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패공전쟁편
제2화 짐승과 인간
Beast and Man
소년과 소녀는 상처입은 청년을 숲 안쪽에 남겨둔 채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코나
마들... 저 사람, 그냥 두고 와도 괜찮은 거야?
마들
저 형은 말이지, 탈영병? 이라는 걸지도 몰라
코나
그건 전장에서 도망친 사람 말하는 거야?
마들
응. 힘들어서 도망치는 사람이 가끔 있대.
코나
그럼 저 사람은 발견되고 싶지 않겠네.
마들
그럴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코나
그래...
코나는 풀숲 위를 밟던 자신의 발끝으로 시선을 떨궜다.
코나
저기... 저 사람, 적은 아니겠지...?
마들
적이라니, 전쟁 상대?
코나
응.
마들
그건 아니지 않을까? 우리랑 전쟁에서 싸우는 건 성정수라는 괴물들이라며?
코나
응. 별의 짐승이라고 들었는데...
마들
으음... 역시 그 형은 인간이었는걸. 짐승처럼 보이진 않았어.
코나
그래... 그치? 그렇겠지.
불안을 떨쳐낸 듯한 코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코나
그럼 저 사람에 대한 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마들
응! 마을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자.
코나
내일 약이랑 먹을 걸 들고 오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마들
그러게. 우리끼리 다시 오자.
사람을 구해냈다는, 좋은 일을 했다는 고양감과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설렘이 두 사람의 가슴에 차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로부터 며칠간 마들과 코나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숲 안쪽에 있는 청년에게 들렀다.
마들
저기, 형. 매번 형이라고만 하니까 좀 그렇다. 이름이 뭐야?
발드르
...발드르.
마들
발드르구나! 난 마들이야!
발드르
처음에 들었다. 마들과 코나지?
마들
응! 맞아!
코나
마들, 흔들지 마. 발드르 붕대 벗겨지잖아.
코나는 발드르의 상처에 붕대를 감으며, 팔꿈치로 마들을 꾹 찔렀다.
마들
으아~ 미안해!
발드르는 들떠 보이는 아이들에게 얌전히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들에게 기이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발드르
너희들은... 어째서 매일 여기에 오는 거지?
마들
응? 그야...
마들과 코나는 눈을 크게 뜨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마들
발드르가 다쳤으니까 그렇지.
코나
의사선생님 정도는 아니지만 내 마법이랑 약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발드르
아니, 그게 아니라...
평소 무표정한 발드르의 얼굴에서 흔치 않은 곤혹이 엿보였다.
발드르
어째서 너희들은 내 부상을 신경쓰는 거지? 너희들에게 그럴 책임은 없을 텐데.
마들
어? 그치만 다친 거 그대로 두면 아프잖아.
발드르
응? 네가 말인가?
코나
무슨 소리야. 당연히 발드르가 아픈 거 말이지.
발드르
......
코나
자! 붕대 다 감았어.
발드르
그래...
아이가 감은 것이라고는 하나 하얀 붕대는 제대로 상처부위를 감싸고 있었다.
마들
그리고 이게... 오늘 분의 빵이랑 물이야. 조금밖에 없어서 미안해.
발드르는 마들이 꺼낸 꾸러미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발드르
너희들은 아무 상관도 없는 타인에게 선정을 베푸는 습관을 가지고 있나?
마들
응~? 이제 상관 있잖아.
발드르
뭐?
마들
이미 만나 버렸는걸. 으음... 뭐랄까, 얼마 전에 선생님이 말해줬는데...
코나
아, 나 알아. 어떤 인연이든 소중히 하라, 맞지?
마들
맞아! 그거!
발드르
어떤 인연이든?
마들
응. 하늘은 엄청 넓잖아? 그리고 사람도 엄청 많고...
코나
한 사람이 일생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 있어. 그러니까 만난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해야 된다는 말이야.
마들
좋은 말이다 싶었어. 그러니까 발드르와의 인연도 소중해.
발드르
그런가...
자신과는 연이 없는 인간의 가치관일 뿐이라고 발드르는 생각했다. 그러나 쉴새없이 표정을 바꾸며 까르르 웃는 이 작은 생명체들의 말을...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코나의 어머니
코나!
코나
!
오늘도 소량의 음식과 약을 챙겨서 나가려고 하던 코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코나
왜, 왜 그래? 엄마.
코나의 어머니
어딜 가는 거니?
코나
아... 숲이나, 여기저기! 마들이랑 같이!
코나의 어머니
그래. 너희는 정말 사이가 좋구나. 하지만 너무 멀리 가면 못 써. 해가 지기 전에는 꼭 돌아오렴.
코나
괜찮아. 늘 듣는 소리니까 다 알고 있어. 덤으로 장작도 주워 올게.
코나의 어머니
그래, 고맙다. 너는 야무진 아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지금은 평소보다 더 조심해야 된다.
코나
평소보다? 무슨 소리야?
코나의 어머니
여기서 가장 가까운 전장 있잖니.
코나
...아빠랑 오빠가 죽은 데 말이지.
코나의 어머니
그래... 아빠랑 오빠가 노력한 덕분에 우세한 곳이었어. 하지만 거기서 부상을 입은 병기가 탈출했거든... 이 근처에 숨어있는 거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있단다.
코나
부상을 입은 병기...?
코나의 어머니
엄청나게 무서운 성정수야.
코나
성정수가 근처에...?
코나의 어머니
괜찮아, 코나.
어머니는 딸을 꽉 끌어안았다.
코나의 어머니
마을 사람들도 경계를 강화하고 있고, 애초에 그저 소문일 뿐이야. 무서워할 거 없어.
코나
...응, 엄마. 괜찮아. 안 무서워.
안 무서워...
마들
코나? 왜 그래?
코나
아, 아무 것도 아냐!
마들
딴 데 정신팔려 있던데, 괜찮아?
코나
괜찮아 괜찮아. 자, 오늘도 마법으로 발드르의 상처를 치료해 줄게!
발드르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 마법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내 상처는 이미 거의 다 나았으니 무리하지 마라.
코나
괜찮다니까. 정말 지독한 상처였으니까 방심하면 안 돼. 자, 가만히 있어.
마들
와... 코나 마법은 정말 대단하다. 이제 거의 다 나았네.
코나
으음... 이렇게 심한 상처를 치료해 본 건 처음이긴 한데... 원래 이렇게 빨리 낫는 건가?
마들
코나가 대단해서 그런 거 아냐?
코나
그렇다면 좋겠지만... 애초에 그 정도의 상처라면 보통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발드르는 어떻게 전장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발드르
......
코나
...역시 얘기하기 싫어?
발드르
아니. 인간이라면 죽을 정도의 엄청난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전장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인간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상처가 아문 것도 전부...
내가 성정수이기 때문이다.
2-2
마들
서, 성정수...?
코나
마들! 안 돼! 떨어져, 위험해...!
마들
어, 그치만...
코나
역시 아니었어... 인간이 아니었어. 성정수였어!
순간, 발드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발드르
...!
마들
왜 그래? 괜찮아? 다친 데 아파?
코나
마들! 안 돼!
코나는 마들의 팔에 달라붙어 그가 발드르에게 다가가려는 것을 막았다.
마들
그치만 발드르는...
마들은 당황에 빠진 눈동자로 발드르와 코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발드르
나는... 너희들에게, 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
코나
그런... 어떻게 그런 말을 믿으라는 거야?
발드르
...모르겠다. 그것은 나의 역할이 아니다.
천천히 고개를 젓는 발드르는 뭔가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코나
마들! 빨리 도망쳐!
마들
으아! 코나, 기다려!
발드르! 저기... 나는...!
발드르
......
코나에게 질질 끌려가듯 떠나면서도 마들은 계속 등 뒤의 발드르를 걱정했다. 그러나 서둘러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발드르는 소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날이었다.
마들
발드르~? 발드르, 어디 갔어? 나야, 마들이야~
어제에 이어 모습을 드러낸 마들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발드르는 그를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발드르
너...
마들
발드르! 다행이다~ 못 만나면 어쩌나 했어.
발드르
왜 온 거냐? 심지어 혼자서...
마들
오늘 온 건 코나한테는 비밀이야.
발드르
어째서지?
마들
화낼 테니까... 아, 그치만 코나는 그냥 날 걱정하는 것뿐이야! 코나는 다정하거든...
발드르
너희들은 같은 이야기를 하는군.
마들
응? 나랑 코나가?
발드르
오늘 아침 일찍, 코나도 혼자 여기에 왔었다. 마들은 다정하다고 하더군.
코나
아직 있었구나...
발드르
너야말로 다시 올 줄은 몰랐다. 마들은 같이 오지 않은 건가?
코나
오늘은 혼자 왔어. 당신이 아직 여기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발드르
네 기대에 부응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아직 있다. 그래서? 너는 어떡할 거지?
코나
...왜 도망치지 않는 거야? 나나 마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발드르
생각하지 않았다.
코나
어째서?
발드르
......
실제로 너는 이야기하지 않았잖나. 어째서지?
코나
...당신이 정말 성정수라면 지금 마을에 남아있는 어른들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야. 아무리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고 해도... 성정수는 혼자 있어도 대포나 무기를 잔뜩 가진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다고 들었거든.
발드르
성정수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일괄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옳은 판단이다.
코나
똑같은 이유로, 발드르가 나나 마들, 마을 사람들을 어찌하려고 생각했다면 이미 그렇게 되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믿어보기로 했어.
[회상]
발드르
나는... 너희들에게, 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
코나
그런... 어떻게 그런 말을 믿으라는 거야?
발드르
그런가... 좋은 판단력이군. 너는 현명한 인간인 듯하다. 마들 쪽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코나
마들은 다정해! 마들은 정말 다정한 친구야. 누군가가 다치기라도 하면 항상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해... 당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걱정했어. 상태가 좋아지니까 기뻐했고. 친해져서 기쁜 것 같았어.
어제,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로도 마들은 변하지 않았어. 그런 식으로 여길 떠나온 뒤... 남겨진 당신이 어떡하고 있을지 계속 걱정했어.
발드르
...그런가.
코나
나는 그 아이가 상처받는 게 가장 싫어. 그 아이를 상처주는 것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코나는 의연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더니 발드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코나
당신은 마들을 상처주지 않을 거지?
발드르는 조용히 소녀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발드르
나는... 너희들에게, 코나와 마들에게 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어제와 같은 대사였다. 그러나 훨씬 분명하게 발드르 자신의 의지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들렸다.
코나
...응, 알았어. 당신을 믿을게, 발드르.
발드르
그래.
2-3
코나와 발드르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숲의 나뭇가지 사이로 들려오는 새 소리만이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발드르
...코나?
더 이상 말을 잇지도, 그렇다고 떠나지도 않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는 코나를 보며 발드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드르
왜 그러지?
코나
한 가지 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당신은 여기서 가장 가까운 전장에서 왔다고 했었지... 정말이야?
발드르
가깝다고는 하나 인간의 발걸음으로는 하루 밤낮 이상이 걸릴 거리이다. ...가장 근접하기는 했지. 방향은... 저쪽이다.
코나
저쪽...
코나는 발드르가 가리킨 저편을 향해 머나먼 시선을 보냈다.
코나
당신이 있었던 전장에서 말이지, 아빠랑 오빠가 죽었어.
발드르
......
코나
당신도 성정수니까 하늘의 민족을 잔뜩 죽였겠지?
발드르
그렇지.
코나
죽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어?
발드르
...전부는 기억하지 못한다.
코나
그렇구나.
발드르
네 아버지와 오빠를 죽인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군.
코나
...그런 건 모르는 거잖아...
코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옷소매를 질끈 움켜쥐었다.
발드르
그래,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코나
......
발드르
내가 증오스럽나?
코나
...모르겠어, 하지만... 미워하고 싶지, 않아. 여기서 처음 당신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 엄청난 상처를 보면서 정말 무서웠어. 아빠도 오빠도, 이런 상처를 입고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펐어.
발드르
그렇겠지...
[회상]
하늘의 민족
흐, 으으... 살려 ㅈ...
발드르
남은 게 있었나.
하늘의 민족
커억...!
발드르
흥... 별 거 없군.
발드르
......
코나
하지만 당신도 아팠을 거 아냐?
발드르
뭐...?
코나
그러니까... 전쟁이란 건 그런 거구나, 하고 생각했어.
발드르
그런 거라니?
코나
적이나 아군이나, 다치게 한 사람이나 다친 사람이나... 분명 다들 엄청 아플 거고, 도망치고 싶은 사람도 어느 쪽에나 있고. 그래도 싸워야만 하는 것이 전쟁인 거겠지.
발드르는 그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코나
전쟁은 싫어. 없어졌으면 좋겠어. 하지만 발드르는... 싫어하고 싶지 않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마들
그랬구나...
발드르
......
코나에게도 말했지만,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
마들
으음... 어째서?
발드르
그건... 내게 내려진 명령이 아니니까...
마들
명령? 누구한테 명령받고 있어?
발드르
나는 전장에서 이 힘을 휘두르게끔 명령받았다. 받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 태어났을 때부터 지니고 있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우리 별의 짐승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마들
그거... 역할 이외의 일은 하면 안 된다는 뜻이야?
발드르
...역할 이외의 일을 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
마들
으음... 의미같은 거 말고... 그 밖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어떡할 건데?
마들의 물음에 발드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들
예를 들어서! 이 빵, 발드르한테 주려고 가져온 건데. 먹고 싶지 않아?
발드르
...나는 본디 육체를 유지하는 데에 식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들
엄청 맛있는데?
마들은 빵 가장자리를 조금 뜯어서 입에 넣었다.
마들
으음~ 맛있어! 난 이 호두빵이 제일 좋더라! 고아원에서는 거의 못 먹는 거거든. 그래서 늘 기대하고 있었어.
발드르
고아원이라면...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을 모아 양육하는 기관을 말하는 거였지.
마들
맞아. 난 태어나자마자 아빠랑 엄마 둘 다 죽었다고 하더라고.
발드르
그런가.
그저 조용히 사실을 긍정할 뿐인 발드르의 대답에 마들이 활짝 웃었다.
마들
응! 그보다도 발드르, 이 호두 빵 말이야!
발드르
호두 빵이 어쨌다는 거지.
마들
발드르도 먹어 봐.
발드르는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내밀어진 빵과 마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발드르
좋아하는데도 가끔씩밖에 먹지 못한다면서? 그렇다면 네가 전부 먹도록 해.
마들
으음... 그치만 좋아하니까 발드르도 같이 먹었으면 좋겠는걸.
마들은 반쯤 억지로 빵을 발드르의 손에 들려주었다.
마들
먹어 봐!
발드르
...우물.
마들
어때? 어때?
발드르
표면은 뻣뻣하다만 안쪽은 부드럽군. 그리고 뭔가 딱딱한 것이...?
마들
그게 호두야!
발드르
빵 자체와는 다른... 어떠한 냄새가 난다.
마들
그치? 엄청 좋은 냄새 나지?
눈을 반짝이며 묻는 마들의 말에 발드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발드르
맛있는... 것 같다.
마들
응! 응! 그치! 다음에는 코나가 좋아하는 드라이 후르츠 빵도 가져올게.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알려줬으면 좋겠어.
발드르
...그래.
그로부터 한동안 마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천천히 나눠먹던 호두빵의 마지막 한 조각이 발드르의 뱃속으로 사라졌을 즈음이었다.
마들
나, 슬슬 가 봐야겠다.
마들이 옷에 묻은 흙을 가볍게 털어내며 일어섰다.
마들
그럼 잘 있어... 또 올게!
마들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며 저 멀리 사라졌다. 그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발드르는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2-4
마을 사람 1
숲 변두리에서 혈흔이 발견된 것 같더군.
마을 사람 2
역시.. 이 근처로 도망쳤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마을 사람 1
어찌해야 할지... 샅샅이 뒤져서 찾아낼까?
마을 사람 2
위험하지 않을까...? 부상을 입었다고는 해도 사람을 수없이 죽인 괴물이잖아?
마을 사람 1
음... 젊은 남자도 부족한 형편이니...
마을 사람 3
큰일이야! 숯 굽는 할아버지가 죽어 있어!
마을 사람 2
뭐라고!?
마을 사람 3
살해당한 거야! 짐승한테 먹힌 것처럼 갈기갈기 찢겨서...!
마을 사람 2
짐승! 그럼 역시 도망쳤다는 별의 짐승이 이 근처에...!
마을 사람 1
이게 어찌된 일인지...
마을 사람 3
어서 사람들을 모아서 숲을 뒤져 보자고.
마을 사람 2
괘, 괜찮을까...? 상대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잖아?
마을 사람 3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 제길... 성정수 녀석... 마을에 손대게 놔두진 않겠어!
마들
큰일이야... 발드르!
코나
마들, 기다려!
코나는 숲 안으로 뛰어가려던 마들에게 소리질러 그를 불러세웠다.
코나
발드르한테 가려는 거지?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마들
코나! 큰일났어. 발드르가, 발드르가...!
코나
진정하고 제대로 얘기해 봐. 마을 사람들이 떠들썩하던데. 숲이 어쨌다느니, 성정수가 어쨌다느니... 저기,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어?
코나
그래... 그래서 저렇게 큰 소동이 일어난 거구나...
사정을 들은 코나는 마들의 손을 잡고 서둘러 숲 안쪽으로 향했다.
마들
어서 발드르한테 위험하다고 알려줘야 해...!
코나
...마들은 숯 굽는 할아버지를 죽인 게 발드르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보구나?
마들
생각 안 해! 그럴 리가 없잖아.
코나
어째서?
마들
할아버지는 짐승한테 갈기갈기 찢겨진 것 같다고 했었어. 발드르라면 그런 식이었을 리가 없어. 발드르는 검을 가지고 있었는걸. 만약 무슨 사정이 있어서 발드르가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검에 베인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코나
그러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마들
아마 마물이나 동물한테 당한 거 아닐까 싶어. 할아버지가 불쌍하고, 죽었다는 게 너무 슬퍼... 그치만 발드르가 한 짓이 아닌걸. 이대로는 다들 발드르를...
발드르
너희들.
마들
발드르! 다행이야. 지금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발드르
알고 있다. 사정은 들었어.
코나
들었다니?
발드르
방금 너희들의 이야기가 들렸거든.
마들
그렇구나! 그럼 빨리 숨어야...
발드르
숨다니? 숨어서 어떡하라는 거지.
마들
어, 그치만... 이대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오해한 채로 발견되어서 범인 취급당할 거야.
발드르
오해가 아니라면?
마들
뭐...?
코나
발드르, 무슨 소리야? 설마...
발드르
너희 말처럼 나는 그 숯 굽는 노인이라는 인간을 살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녀석이 마물이나 동물에게 당한 거라면 그것은 내 탓일지도 모른다.
마들
어째서? 마물이 한 짓이 왜 발드르랑 관계가 있는 건데?
발드르
내가 이 숲에 눌러앉음으로써 마물의 영역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거다. 그 결과로 평소에는 안전했을 장소에서 노인이 습격당한 거라면 내 탓이겠지.
마들
그건... 그치만 발드르는...
마들은 고개를 떨군 채 양 옆으로 저었다.
마들
그래도 난 모두가 오해한 채인 건 싫어. 발드르를... 성정수를 짐승이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채인 건...
발드르
마들. 나는 상관없다.
마들
내가 싫단 말이야!
마들은 평소답지 않게 큰 소리를 내며 발끈했다.
마들
하지만 발드르는 짐승이 아닌걸! 발드르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했어... 발드르는 호두빵을 맛있다고 해 줬어!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다 먹으라고도 했어! 그러니까 발드르는...
발드르
나는 별의 짐승이다. 네가 뭐라고 하든 인간과는 달라.
마들
그렇다고 해도... 발드르는 마물이나 동물처럼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죽이지 않아!
발드르
......
그렇다고 해도 나는 하늘의 민족을 살해하는 병기다.
마들
어째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전장으로 돌아갔을 때 싸워야만 한다면 안 돌아가면 되잖아!
발드르
그럴 수는 없다. 돌아가야만 한다. 나는 나의 역할을...
마들
여기에 있어! 내가 사람들한테 제대로 설명할게! 다들 발드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뿐이야! 나도 발드르가 처음 만난 성정수란 말이야.
지금까지는 나도 성정수를 엄청 무서운 괴물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발드르를 만나고, 이렇게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어.
그러니까 다들 잘 모르는 것뿐일 거야. 이야기를 해 보고, 발드르에 대해서 알게 되면 사람들도 분명...!
코나
그건 힘들지 않을까.
코나는 필사적인 마들의 말을 담담히 끊었다.
마들
코나!? 어째서?
코나
어른들은 모두 성정수를 무서운 괴물이라고 생각하는걸. 나나 마들이 무슨 소리를 해 봤자...
마들
그래,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잖아! 그러니 제대로 설명하면...
코나
저기, 마들. 어른들은 우리하고 달라. 우리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어.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같은 애들이 하는 말로 어른의 생각을 바꿔놓는 것은 어려워. 왜냐면... 발드르가 성정수라는 사실은 역시 변하지 않는걸.
발드르
코나의 말대로다. 애초에 나는 너희 마을의 인간들에게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들
그럼... 그럼 어떡하는데? 이대로라면 발드르는...
발드르
이곳을 떠나겠다.
마들
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거야...?
발드르
...그렇다.
마들
그런...
비통함에 젖은 마들의 표정을 보며 발드르는 희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발드르
인간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나는 상관없다. 다만, 너희들에게는...
......
감사하고 있다.
메마른 목소리를 짜내듯이 말하며 눈을 내리까는 발드르의 모습에, 마들은 아무 말도 되돌려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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