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제4화 오늘은 괴롭다 해도*
Today's Whimper
*白(흰 백)의 발음인 하쿠를 이용한 말장난
몸 안에 축적한 "힘"을 빼앗기면 비이는 지금의 비이로서 존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이 밝혀짐에 따라, 지타는 루 오를 쓰러뜨리기 위해 시련에 임했다.
루 오
막 일어났던 나와 장난친 걸 가지고 그게 육룡의 실력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이 정도의 힘으로 "특이점"이라니!
루리아
지타!!
쏟아져내리는 번개에 농락당하며, 지타는 루 오 근처에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루 오
...조금은 분발하려나 했다만. 아니, 분발해서 끌어낸 힘의 한계가 거기인가? 특이점. 결국은 인간. 인과의 수렴을 얻고도 이치 안의 장기말에 불과하지. 붉은 용을 내어놓으면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만...
비이
지타! 이, 이제 그만해! 힘이 필요하면 내가 주면 되잖아! 네가 그렇게 힘들게 싸울 필요 없어! 그야... 죽을지도 모르고, 운이 좋아도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야 무섭지만... 그래도!
비이가 곁에 달라붙어 설득하고자 했지만 지타는 비이를 등 뒤로 감싸며 다시 무기를 들었다.
비이
지타...!
루 오
아직 시련을 계속할 생각인가? 특이점. 네가 지금까지 사선을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은 확률이 낮은 가능성을 끌어당기는 성질 덕분이다. 허나... 그 성질을 가지고도 이치에 해당하는 내 빛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붉은 용의 자비를 받아들였다면 좋았을 것을... 생명을 쉬이 내다버리고자 하는가.
......
지타가 갑판에 나가떨어진 채 움직이지 않자, 비이가 비통하게 소리질렀다.
비이
지타...!
루 오
이리 와라, 붉은 용.
비이
으, 으으...!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진 지타를 구하기 위해, 비이는 루 오 곁으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가면 안 돼...]
비이
어...?
루 오
...
상처를 감싸며 지타는 필사적으로 다시 일어났다.
루 오
그 모습은...
그러나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힘을 다루기에는 몸이 너무 피폐해진 상태였다.
비이
지타!
루 오
인간의 육체의 한계인가.
루 오는 쓰러진 채 의식을 잃은 지타를 탐색하는 듯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루 오
...
!?
시에테
아침부터 갑판이 시끄럽다 싶더니만... 지타에게 내린 시련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지나치잖아. 이 이상 계속할 생각이라면 나도 진심으로 나갈 건데... 세계의 이치가 상대라고 해도 무시 못할 정도로는 저항해줄 거거든? 어떡할 거야?
루 오
... 경계와 공명하는 자인가... 검토할 여지가 있겠군.
지타를 힐끗 쳐다본 루 오는 그대로 몸을 뒤튿더니 기공정을 떠나 모습을 감췄다.
시에테
후우... 경계라니. 뭐, 그나저나 지금은 그보다도...
루리아
지타! 지타! 정신차려요!
비이
눈 떠 봐, 지타!
시에테
얘들아! 단장쨩은 내가 옮길게. 루리아쨩. 미안하지만 회복마법을 쓸 줄 아는 단원 좀 불러다 줄래?
루리아
아... 네!
시에테
고마워! 자, 비이 군. 난 양손을 못 쓰니까 문 여는 것 좀 도와 줘.
비이
아, 알았어...!
4-2
루 오와의 싸움에서 엄청난 상처를 입은 지타는 단원들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시에테
표면의 상처는 회복마법으로 막았지만 피를 엄청나게 흘렸으니 마법 자체가 부담이 되겠지. 남은 건 그때그때 대처해가면서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어.
루리아
지타...
비이
...
루리아
괜찮은... 거겠죠? 다른 분들이 도와주고 계시니까... 그리고, 그리고 지타는 항상 아무리 힘든 일도 극복해 왔으니까요...
분명...
시에테
...
신샤
루리아 씨, 신샤예요. 단장님 간병 교대하러 왔어요.
루리아
아...
넥타르
루리아 공과 비이 공도 쉬셔야 합니다. 무리하면 여차할 때 몸이 따라가지 못할 겁니다.
루리아
그렇... 겠죠. 지타를 잘 부탁드려요.
비이
...
루리아
비이 씨, 우리도 조금 쉬어요.
비이
난 좀 더 얘 옆에 있을래. 루리아는 먼저 쉬러 가. 루리아는 말야... 지타랑 생명을 공유하잖아? 그러니까 루리아가 건강해야 지타가 회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루리아
...
알겠어요! 잔뜩 먹고 푹 자고... 건강하게 있어야겠네요.
비이
응! ...부탁해.
넥타르
비이 공. 넥타르를 포함한 단원들이 차례대로 교대하며 이 방에서 대기하기로 했습니다.
신샤
단장님이 일어났을 때 비이 씨가 쓰러져 있으면 틀림없이 놀라실 거예요. 불안하시겠지만 쉴 수 있을 때 쉬어 두세요.
비이
응.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비이는 침통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지타를 바라보다,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손을 살짝 잡았다.
비이
지타...
온몸이 비명지르는 것을 느끼며 지타는 눈을 떴다. 잡혀있는 손에 힘을 주자, 그것을 눈치챈 비이가 말을 걸었다.
비이
지타... 일어났어? 어디. 열은 어때? 음... 아직도 조금 높네.
비이는 지타의 이마에 손을 대서 체온을 확인하며 걱정스러운 듯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비이
미안해. 눈이 내리는 바람에 내가 너무 신나서...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렇게 오래 밖에 있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 말을 듣고 지타는 자신이 비이를 졸라 눈싸움하러 나갔었다는 것을 떠올려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계속하는 사이 해가 졌고, 어느 새 지타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비이
감기 걸려서 힘들지?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심한 병은 아니라고 했지만. 일단 걸리면 괴로운 건 괴로운 거니까... 옆집 할머니가 죽 만들어 주셨는데 먹을 수 있겠어?
그래... 목 아프구나.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조금만 참고 약만 먹어 두자. 그리고 나서 자면서 나으면 되니까. 응?
비이가 달래자 지타는 물과 함께 쓴 약을 꾹 참고 넘겼다.
비이
좋아, 대단해! 약 잘 먹었구나. 자, 이제 자자.
응? 왜 그래?
[비이도 같이 자]
비이
좋아. 그럼 그쪽으로 조금 더 가. 영차...
지타는 이불을 비집고 들어온 비이를 껴안고 눈을 감았다.
비이
잘 자, 지타. 내일은 나았으면 좋겠다.
등을 쓰다듬어 주는 손 덕분에 숨쉬기 힘들던 게 조금 나아졌다. 지타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비이는 그렇게 항상 곁에 있어 줬었다. 그렇다. 지금도...
비이
지타... 나 때문에 이런 꼴이 되다니... 그런데도 나는 지타한테 뭐 하나 해 줄 수가 없어. 약을 만들지도 못하고, 마법은 하나도 못 쓰고. 아무것도 못 해...
뭐가 파트너라는 거야. 곁에 있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데...
...아픈 것도 괴로운 것도 내가 대신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4-3
무겐
영차...
간병을 위해 교대한 무겐은 의자에서 잠든 비이를 자신의 무릎에 올리고 편하게 눕혀 주었다.
무겐
잘, 자. 비이. 지타... 아직 안 일어나... 일어날 거야. 괜찮아.
...!
루 오
조용히 하거라. 다친 사람 앞이니까.
무겐
루 오...! 지타 다치게 하고, 또 위험하다, 할 거야?
루 오
아니...
무겐
이거... 아프다, 아냐... 낫는... 마력...?
루 오
용건은 끝났으니 실례하지.
무겐
아! 기다려. 이야기 해...!
갑자기 나타난 루 오는 그를 붙잡으려는 무겐을 무시하고 방을 나섰다.
루 오
...
그리고 갑자기 자신에게 들이대어진 검과 그 주인을 쳐다보았다.
루 오
경계로 이어지는 태엽을 부추기는 그릇인가. 허나 너는 그것이 없어도 경계에 이르는 힘을 쓸 수 있는 것 같다만.
시에테
경계... 내가 보는 별의 바다가 무엇인지 넌 알고 있는 건가?
루 오
별의 바다라. 즉 너는 경계에 선 자의 시각을 일시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군. 하늘의... 아니, 이 세계라면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터인데. 자신을 낳은 자와 이어지는 탯줄은 아직도 이어져 있다. 모상似姿과의 접속 또한 그러하다는 뜻이지.
시에테
혼자 얘기하더니 막 납득해 버리면 곤란한데...
루 오
경계와의 연결을 갖는 인간들이 어째서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는지는 나도 이해할 수 없다. 허나... 분명 그 인과의 수렴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붉은 용, 푸른 소녀와 함께 있어야 할 특이점은 저 특이점 단 하나뿐이겠지.
시에테
세계를 위해서?
루 오
세계를 위해서. 시간의 흐름을 정의하는 우리와 동격의 존재가 세계를 유지하게끔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 붉은 용의 "힘"을 쓸 수는 없을 모양이군. 다른 방법을 찾겠다.
시에테
흐음... 뭐, 아마 우리 쪽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겠네.
루 오
글쎄. 세계에게 있어서는 그렇다치고, 한 인간의 아이에게 있어서는 어떨지. 우리같은 자들에게 작은 희생을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거든.
시에테
작은 희생이라...
루 오
열심히 발버둥쳐 봐라. 나 또한 마찬가지로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이 불완전한 세계에서는. 그래... 세계는 너무나도 불완전하다...
4-4
한없이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린 지타는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았다.
비이
지타...! 정신이 들어!?
루리아
지타! 아, 일어나서 다행이에요...!
양쪽에서 얼굴을 들여다보는 비이와 루리아의 모습에 지타는 자신이 큰 상처를 입었던 사실을 떠올려냈다.
비이
한때는 어찌 되나 싶었다니까... 회복마법으로도 다 고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상처였어.
루리아
그치만 루 오 씨 덕분에... 겨우 회복됐어요. 저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요.
비이
고쳐준 건 고마운데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런 무서운 시련 안 했으면 좋았잖아... 페디엘도 그렇지만 정말이지 육룡 녀석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마음고생 때문인지 깊은 한숨을 내쉬는 비이에게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사이, 지타의 배가 꼬르륵거렸다.
루리아
후후, 다행이에요! 배가 고프다는 건 기운이 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우선 수프나 죽처럼 소화시키기 쉬운 게 좋겠죠. 식당 다녀올게요!
루리아가 주방에서 가져온 수프를 먹기 시작하자, 침실에 고양이가 들어왔다.
고양이
냐아.
루리아
어라? 신샤 씨네 고양이네요! 혼자 산책하는 걸까요?
우구스
아! 고양이 있다! 단장한테 민폐 끼치면 안 돼!
고양이를 찾으러 온 듯한 우구스가 잔소리를 했지만,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올라 지타의 배에 털썩 앉았다.
고양이
냐앙~
쿠시나
...
(우구스, 고양이 찾았어? 아! 단장님 위에 올라가면 안 돼!)
우구스
으으! 고양이, 방약무인!
우구스처럼 고양이를 찾아다니던 신사 일행은 단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게끔 고양이를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다.
넥타르
단장 공. 지금 고양이를 치우겠습니다.
고양이
샤아아아!
쿠시나
...
(평소에는 느긋하게 늘어져 있는데, 넥타르한테는 샤아아! 하고 경계하네)
넥타르
어째서 넥타르에게만...
쿠시나
...
(좋아, 잡았어! 신샤 무릎에 올려놓을게)
신샤
응! 고양이 씨, 착하게 있자.
고양이
냐앙~
신샤
단장님, 갑자기 죄송해요. 아직 쉬셔야 하는데.
우구스
단장~ 어때? 안 좋아? 아픈 데 있어? 앗! 가슴에 깃털 만져도 돼! 우구스 깃털 폭신폭신하거든! 만지면 힘 날 거야.
웜듀스
호오... 확실히 폭신폭신... 상당히 좋군.
우구스
그치! 폭신폭신 대단해!
웜듀스
응, 좀 대단한 거 같아. 먹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비이
...되게 자연스럽게 섞여있네, 웜듀스...
루리아
어,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어서 오세요...?
웜듀스
어서 왔어~ 이번엔 웜 차례거든.
신샤
웜듀스 씨 차례요...?
쿠시나
...
(설마...)
웜듀스
이번엔 웜듀스의 시련이야. 잘 부탁해.
웜듀스는 지금 막 일어난 지타 앞에서 무정하게도 단언했다. 지타는 쉴 틈 없이 밀려오는 고난의 파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2021 > OLD BO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OLD BOND - 제6화 한없이 자그마한 소원 (0) | 2021.12.29 |
---|---|
OLD BOND - 제5화 내일은 분명 밝은 곳에 (6) | 2021.12.29 |
OLD BOND - 제3화 사람이 살아가는 수단은 (0) | 2021.12.29 |
OLD BOND - 제2화 고백할 필요도 없는 사이거든요 (0) | 2021.12.29 |
OLD BOND - 제1화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해요 (0) | 2021.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