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발드르
......
가까이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
어이~ 발드르! 발드르으~!
발드르
으음... 마들?
큰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던 발드르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발드르
여기다, 마들.
마들
여기 있었구나! 또 혼자 없어졌길래... 어라, 자고 있었어?
발드르
잠깐.
마들
으음... 발드르. 너 어디 안 좋은 거 아냐?
발드르
...왜지?
마들
요새 자주 자는 것 같아서.
발드르
내가 수면을 취하는 것이 이상한가?
마들
그런 게 아니고! 그냥. 10년 전에는 네가 자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그래.
발드르
그건... 그때의 너는 어린이였지 않나. 인간의 아이는 자는 시간이 많지. 내가 수면을 취하는 사이에는 어린이였던 너도 자고 있었을 뿐이다.
마들
으음... 그런가? 그럴지도. 아니 그보다, 자꾸 어린애라고 하면서 놀릴 거야? 뭐, 나같은 건 성정수인 발드르가 보기엔 언제까지나 어린애나 마찬가지겠지만.
발드르
아니. 너는 변했다. 어른이... 되었지 않나.
마들
뭐... 그렇지.
마들은 발드르 곁에 걸터앉더니 나무에 몸을 기댔다.
마들
발드르, 고마워.
발드르
...무엇이?
마들
전쟁이 끝났는데도 우리랑 같이 있어 줘서.
발드르
아니, 나는...
(달리 갈 곳도 없었다. 그렇기에 여기로 와 버렸지...)
발드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마들은 작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마들
애초에 살아서 돌아온 것부터가 네 덕분이라고 생각하는걸.
발드르
그건 너의... 너희들 자신의 힘이지 않나.
마들
발드르가 가르쳐 줬잖아. 아지다하카가 쓰러질 때까지는 움직이지 말라고. 덕분에 너도 잃지 않았고, 동료들도 쓸데없는 희생을 피할 수 있었어.
발드르는 프레이가 남기고 간 말을 충실히 따라, 전쟁 막판까지 마들 일행을 지키는 것에만 전념했다.
그들의 싸움은 전쟁의 형세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들 일행의 생명, 그리고 발드르와의 연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마들
결국...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뭐였던 걸까.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그 말에, 발드르는 지면에 고정하고 있던 시선을 들어올렸다.
마들
하늘의 민족이 별의 민족하고 싸운 건데도... 결국 우리는 성정수 없이는 이길 수 없었을 거야.
발드르
너는 무슨 일을 해서라도 전쟁에서 이기고 싶었을 텐데. 그리고 결과를 얻지 않았나.
마들
응... 그렇지. 이제 와서 궁시렁거리는 건 그저 현실을 부정하는 겉치레에 불과하겠지.
발드르
게다가... 별의 짐승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병기로서 만들어졌다. 병기는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병기를 사용하는 게 뭐가 잘못됐지.
마들
너 말야... 자꾸 그렇게 병기 병기 그러는데. 뭐 딱히 부정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간단히 딱 잘라 말할 수 없잖아.
왜냐면 난 알고 있는걸. 성정수인 네가 제대로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야. 그걸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도. 그리고 상처를 입으면 우리처럼 피를 흘리는 것도...
발드르
상처는... 너희들만큼 아픔을 느끼지도 않고 간단히 죽음에 이르지도 않으니 상관없다.
마들
그렇다고 해서 막 다뤄도 괜찮은 건 아니잖아!
발드르
그, 그런가...?
마들
아니... 소리질러서 미안해. 내가 싫어서 그런 거야. 아마도. 더 이상은 엉망진창이 된 너를 보고 싶지 않은걸. 그건 정말 심장에 안 좋거든.
마들은 어깨를 움츠리며 씁쓸히 웃었다.
마들
아~! 이상한 소리 해서 미안해. 이미 전쟁은 끝났는데 말이지!
발드르
마음대로 해도 된다. 네 말을 빌리자면, 나는 짐승이자 병기이긴 하지만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 상대 정도는 해 주마.
마들
응... 고마워.
그럼 너도 생각하는 걸 좀 더 입 밖으로 꺼내보는 건 어때? 모처럼 말이 통하는데 아직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거든.
발드르
입 밖으로...
발드르가 생각에 잠기자, 마들은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마들
아하하하! 그럼 이건 어때. 지금 뭐 먹고 싶어?
발드르
...호두빵.
마들
응. 가져왔어!
마들은 빵을 꺼내 두 개로 나눈 후, 옛날처럼 발드르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마들
응... 맛있다!
발드르
이제부터는...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건가?
마들
그렇겠지. 아직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전쟁은 끝났으니까. 앞으로 세계는 점점 더 좋아질 거야. 게다가 나도 이젠 어린애가 아닌걸. 내 힘으로 얼마든지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미소짓는 마들의 눈동자가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발드르는 눈부신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저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5-2
마들
자, 그럼...
마들은 무릎 위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털며 일어섰다.
마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이제 어른이긴 하지만.
발드르
그래... 내일은 중요한 날이었지.
마들
응. 발드르도 꼭 와야 돼? 숲에서 혼자 자고 있지 말고.
발드르
네가 부른다면... 가겠다.
마들
나뿐만이 아니라 코나도 꼭 오랬어.
발드르
그렇다면 더욱더 가지 않을 수 없겠군.
어색하게 미소짓는 발드르의 뺨으로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스쳤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하늘의 민족 5
결혼 축하한다, 마들! 코나!
하늘의 민족 6
젠장~! 행복해야 된다!
마들
고마워!
코나
지금 젠장이라고 한 사람 누구야?
기념할만한 날을 맞이한 남녀를 축복하며, 마을 전체가 행복하고 들뜬 분위기였다.
마을사람 1
마을 젊은이들도 상당히 줄었다만... 저 둘이 무사히 전쟁에서 돌아와 이렇게 맺어질 줄이야... 이리 감사할 데가 있나.
마을사람 2
정말로... 앞으로는 아무 불안 없이 살아가도 되는 거겠지.
마을사람 3
아니, 하지만...
마을사람 2
아. 그랬었지.
마을사람 3
오늘도 왔는걸.
발드르
......
마을사람 3
당사자인 마들과 코나가 저 녀석과 친하니까 부른 거겠지만...
마을사람 2
난 무서워. 조금 더 떨어지자.
마을사람 1
하지만 전쟁 막판에는 저 녀석에게 상당히 도움받았다고 들었는데?
마을사람 3
그야 그렇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무섭다고나 할까... 난 말이지. 아무리 모습이 사람이랑 닮았다고 해도 역시 저 녀석은 괴물이구나 싶더라니까.
마을사람 2
하지만 이미 전쟁은 끝났으니 싸울 이유도 없겠지...?
마을사람 3
그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애초에 별의 민족을 배신하고 우리한테 붙었는데.
마을사람 1
흐음... 다시 우리에게 이빨을 들이댄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겠군...
마을사람 3
전쟁 막판에도 한번 하늘 쪽에 붙었던 성정수가 다시 적이 되었었다는 이야기, 들은 적 있는걸.
마을사람 2
그랬구나... 저 성정수를 정말로 마을에 둬도 괜찮을 걸까... 아니 뭐, 감사하긴 하지만. 저 성정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무사히 종전을 맞이했다고 들었으니까. 하지만...
마을사람 1
흐음... 어렵구만. 뭐가 됐든 오늘은 그만둠세. 축하할 날이니.
마을사람 3
그러게! 일단은 마시자고!
발드르는 마을 사람들의 무리에서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귀는 마을 사람들의 대화를 착실히 전달해 주고 말았다.
발드르
하아... 내가 싸운 건 딱히 하늘의 민족들을 위해서가 아냐.
나는 너를... 너희들을 위해서...
발드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축복해 주는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발드르
마들, 코나...
마들
...!
발드르의 시선을 눈치챈 마들이 곁에 있던 코나에게 그 사실을 알리더니 둘이 함께 손을 흔들었다.
발드르
......
축하한다.
조용히 중얼거린 발드르의 목소리는 두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발드르
바람이 차갑군...
[회상]
프레이는 손바닥을 가볍게 팔에 문질렀다.
프레이
오늘은 조금 춥군요...
발드르
춥다?
프레이
대단한 건 아닙니다만... 당신은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겁니까?
발드르
...딱히.
프레이
그렇군요... 당신은 정말로 싸움에 특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조금 부럽군요.
발드르
그 추위라는 것은 전투에 지장이 생기는 감각인가?
프레이
아뇨, 제가 느끼는 것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허나 인간... 특히 하늘의 민족들에게는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발드르
그런 건가. 이게 춥다는 느낌인가. 이젠 알 것 같다, 프레이.
마들, 코나. 너희들은 춥지 않았으면 좋겠군...
???
저기! 거기 가는 너, 성정수 아냐?
발드르
......
로키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곳을 혼자 터벅터벅 걷고 있다니. 뭐, 요샌 그런 녀석들도 드물지 않지만 말야.
발드르
너는...?
로키
별의 민족.
발드르
!?
로키
아하하! 그렇게 경계할 거 없어. 나도 너랑 비슷한 처지니까 괜찮아.
발드르
뭐...?
로키
너... 보아하니 전쟁 말기에 별의 민족을 배신한 짐승이지? 그렇다고는 해도 하늘의 민족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한 탓에 이런 데를 떠돌고 있는 거고.
발드르
......
로키
하늘의 민족과 별의 짐승이 친하게 지내는 건 근본적으로 힘든 일이니까. 별의 민족과 별의 짐승조차 서로 이해하지 못했는걸.
펜릴
......
로키
인간은 인간, 짐승은 짐승. 대등해지려고 해 봤자 괴로울 뿐이야.
발드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왜 내게 말을 건 거냐.
로키
아니~ 네가 너무 시무룩해 있길래 딱한 마음이 들더라고. 너만 괜찮으면 내 동료로 주워줄까 싶었지.
펜릴
......
로키
이 성정수 펜릴처럼 말이야.
펜릴
흥...
발드르
동료로는 보이지 않는다만. 네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인간과 짐승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로키
아하하! 건방진 소릴 하네. 재미있는걸.
그래서, 어떡할 거야? 내 애완동물 2번이 될래, 그대로 혼자 터벅터벅 정처없는 여행을 계속할래?
발드르
너와는 함께 가지 않겠다.
로키
아 그래? 유감이네.
아~ 맞다.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전화를 면한 멀쩡한 숲이 있거든. 너같은 녀석이 잠깐 낮잠 자기에 딱 좋은 곳일 것 같은데.
발드르
...그런가.
로키는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홀로 떠나가는 발드르를 배웅했다.
로키
아~ 가 버렸네.
펜릴
어차피 저 녀석을 데려갈 생각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주제에.
로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다정하니까 별이 남기고 가 버린 불쌍한 짐승을 그냥 둘 수가 없었던 거야.
펜릴
하아... 누구 얘긴지 참.
로키
응? 방금 뭐라고 했어?
펜릴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로키
흐음... 뭐 그래. 그럼 우리들도 갈까.
펜릴
그래 그래... 이번엔 어디 갈 건데?
로키
글쎄. 슬슬 추워지니까 남쪽으로 갈까.
펜릴
나나 너나 추위같은 건 상관도 없잖아...
로키
아무렴 어때. 어차피 전부 심심풀이에 불과한데.
5-3
발드르
정말 숲이 있었군...
갈 곳 없던 발드르는 로키의 말에 따라 동쪽으로 가서 조용한 숲을 발견했다.
발드르
하아...
그는 눈에 띄는 커다란 나무 밑둥에 몸을 집어던지듯 주저앉았다. 그곳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숲 속에서도 다른 곳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따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발드르
후... 졸리군...
그는 닥쳐오는 졸음에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발드르
(마들... 코나...
...프레이)
[회상]
프레이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패배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군요. 우리 둘이 함께라면.
마들
이렇게 잡고 있으면 따듯해질 거야.
코나
하지만 당신도 아팠을 거 아냐?
잠과 각성의 경계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발드르를 깨우는 목소리
...드... 발드... 군...!
발드르 군, 정신차려! 일어나!
발드르
음... 너는...
사티로스
응, 사티로스야. 오랜만이다~
발드르
무사했나.
사티로스
후후, 발드르 군도 무사했구나. 다시 만나서 기쁘다. 그런데 이런 데서 혼자 뭐 해? 예전에 이야기해 줬던... 하늘의 민족. 마들 군이랑 코나쨩이랑은 만났어?
발드르
그래... 녀석들은 무사히 전쟁에서 돌아와 결혼했다.
사티로스
와! 정말 멋지다! 그럼 전쟁이 끝난 후에 발드르 군도 그 둘이랑 같이 있었던 거야?
발드르
잠시긴 했다만...
사티로스
그렇구나.
발드르
그 녀석... 마들은 자신들에게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와도 친하게 지내 달라고 했다...
사티로스
응...
발드르
마들은...
[회상]
마들
이런 이야기, 너무 성급해서 웃긴가?
발드르
아니... 성정수에게 있어서는 분명 한 순간일 거다.
마들
응... 그렇구나. 그렇겠지.
아~ 기대된다. 우리 애들은 전쟁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는 거야. 성정수도 병기로 싸우지 않아도 되고, 인간과 성정수는 자연스럽게 함께 살면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분명 그런 세상이 될 거야, 발드르.
발드르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더군. 성정수에게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 녀석들은 나이를 먹다가 죽어갈 것 아닌가. 어쩌면 나이들기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 인간이니까. 전장에서 그런 자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설령 그들의 자식이나 손자가 이어진다고 해도 마들과 코나는... 반드시 나를 두고 가 버릴 거다.
사티로스
...그래서 두 사람을 떠나 혼자가 된 거야?
발드르
그것뿐만은 아니다... 계속 졸리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 너무나 졸려.
사티로스
졸린 건 아마도... 코어가 지쳤기 때문이지 않을까.
발드르
코어가?
사티로스
우리 성정수는 코어가 부서지지 않는 한 죽지 않잖아? 하지만 설령 죽을 정도의 상처가 아니라고 해도, 코어에 상처가 나거나 지치거나 하면 회복하기 위해서 잠드는 일도 있는 모양이야.
발드르
내가 이렇게 졸린 건 코어가 수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건가?
사티로스
응. 확실치는 않지만. 여기까지 여행하는 동안 잠드는 성정수를 몇 명이나 봤거든. 분명 다들 전쟁하느라 지쳐버린 거겠지...
발드르
하지만 내 상처는 이미 전부 나았다. 코나의 회복마법이 우수했기 때문에 제대로...
사티로스
응... 하지만 발드르 군. 지치는 건 꼭 육체뿐만이 아니야.
발드르 군은 마음이 지쳐버린 거 아닐까?
발드르
마음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사티로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있다고 생각해, 난. 우리 성정수에게도 분명히 마음이 있어.
조용히 말을 거는 사티로스의 목소리는 귓가에서 다정하게 울려퍼졌다. 하지만 발드르의 손발은 계속 차가운 채였다.
발드르
...모르겠다. 하지만 오랫동안 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사티로스
응. 그러게.
발드르
(잠들면 더 이상 춥지 않은 걸까... 녀석들이 없어질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사티로스
잘 거야? 발드르 군.
발드르
그래, 그럴 거다.
사티로스
발드르 군은 내 친구니까 잠들 때까지 여기 있어 줄게.
발드르
친구...? 너는 정말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성정수로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뿐이다...
사티로스
그런가...? 발드르 군도 이미 알고 있을걸.
어둠에 묻혀가는 세계에서 다정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사티로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티로스
발드르 군은 마들 군, 그리고 코나쨩이랑 친구가 되고 싶었지? 하지만 분명 이미 친구였을 거야. 적어도 그 둘은 발드르 군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발드르
...사티로스.
사티로스
왜에?
발드르
추우니... 너도, 조심해.... 라...
사티로스
응, 고마워. 발드르 군도... 더 이상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자, 발드르 군.
별의 유산편
제1화 잠드는 별들
Weary Primals
5-4
루시펠
최근 코어 상태로 돌아가 잠드는 성정수가 늘어났다.
아름답지만 텅 빈 살풍경한 신전 안에 천사장 루시펠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루시펠
수면은 정체停滞... 본디 진화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천사장의 수심 가득한 목소리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루시펠
패공전쟁은 이 하늘의 세계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으며, 병기로서 수많은 성정수가 만들어졌다. 새로 만들어진 짐승들의 대부분은 천사들에게 주어진 알고리즘을 간이화시킨 것을 토대로 하여 창조된 것. 천사들이 이 하늘의 세계를 관리하고 진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각각 다른 역할을 부여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성정수는 소위 "싸우는 것"이 역할. 아니... 역할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루시펠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짐승들은 하늘에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진화에 노출되고 바람을 알게 되어... 이윽고 생겨난 모순에 농락당했다. 싸움이라는 자신의 역할에 등을 돌리고 자신의 바람을 이룬 자, 역할이 주박이 되어 괴로워하는 자. 하늘의 세계의 진화는 별의 짐승들에게조차 변화를 안겨주었다.
그것은 진화를 이끌어내는 희망이었을 터이나, 많은 짐승들은 괴로워했고 정체를 택하는 자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 또한 사실. 진화를 계속해나가는 하늘의 세계에 있어, 본디 불변이어야 할 별의 짐승의 존재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인가...
???
...그렇기에 하늘의 세계에는 조정이 필요하다.
루시펠
음...?
들려올 리 없던 대답이 들리자 루시펠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
별에서 떨어져 하늘에 남겨져버린 짐승들은 세계라는 천칭 위의 이물질. 언젠가 천칭을 흔들어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뒤틀림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설령 시간이 걸린다 해도 스스로 되돌릴 수 있을 정도의 흔들림이라면 문제는 아니다. 진화헤도 필요한 현상이겠지. 허나 세계가 자정할 수 없을 정도의 불화와 위협에 대해서는 외부로부터 조정할 필요가 있다.
루시펠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이 카난의 신전에서 루시펠이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보는 것이 몇 년만이던가.
루시펠
흥미로운 이야기다만... 우선 당신이 누구인지를 듣고 싶군.
???
나는...
코스모스
코스모스.
루시펠
코스모스... 기억에 없는 이름이다. 성정수라고 하기에는 기묘한 기운이다만...
코스모스
나는 성정수의 화신에 불과하다. 본체는 별의 세계에 머무르는 채다.
루시펠
별의 세계에...? 어째서지?
코스모스
루시퍼에 의해 하늘의 세계에 천사가 만들어진 것과 거의 동시에, 코스모스 또한 별의 세계에서 만들어졌다. 코스모스의 역할은 하늘의 세계의 조정.
루시펠
그것은... 우리 천사와 비슷하군.
코스모스
천사와 코스모스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 천사가 관장하는 것은 하늘의 세계의 진화다. 사대천사들이 자연계의 원소 밸런스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기는 하나... 원칙적으로 인간의 행위에는 관여하지 않잖나.
루시펠
그렇다. 이전의 패공전쟁도 그렇고... 나의 시간은 대부분 관측을 위해 사용된다.
코스모스
음. 그러니... 나는 코스모스의 의지를 체현하는 자로서 여기에 현현했다. 코스모스란 하늘의 세계를 조정하여 올바르게 존속시키기 위한 시스템이다.
조정이란 항상 객관적이자 부감적俯瞰的*인 위치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렇기에 창조주는 코스모스를 하늘의 세계에서 격리하여 별의 세계에 숨겼다. 루시퍼의 눈에서 숨기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모양이다만... 지금 그 점은 아무래도 좋다.
*내려다봄, 관망함
패공전쟁을 거치며 하늘의 세계는 그 모습을 바꿨다. 별의 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하늘의 세계는 마치 실이 끊어진 연과 마찬가지다. 남겨진 별의 짐승과 하늘의 민족들 사이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알력이 생겨날 것이다.
루시펠
실제로 그 불씨는 이미 각지에서 타오르려 하고 있다.
루시펠의 목소리는 어딘가 시름을 품고 있었으나, 코스모스의 화신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생각했다. 앞으로의 세계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결하리라고. 그렇기에 지금 여기 현현한 내가 이대로 하늘의 세계에 머물며 인간들의 행위를 이 눈으로 직접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지도 겸 안내 역할로는 너를 지명하겠다.
루시펠
나를?
코스모스
올바른 조정을 위하여 내게 하늘의 세계를 알려다오, 루시펠.
루시펠
...알겠다. 그 요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군.
코스모스
그래, 부탁한다.
루시펠
그럼... 잘 부탁한다,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루시펠이 내민 손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코스모스
손? 왜 그러는 거지?
루시펠
악수라고 하는... 인사 비슷한 거다.
...아, 그러고 보면 나도 실제로 악수를 하는 것은 처음이군.
코스모스
그런가.
조심스레 겹쳐진 코스모스의 손. 그것은 루시펠이 수백 년만에 느끼는 타인의 체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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