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제5화 위상位相
Phase

 

 




쿠피탄
피오리토 씨는... 나비스와 내통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페더
뭐...?


쿠피탄이 내뱉은 말을 들은 단장 일행 사이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쿠피탄
...처음부터 좀 신경이 쓰였어요. 피오리토 씨의 마음에 휘몰아치는 갈등은 대단히 복잡한 색을 띠고 있었거든요. 특히 "배신"의 청보라색이 만난 날부터 오늘까지 점점 짙어지고 있어요.


단장 일행은 계속 침묵한 채로 더듬거리는 쿠피탄의 말을 경청했다.


쿠피탄
어쩌면... 하고 생각된 점이 몇 가지 있었어요. 코루루 씨를 현장으로 초대했다는 사실, 단독행동을 취하려는 듯한 방침 설정, 지나치게 운이 좋은 단서의 발견... 

목적은 모르겠지만 단장님 일행을 배신하고 속이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분명한 증거는 없어요. 제가 착각한 거라면 그걸로 됐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거점에 향하기 전에 말씀드려 두고 싶어서...


단장 일행은 불안해 보이는 쿠피탄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루리아
...쿠피탄 씨, 말하기 힘드셨을 텐데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비이
확실히 근육 누님은 전부터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했었지..


쿠피탄의 염려는 지금까지 일행이 생각조차 한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단장은 망설임없이 바로 입을 열었다. 


[피오리토를 믿어]


쿠피탄
...!

페더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피오리토의 주먹은... 우리를, 동료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어! 나쁜 짓을 한다니 말도 안 돼!

비이
나는 감정이 보이지도 않고, 주먹으로 대화한 적도 없고, 누님의 사정같은 것도 모르지만... 손가락 걸고 약속했으니까. 좀 억지긴 했지만.

루리아
함께 여행하면서 피오 씨의 많은 일면을 알게 됐어요. 단 걸 엄청 좋아하시고, 닭가슴살이랑 브로콜리는 싫어하고... 근육통 때문에 울기도 하시고.

비이
꼬맹이한테는 다정하고, 의외로 독서를 좋아하기도 하고.

루리아
아직 모르는 일도 잔뜩 있지만 앞으로도 알아나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쿠피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애초에 소중한 동료라면 사정을 숨기지 않는 거 아닐까요...

루리아
조금쯤은 비밀이 있다고 해도, 피오 씨는 피오 씨니까요!

비이
뭐, 사정이 좀 있는 녀석 정도는 우리 단에 얼마든지 있는걸!

쿠피탄
그런가요...


쿠피탄은 잠시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지만, 금방 다시 얼굴을 들고 방긋 웃었다.


쿠피탄
단장님 여러분은 정말 마음 속에서부터 피오리토 씨를 믿고 계신 거군요. 여러분의 믿음의 색은 아침해처럼 아름다운 오렌지색이라... 가슴이 찌잉~하고 따듯해져요.

...조금 부러울 정도네요.

루리아
쿠피탄 씨...?

쿠피탄
알겠어요. 저는 피오리토 씨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을 믿을게요.


쿠피탄은 그렇게 말하며 단장 일행과 함께 코루루 구출 작전 준비를 재개했다.

 

 


 


한편, 단장 일행이 이야기하고 있던 방 바깥, 문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피오리토
......


모든 것을 듣고 있던 피오리토는 입술을 깨물며 그 자리에 붙박힌 듯이 서 있었다.


피오리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낡은 책을 가슴에 품고, 피오리토는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어떤 결의를 다짐하고 있었다.

 




5-2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무렵, 트루는 드디어 코루루가 잡힌 천문대가 어디인지를 특정해냈다. 피오리토가 조달해 온 지도를 토대로 침입 작전을 세운 후, 단장 일행은 숙소를 나섰다.

한편, 요양중인 란돌에게는 무리하지 말고 숙소에 쉬고 있으라는 단장의 전언이 있었다. 몸이 나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안정해야만 한다는 티코의 진단 때문이었다.


란돌
제길...! 이런 때에 드러누워 있을 수 있겠냐고.


란돌은 벌떡 일어나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란돌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라도 쫓아가서...

사제처럼 보이는 여성
지금의 당신이 그곳으로 간다 한들, 안타깝게도 힘이 되지 못할 겁니다.

란돌
...!? 당신, 누구야?

사제처럼 보이는 여성
당신이 바라는 길로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여성이 들고 있던 지팡이가 기묘하게 빛나며 란돌의 옆얼굴을 비췄다.





페더
에잇!

경비병
윽...!?

페더
미안해... 한동안 좀 자고 있어!


한편, 단장 일행은 정면의 경비병을 무력화시키고 연구 구역에 침입했다. 또한 순찰을 도는 경비병에게는 쿠피탄이 "무지개의 화살"을 쏘아 "의심"을 품지 않게끔 간섭했다.


쿠피탄
화살의 효과가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길어야 몇 시간... 그리 여유가 많지 않아요.

티코
어서 서두르자!

 

 


 


단장 일행이 침입한 곳은 현재 관리국 기숙사로 쓰이고 있는 낡은 옛 천문대였다.


비이
뭔가 먼지투성이네... 사람들 기척도 없고.

피오리토
관리국의 기능은 외부 건물로 옮겨간 채라,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모양이야.

티코
도면에 따르면 여기는 4층 건물. 3층까지는 구 연구실이 늘어서 있고... 복도 양 끝에 계단이 있어.

루리아
4층은 엄청 넓은 공간... 천체관측실이라고 적혀 있네요.

트루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코루루 씨는 3층 방에 갇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트루는 장갑을 벗고 벽과 지면에 손을 댔다.


트루
코루루 씨가 실려들어온 기억은 있습니다만, 나간 기억은 없네요.

비이
하지만 다른 방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은 있겠네. 용의주도한 녀석들인 것 같으니.

트루
그렇겠죠. 모든 층을 조사해 보면서 나아가도록 해요.


일행은 신중히 걸어나가며 1층에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비이
텅 비었네...


어둡고 살풍경한 넓은 공간 속, 실험용으로 보이는 받침대의 그림자를 조사하던 중.


페더
누구 없어?

라가초
여기 있는데?

페더
...!?


그림자에서 나타난 라가초에게 반응한 페더가 뒤로 물러서더니 바로 전투 자세를 취했다.


비이
라가초? 제길,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라가초
잘~ 왔다, 자식들아! 한꺼번에 환영해 주마!

페더
하아아아아!

라가초
이런...!

페더
단장! 여긴 나한테 맡겨!

루리아
페더 씨...!

페더
코루루 구출은 맡길게! 자, 어서 가!


[믿고 있을게!] -> 선택
[나중에 다시 봐!]


단장 일행은 방을 뛰쳐나가 복도 쪽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확인한 페더는 의기양양하게 라가초 쪽을 향했다.


페더
자, 라가초! 네 상대는 바로 나다!

라가초
이봐, 이봐. 너 진심이야? 그렇게 쪽도 못 쓰고 당했으면서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데?

페더
그야 당연히 자신이 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너와 주먹으로 대화해 주마!

우오오오오오!


페더는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으나, 라가초는 슬쩍 몸을 뒤로 뺐다.


라가초
...! 이번 건 꽤 빨랐는데. 하지만 그 정도로는...

페더
하앗!

라가초
으어...!?


다음 일격은 훨씬 빠른 속도로 라가초의 얼굴에 완벽하게 명중했다.


페더
...그래, 그 말대로야! 난 그 정도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단언하지. 이번에야말로 나는 너와 주먹으로 대화할 거다!


주먹을 정면으로 뻗으며, 페더는 소리 높여 외쳤다.


라가초
호오...


라가초는 입가를 훔치더니, 눈빛을 달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5-3


라가초를 페더에게 맡기고 2층의 계단을 올라온 단장 일행은 차오른 숨을 가다듬었다.


비이
어떡하지...? 이 앞에도 오디터가 있을 것 같은데.

쿠피탄
싸움은 피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코루루 씨를 구출하는 게 우선이에요!

피오리토
그러게. 그걸 위해서라도 코루루쨩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 트루는 싸우지 않는 게 좋겠어.

트루
그렇다면 티코 씨도 빠지셔야겠네요. 코루루 씨가 어딘가 다쳤다면 치료를 해 줘야 할 테니까요.


[비이랑 루리아도...]


단장은 자신이 싸우게 되더라도 코루루의 구출을 우선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행은 상황을 정리하고 주변을 경계하면서 나아갔다. 그러자...


루리아
방 안에 뭔가가 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마물들
...!

트리스테트
어리석은 녀석들이구만~ 일부러 거점까지 찾아와 주시다니.

쿠피탄
리스쨩...!

트리스테트
가라~ 어리석은 군단아!

마물들
...!

 


대량의 마물이 덮쳐오는 가운데, 쿠피탄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쿠피탄
단장님... 여기는 저한테 맡기세요!

"무지개의 화살"이여...변덕스러운 아이에게 기도하여 황금빛 꿈에 다리를 놓으라!

훗!

마물들
...


쿠피탄이 쏘아낸 화살을 맞은 마물들이 차례로 기절했다.


트리스테트
쳇... 감정을 "무색"으로 만드는 화살은 골치아프단 말이지~

쿠피탄
자, 이 사이에 가세요!

티코
부탁할게!

 

 

 


트리스테트
(잘 하라고~?)

피오리토
...!


트리스테트는 피오리토에게만 보이게끔 눈짓을 했다.


트리스테트
하아~ 너랑 둘이만 있으면 피곤한데~

쿠피탄
정신차려, 리스쨩! 이제 이런 짓은 그만 하자. 응?

트리스테트
어리석은 걸 넘어서 기분 나빠. 스토커야? 망상증 있어? 

쿠피탄
리스쨩은 그런 말 안 해! 내가 알고 있는 리스쨩은...


트리스테트는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를 박박 긁적였다.


트리스테트
설마... 아직도 "세뇌"니 뭐니 그런 소리 하는 거냐? 없다고. 세뇌같은 건.

쿠피탄
뭐...?


쿠피탄은 잠시 얼어붙었으나, 금세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쿠피탄
그런 말을 계속 주입당한 거지? 그게 바로 세뇌인걸! 함께 나비스에게서 도망치자. 우리라면 도망칠 수 있어!

트리스테트
말이 안 통하는구만~ 이 전개도 대체 몇 번째인지.


트리스테트는 고개를 저으며 지루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트리스테트
엎드려 기어라, "슬란드"... 힘을 쓸 권리를 주마~

마물들
...!

쿠피탄
마물의 강화...? 싫어! 리스쨩과 싸우고 싶지 않아!

트리스테트
그거 완전 동감이거든~ 너랑은 전혀 다른 의미로. 

 

한번 더 고~ 어리석은 군단아!

쿠피탄
...큭!


닥쳐오는 마물들 앞에서 쿠피탄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화살을 걸었다. 반짝이는 무지개색 머리 위에서, 소박한 돌로 만들어진 머리핀이 통곡하듯 격렬히 흔들렸다.

 




5-4



한편, 라가초에게 한 방 먹인 페더는...


라가초
후우~...

페더
...거기냐!


라가초의 살기 넘치는 투기를 느끼며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라가초
"크림슨 핑거"... 죄를 자아내어 손톱이 되어라!

페더
그렇게 나오셔야지! 와라, 라가초! 네 의지를 보여줘!

라가초
...멍~청이.

페더
응...!?


라가초는 페더에게 바짝 붙어 압도적인 속도로 급소를 후려쳤다.


라가초
솔직히... "노력상" 정도는 줘도 될 거 같은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야. 크림슨 핑거의 힘을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페더
따라갈 거야! 그리고 너와 "이야기"를...

라가초
하아... 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솟아오른다고!

페더
크억...!?


라가초가 특유의 자세를 취하며 정확하게 급소에 주먹을 꽂아넣자, 페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페더
제...길...! 어째서 답하지 않는 거야, 라가초! 네 주먹에서는 아직 어떤 소리도...

라가초
이봐... 너 정말 어마어마한 바보구나. 여긴 투기장이 아니야. 난 너랑 사이 좋게 시합할 생각 전혀 없다고. 난 이게 일이거든. 폭력이라는 건 원래 일방적인 거야.

페더
...!

(라가초, 너는 어디까지...)

라가초
뭐, 네 발을 묶어둘 수만 있으면 내 일은 끝나는 거다만.

히히... 그럼 안녕~ 좋은 꿈 꿔라?

페더
(제길...! 또 지는 건가...? 져서 분해하고, 단련하고, 강해지고, 다시 도전하고... 어라? 그거 뭔가...)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사이, 페더는 무의식중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한편, 단장 일행은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며 트루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트루
1층도 2층도 조사해 봤지만 코루루 씨가 나간 기억은 전혀 없었어요.

비이
그럼 3층 방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가?

트루
그렇게 단정지을 수는 업어요. 4층의 관측실로 이동됐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일행이 대화를 나누며 3층 복도에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티코
으아...!?

라비리타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 모이신 듯하군요.


복도 안쪽에서 라비리타의 총격이 단장 일행을 덮쳤다. 일행은 전투 태세를 취하고 낮은 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티코
3층이 목표니까... 가능하면 저 녀석만은 어떻게 하고 싶거든.


[피오리토...!]


단장은 피오리토에게 둘이서 상대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피오리토
...!

트루
저희는 먼저 4층을 조사하고 반대쪽 계단을 통해 3층으로 내려올게요.

루리아
나중에 합류해요!


티코, 트루, 비이, 루리아는 4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달려올라갔다.


라비리타
그렇군요... 역시나 이렇게 되었나요.





[회상]


라비리타
그럼 단장 씨의 암살계획을 복습해 볼까요. 성좌에 의하면 기공사 일행이 여기로 침입한 후, 각각 흩어진 상태로 전투가 발생하는 모양입니다. 그중 저 혼자를 상대로 단장 씨와 피오리토 씨가 함께 전투하는 상황이 반드시 올 거라는군요. 거기서 피오리토 씨가 단장 씨를 등 뒤에서 덮쳐, 제가 총을 쏴서 은폐 공작을 하면... 

피오리토
...전투 중 라비리타한테 살해당한 거라는 자연스러운 사인이 만들어지지.





라비리타
(모든 것은 성좌대로... 부탁합니다, 피오리토 씨.)

피오리토
...


피오리토는 짧게 숨을 내뱉은 후, 곁눈질로 단장을 보았다.


[가자!!]


단장은 검을 빼들고 먼저 달려나갔다. 그 등을 쫓아가며, 피오리토도 라비리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라비리타
...!

 

 

 


피오리토
"스파라이"여... 불석신명不惜身命*의 각오로, 나의 혼을 피워내라!

하아!

*온 몸을 다해 불도를 닦는다는 뜻


피오리토가 주문을 외우자, 낡은 건틀릿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나왔다.


[...!?]


그 순간, 단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피오리토의 목소리
미안、단장...


정적이 가득찬 복도에서, 피오리토가 중얼거리는 말소리와 라비리타의 나직한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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