성정수인지 뭔지 아냐?

섬 주민 4
제길, 역시 성정수가...!

티아마트
......!

섬 주민 3
어...? 폭풍우가...

섬 주민 5
하늘이 개었어...!

티아마트
...


티아마트의 힘으로 폭풍우는 걷히고,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비쳤다.


섬 주민 6
대단해... 이게 성정수의 힘인가...

섬 주민 3
티아마트 님...

갓난아이
꺄아~!

티아마트
......

루시펠
그렇군... 성정수의 존재를 알리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라.

코스모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가 같은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관계에 확실한 형태를 부여하는 편이 좋다.

루시펠
그렇지. 그것이 하늘의 세계를 살아가는 성정수에게 하나의 지침이 된다면 좋겠다만...

 

 




6-3

 

 



실프
없어...


어떤 섬의 숲 속. 그곳에 별의 민족이 남기고 간 성정수가 있었다.


실프
왜... 혼자인 거지. 여기엔 있고 싶지 않아.


성정수는 마음 속을 죄어오는 적막을 자각하지 못한 채 섬을 떠돌아다녔다.

 

 




작은 마을의 주민 1
어라?

실프
사람, 있어.


숲에서 나온 성정수는 작은 마을에 닿았다.


작은 마을의 주민 1
아가씨, 무슨 일이니? 혼자 왔어?

실프
혼자. 놓고 가 버렸어.

작은 마을의 주민 1
그거 큰일이구만... 엄마나 아빠가 널 놓고 가셨다고?

실프
......? 아빠도 엄마도 없어. 나는 성정수니까.

작은 마을의 주민 1
성정수...?

실프
별의 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짐승.

작은 마을의 주민 1
아니, 그건 알고 있는데...


실프가 있는 이 섬은 패공전쟁의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렇기에 주민들 또한 성정수라는 병기에 대한 공포심이 옅었다.


작은 마을의 주민 1
겉보기에는 작은 여자아이로만 보이는구만.

실프
인간을 본따서 만들었으니까.

작은 마을의 주민 2
저기, 무슨 일 있어요?

작은 마을의 주민 1
그래. 실은 이 아이가...





작은 마을의 주민 2
으음... 성정수라고 해도 여자아이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해. 근처 숲에는 마물도 나오는걸.

실프
마물은 괜찮아.

작은 마을의 주민 1
너 어디 가고 있는 중이었니?

실프
혼자가 아닌 곳을 찾고 있었어.


담담히 이어지는 실프의 말을 들으며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작은 마을의 주민 1
흠... 그럼 이 마을에 있을래?

작은 마을의 주민 2
그러게. 그러면 되겠다. 역시 이런 여자아이를 혼자 다니게 둘 수는 없지.

실프
당신들하고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아.

작은 마을의 주민 1
하하. 그러면 원하는 만큼 여기 머무르도록 해라.


그렇게 소녀의 모습을 한 성정수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과 살아가기 시작했다.





실프
이 나무 다발은... 집 뒤에 옮겨두면 돼?

작은 마을의 주민 2
그래, 부탁할게. 땔감으로 쓸 거거든. 아, 손 안 다치게 조심하고.

실프
응. 괜찮아.

작은 마을의 주민 3
큰일났어! 빨리 와 봐, 할아버지가...!

작은 마을의 주민 1
으, 으으...


간소한 침대 위, 의식이 희미해 보이는 노인이 괴로운 듯이 숨을 쉬고 있었다.


작은 마을의 주민 2
이거... 안 좋아 보이는데.

실프
할아버지, 왜 그래? 요즘 계속 자고 있어.

작은 마을의 주민 2
병에 걸리신 거야. 쭉 앓고 계셨는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작은 마을의 주민 3
어떻게 하지. 이제 약도 없는데...

작은 마을의 주민 2
아니, 약이 남아있었다고 해도 이젠 안 들었을 거야.

실프
약이라면 있어.

작은 마을의 주민 2
뭐? 어디에...

실프
...여기.

작은 마을의 주민 2
이건 뭐야...?

실프
영약 아르마. 인간의 병이라면 이걸로 고칠 수 있어.

작은 마을의 주민 3
처음 들어보는 약인데... 방금 당신이 만든 거야?

실프
응. 만들었어.

작은 마을의 주민 2
성정수의 약이라...

실프
먹으면 할아버지는 건강해질 거야.


마을 사람들은 실프가 내민 영약과 침대 위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노인을 몇 번이나 번갈아 바라보았다.


작은 마을의 주민 2
...드시게 하자.

작은 마을의 주민 3
괘, 괜찮은 거야?

작은 마을의 주민 2
어차피 다른 수도 없어. 게다가 실프가 이 할아버지한테 나쁜 짓을 할 거라고도 생각되지 않는걸.





실프
할아버지, 병에 물 채워놨어.

작은 마을의 주민 1
오, 고맙다.

실프
응.


실프가 건넨 영약 아르마의 힘으로 노인의 상태는 한 눈에도 알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다.


작은 마을의 주민 2
할아버지. 벌써 밖에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작은 마을의 주민 1
보이는 것처럼 쌩쌩하단다. 이제 괜찮아.

작은 마을의 주민 3
한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정말 잘 됐어.

작은 마을의 주민 1
실프 덕분이란다.

실프
...그래?

작은 마을의 주민 2
성정수라는 거 정말로 대단하구나.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실프가 눌러앉은 마을도 조금씩 커지며 번성해 나갔다. 그리고 당연히 "영약 아르마"에 대한 소문이 근방에도 퍼지게 되었다.


옆 마을 주민
부탁드립니다, 제발 아르마를 나눠 주세요...! 역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희 마을에도 아르마가 있다면...!

실프네 마을 주민 1
하지만 이 약은 우리 마을의...

실프
아르마가 필요해? 필요하면 만들게.

옆 마을 주민
아아... 감사합니다...!


아르마의 힘이 유명해질수록 귀찮은 일들도 늘어났다. 아르마를 노린 도적들이 들이닥친 적도 있었다. 영약의 중개를 통해 돈을 벌려고 하는 상인도 있었다.


실프
가지고 싶으면 말을 하면 될 텐데. 싸울 필요 없이.


그러나 실프는 약을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아르마를 내어주고자 했다.


실프네 마을 주민 2
실프! 저 녀석은 외부인이라고. 아르마 주지 마!

실프
하지만 필요하다고 했는걸.

근처 마을 주민
최근 우리 마을 근처에서 원인 불명의 병이 유행하고 있어. 아르마뿐만 아니라 이상한 독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실프네 마을 주민 3
말도 안 되는 트집이야! 실프는 그런 짓 안 해!

근처 마을 주민
계속해서 실프를 독점하고 있는 너희들의 말을 믿을 수 있겠어?


언젠가 아르마와 실프를 둘러싸고 큰 다툼으로 발전하리라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6-4

 


섬의 병사 1
겁먹지 마라! 싸워라! 다친 녀석들에게는 아르마가 있어!

섬의 병사 2
반드시 실프를 빼앗아라! 아르마를 독점하게 두지 마라!


그리고 어느 새 전화는 섬 이곳저곳으로 퍼져 있었다.


루시펠
이 섬에도 분쟁의 불길이...

 


패공전쟁의 전화를 피한 아름다운 섬에 울려퍼지는 노성이 고통스러웠다.


코스모스
인간에게 있어 성정수의 힘은 지나치게 크다. 그것은 꼭 병기로서의 파괴력에 한정되지 않지.

루시펠
그래. 실프의 힘도 본래 인간을 치유하는 다정한 것이었을 터이나... 그나저나 아르마는 무조건으로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군.

코스모스
그래. 아마도. 주변에 좋지 않은 일이 이어지는 것은 과도한 아르마의 생성된 결과로 좋지 못한 것이 흘러넘친 탓일 거다. 아무래도 실프 자신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만...

루시펠
뭐가 되었든 이대로라면 다툼이 끝나지 않을 거다. 코스모스,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

코스모스
......

분쟁의 불씨는 인간과 하늘의 세계에 있어 지나치게 이질적인 성정수의 힘이다.

루시펠
그렇다면 그 원인을 뿌리뽑을 셈인가?

코스모스
원인...


표정에 거의 변화가 없던 코스모스의 얼굴에 희미한 우울함이 떠올랐다.


코스모스
실프를...?





코스모스
성정수 실프여.


그리고 코스모스는 실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실프
당신은 누구야?

코스모스
...코스모스. 엄밀히 말하자면 다르지만 너와 같은 성정수다.

실프
성정수는 처음 봤어. 여긴 나 말고는 인간밖에 없어.

코스모스
그래, 그렇겠지.

실프
성정수 코스모스. 나한테 무슨 일이야?

코스모스
너는 지금 이 섬에서 너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실프
...좋지 않게 생각해. 인간들이 너무 많이 다치고 쓰러지는 바람에 아르마도 부족해. 인간들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가슴 근처가 아파.

코스모스
알겠다. 분쟁을 막고 싶다면 너는 선택해야 한다. 너 자신이 이 섬에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아르마의 생성을 그만둘 것인가.

실프
아르마가 없으면 사람들이 잔뜩 죽을 거야.

코스모스
그렇다면 네가 사라지겠나?

실프
...그 질문은 비겁해. 내가 없어지면 아르마도 만들 수 없어.

코스모스
허나 분쟁이 없어지면 지금처럼 많은 인간들이 다치는 일도 없을 거다.

실프
그렇겠네... 하지만 여기는... 인간들이 잔뜩 있는 장소. 내가 혼자 남지 않을 수 있는 곳. 


고민에 빠진 실프 앞에서 코스모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코스모스
여기 있고 싶다면 있으면 된다.

실프
아르마를 만들지 않으면서?

코스모스
완전히 생성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허나 조절하도록 해라. 아르마를 만들어내는 너 자신의 존재를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어, 평화의 상징으로 바꾸는 거다.

실프
신앙, 평화...

코스모스
지금처럼 아무에게나 무조건으로 아르마를 넘겨준다면 인간의 욕망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아르마는 너를 따르는 평화로운 나라에 사는 자들에게만 대가로 넘겨주어야 한다.

실프
대가...

코스모스
너를 평화의 상징으로 삼은 나라에서 너는 인간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이후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힘을 가진 이들이 나라를 만들고, 실프를 모시기 시작했다. 인간은 평화롭게 실프를 섬기지 않으면 실프의 가호, 즉 아르마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사
그럼 실프 님... 실례하겠습니다.

실프
......


그렇게 분쟁을 마무리지은 나라, 훗날의 페드랏헤는 성정수 실프의 가호하에 번영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