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제3화 접근接近
Approach
코루루가 유괴되고 하룻밤이 지나, 다음날 아침. 계속해서 내리는 비 속에서 일행은 피오리토의 제안을 따라 담당 지역을 나누어 탐색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편, 숙소에 남은 티코는 요양 중인 페더와 란돌을 진료하고 있었다.
티코
...그렇게 됐으니까 조금 더 안정을 취해야 되거든.
페더
알았어...
루리아
티코 씨, 두 분의 상태는 어떤가요?
티코
란돌의 상태는 양호해. 미지의 증상을 치료해내다니 역시 나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크림슨 핑거의 마력이 남아있으니까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리고 페더 쪽은... 몸의 상처는 이미 다 나았어.
루리아
그런가요? 더 자라고 하셨으면서...
티코
어디까지나 몸의 상처는 말이지. 마음의 상처는 낫지 않았어.
...그 쪽이 더 골치아프기도 하거든.
페더
......
란돌
......
둘만이 남은 방 안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목이 쉰 듯한 페더의 목소리였다.
페더
미안하다, 란돌... 나 때문에 네가 다치다니.
란돌
그 말은 이제 질렸어. 몇 번이나 말했잖아? 네가 죄책감 가질 거 없다고. 내가 내 의지로 저지른 일이야.
페더
......
란돌
그보다, 왜 갑자기 주먹을 못 쓰게 된 건데?
페더
그건... 나도 모르겠어.
란돌
그럼 질문을 바꾸지. 넌 왜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는 거냐?
페더
뭐... 내가?
란돌
그래. 평소에는 얼굴에 알기 쉬울 정도로 "난 바보 페더다"라고 적혀 있는데 말이지.
페더
그런 거 안 적혀 있거든.
란돌
적혀 있어.
하지만 지금 네 얼굴에는 "땅 파고 있는 페더입니다"라고 적혀 있지. 그런 얼굴을 한 녀석이 옆에 누워 있으면 나을 것도 안 낫겠다.
페더
...미안.
란돌
...아~! 진짜. 그런 반응이라고!
란돌은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말을 내뱉었다.
란돌
젠장...! 이런 말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 날 위해서 싸우려고 하고 있지?
페더
......!
란돌
내 몫까지 싸워야겠다느니, 내 복수를 해야겠다느니...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겠지. 코루루를 구해야겠다던가, 나비스를 해치워야 한다던가. 그런 거에 휘둘리느라 싸울 이유를 잃은 거야.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주먹이 말을 안 듣는 거겠지.
페더
어, 어떻게 아는 거야?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란돌
말했잖냐? 얼굴에 적혀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네 면상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
페더
얼굴은 계속 똑같지 않았어?
페더는 완전히 당황한 듯이 창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여기저기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란돌
뭐, 바보인 건 계속 변함이 없다만. 잘 생각해 봐. 넌 뭘 위해서 싸우고 있었지?
페더
뭘 위해서...?
(처음에는 구도자 간다고우자를 동경했어)
그 사람은 주먹 하나로 수많은 상대를 넘어서고 이해해 왔지... 난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어.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서 강해지고 싶었어.
(무도대회 때에 간다고우자와 주먹으로 대화하면서,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회상]
간다고우자
강적(라이벌), 그리고 수많은 강자들과의 싸움을 거쳐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거라! 그러던 끝에 이 하늘 어딘가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 또 다시 주먹으로 대화하도록 하자꾸나!
페더
(수많은 녀석들과 싸워오는 도중 내 영혼을 떨리게 만든 건...)
라가초...! 그래. 그 녀석에게 이기기 위해 나는 계속 단련해 왔어.
란돌
...그래. 그렇겠지.
란돌은 한순간 괴로운 표정을 지었으나,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란돌
간단한 이야기야. 넌 라가초를 쓰러뜨리는 데만 집중하면 돼.
페더
하지만 우린 코루루를...
란돌
코루루를 되찾는 과정에서 다시 오디터 놈들이랑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높아. 어차피 요령 좋게 전부 해내는 건 무리일 테니까, 라가초에 대해서만 생각하란 말이야.
그 녀석하고... 주먹으로 대화하고 싶잖아?
페더
...! 그래! 나는 라가초와 대화하고 싶었어! 이번에야말로 "이야기"할 거야! 그리고 녀석을 이길 거야!
란돌
그런데 이런 데서 자고 있어도 되겠냐?
페더
아니, 안 돼!
벌떡 일어난 페더의 눈동자는 평소와 같이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란돌
흥... 드디어 얼굴이 "바보 페더"로 돌아왔구만.
페더
고마워, 란돌!
우오오오오! 다녀올게!
란돌
갑자기 큰 목소리 내지 말고 후딱 다녀와!
티코의 목소리
잠깐, 페더!? 어딜 가는 거야?
페더의 목소리
아, 티코! 운동 좀 하고 올게!
란돌
...어휴.
......
[회상]
페더
라가초...! 그래. 그 녀석에게 이기기 위해 나는 계속 단련해 왔어...!
란돌
...그래. 그러시겠지. 뭘 기대한 거냐, 나는. 그렇게 대답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아~... 나야말로 한참 바보구만.
란돌은 자조하며 창문을 따라내려오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
"이야기"의 무대... 별이 쏟아지는 섬은 비를 택했다...
이교異教의 사제복을 몸에 걸친 여성은 나른한 표정으로 지팡이에 시선을 주었다.
사제처럼 보이는 여성
독특하지만 객관적이고 현명한 물병자리(아쿠아리오)...
사제처럼 보이는 여성
배려 없이 돌진하는 낙천가, 사자자리(리오네)...
대척점에 위치하는 그들의 소원이 부디 함께 이루어지기를... 별에게는 빌지 않습니다. 물론 신 따위에게는 더더욱.
사제처럼 보이는 여성은 지팡이를 향해 말했다. 그들의 앞길을 지켜보는 여성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은 비밀에 휩싸여 있었다.
3-2
마을의 탐색을 담당하고 있는 피오리토는 큰길가의 도서관에 있었다.
피오리토
......
그녀는 스텔라 섬의 역사와 지리가 정리된 서적을 넘겨보는 중이었다. 그 곁으로 안경을 쓴 빨간 머리의 소년이 미끄러지듯 앉았다.
라가초
어이.
피오리토
......
...안건 보고. 단장 일행의 상황은...
피오리토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그런 그녀를 라가초가 손으로 제지했다.
라가초
아... 아냐. 안건 보고는 필요 없어.
피오리토
그래... 그럼 용건이 뭔데?
라가초
흥, 보면 알잖아? 난 책을 보러 온 것 뿐이야.
라가초는 안경 다리를 손가락으로 밀어올리며 천천히 책을 펼쳤다.
라가초
아~ 그렇구만. 별을 둘러싼 전설 모음이라. 어디 보자... 의인화된 별자리들의 싸움을 신이 심판했다고? 으어, 진심인가...
피오리토
당신... 진짜 뭘 하려고 온 건데?
라가초
원래 싸우면 양쪽 다 잘못한 거라고들 하지만, 이 설화에 따르면 먼저 시비 건 쪽이 더 나쁜 녀석인가봐.
피오리토
...용건 없으면 먼저 갈게.
라가초
뭐...!?
피오리토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라가초가 당황해서 입을 열었다.
라가초
...미안하다고. 전에 화나게 만들어서.
피오리토
...뭐?
라가초
그러니까, 그... 사과하는 거라고. 회의 끝나고 거... 너한테 시비 걸었던 거.
피오리토
......
라가초
...라비리타 녀석이 귀찮게 굴더라고. 이런 건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피오리토
...그래. 사과같은 건 필요 없어. 일일히 신경쓰지도 않고.
라가초
뭐 그럼 됐다만...
피오리토
그럼 슬슬 갈게.
피오리토가 책을 품고 이번에야말로 떠나려고 했을 때였다.
라가초
...뭘 고민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자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피오리토
......!
라가초
실망시키지 마라. 너의 "위"를 목표로 하는 살벌한 눈빛, 괜찮게 쳐 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네 눈은 완전 흐리멍덩하단 말이지~
피오리토
...흐리멍덩한 건 선배 눈이겠지.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라가초
어이... 우습게 보지 말라고. 우리 꽤 오래 알았잖아.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피오리토
......
피오리토는 답하지 않고 창문 밖으로 펼쳐진 하늘을 쳐다보았다.
피오리토
(하고 싶은 일이라... 그야, 나비스를 쳐부수고...)
......!
라가초
뭐, 열심히 해 보시지. 세스토쨩?
피오리토
...기다려.
라가초
어?
피오리토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뭐야? 뭘 위해 나비스에 들어왔지?
라가초
......
라가초는 씨익 웃더니 피오리토가 들고 있는 미니백에 시선을 보냈다.
라가초
가르쳐 줘도 되는데. 그 대신에 네가 늘 들고 다니는 책이 뭔지 알려줘.
피오리토
...그걸 왜? 라비리타보다 더 기분나쁜데?
라가초
그냥 뭐... 이 설화집 완전 지루해서 다음에 뭐 읽을까 찾고 있는 것뿐이야.
피오리토
......
피오리토가 아무 말 없이 미니백에서 책을 꺼내 보여주자, 라가초가 히죽 웃었다.
라가초
내가 나비스에 있는 이유는...
3-3
오후 집합 시간이 되어, 단장 일행은 일단 숙소로 돌아와 진척 상황을 확인했다. 그러자 쿠피탄이 "실마리를 찾았다"며 의기양양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쿠피탄
마을 상공에 리스쨩이 조종하는 새가 날고 있었어요! 아마 그 새를 이용해서 저희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던 거겠죠. 하지만 그게 화를 불렀어요. 새가 돌아간 방향으로 볼 때, 나비스가 있는 곳은 연구 구역일 거예요!
단장 일행은 쿠피탄의 추측에 따라 천문대가 늘어선 연구 구역으로 향했다.
트루
쿠피탄 씨, 대단하세요...! 순식간에 범위를 좁혔네요!
피오리토
그나저나 잘도 알았네. 하늘을 나는 게 트리스테트의 사역마라는 걸...
쿠피탄
그 새는 리스쨩의 마음에 들어서 자주 쓰이거든요. 늘 함께 있었고, 계속 쫓았으니까... 여러 가지를 기억하게 됐어요.
트루
쿠피탄 씨와 트리스테트 씨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군요.
비이
하지만 트리스테트는 나비스에 세뇌된 거고...
쿠피탄
...네. 헤어져 버리고 말았어요.
쿠피탄은 희미하게 웃더니,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쿠피탄
...제대로 이야기해야겠죠. 리스쨩이 어째서 오디터가 되어버린 건지.
[괜찮으면 이야기해 줘]
[억지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선택
비이
이 녀석 말대로야. 무지개 누님에게는 힘든 이야기일 테니까.
쿠피탄
다정한 색의 배려...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비스와 싸우기 위해서는 제 경험을 제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쿠피탄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원치 않던 능력에 농락당한 두 소녀의 기억...
기억이 시작된 순간부터 쿠피탄은 무지개의 활과 같이 있었다. 그 능력에 의해 나라에서는 "기적의 무녀"라고 숭배되었고, 모든 국민들이 쿠피탄을 따랐다.
방황하는 청년
쿠피탄 님, 부디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어린 쿠피탄
훌쩍... 숨이 막힐 정도로 슬픈 보랏빛... 가족이 돌아가신 건가요?
방황하는 청년
흐흑, 어머니가 병으로...! 구원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린 쿠피탄
물론이에요. "무지개의 화살"이여... 변덕스러운 아이에게 기도하여 황금빛 꿈에 다리를 놓으라.
방황하는 청년
아아... 감사합니다!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어린 쿠피탄
......
모두가 기적의 무녀에게 감사했고, 왕마저도 그녀 앞에서는 한 수 접어두고 들어갔으나...
어린 쿠피탄
(부모님은 나를 팔아넘기고 어딘가로 가 버렸어... 나의 슬픔은, 고독은 대체 누가 구원해 주는 걸까.)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녀에게는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가 없어 늘 혼자였다. 그러던 중, "악마의 아이"가 나타났다.
방황하는 어머니
쿠피탄 님, 제 딸이 악마의 아이가 다루는 마물과 접촉하고 말았습니다...
방황하는 소년
으에엥, 쿠피탄 님! 악마의 아이가 절 노려봤어요!
어린 쿠피탄
"악마의 아이"... 근처 마을에서 왔고 악마를 조종하는 기분나쁜 소녀라... 그 아이도 홀로 별을 올려다보고 있을까.
쿠피탄은 나라에서 내어준 혼자 쓰기에는 넓은 방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린 쿠피탄
꺄악...!?
갑자기 마물과 함께 있는 소녀가 창문으로 뛰어들어왔다.
어린 트리스테트
킁킁... 아, 냄새.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진짜 싫은 냄새네?
어린 쿠피탄
...! 누, 누구?
마물
...!
어린 쿠피탄
당신은 설마... 악마의 아이?
어린 트리스테트
히히히... 기적의 무녀도 날 보고 쫄았어. 내가 더 위인 거 맞지?
쿠피탄은 입맛을 다시는 트리스테트 쪽을 향하더니...
어린 쿠피탄
제 방에 어서 오세요!
어린 트리스테트
...뭐?
어린 쿠피탄
아, 어떡하지...! 손님이 오는 건 처음이니 잘 대접해야 할 텐데.
어린 트리스테트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널 겁먹게 만들려고...
어린 쿠피탄
응.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어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어린 트리스테트
...!?
어린 쿠피탄
보이더라고. 초목이 말라빠진 황야처럼, 외로운 고독의 색이... 저기, 나랑 친구하지 않을래? 우린 같은 색을 가지고 있으니까 분명 멋진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어린 트리스테트
넌 대체 뭐야! 제멋대로 단정하지 마시지!
어리석은 녀석! 어리석은 녀석! 어리석은 녀석!
어린 쿠피탄
아, 기다려...!
분명 이건 운명의 만남이야. 난 저 아이와 반드시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다음날 밤도 트리스테트는 쿠피탄을 놀래키려 나타났다.
어린 트리스테트
어이, 기적의 무녀! 널 겁먹게 만들면 내가 제일 위가 될 수 있다고!
어린 쿠피탄
그보다 나라에서 제일가는 친구가 되는 건 어떨까?
어린 트리스테트
안 한다고~!!
다음날 밤도, 그 다음날 밤도... 트리스테트는 질리지도 않고 찾아왔고, 쿠피탄 또한 질리지도 않고 그녀를 환영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 두 사람은 서로가 이상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쿠피탄
조사해 봤더니 호로스코프라고 한대.
어린 트리스테트
...딱히 상관없어, 이런 불행의 덩어리같은 거. 우연히 주운 것 뿐인데 몸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마물도 따라오고. 어리석은 마을 녀석들은 나를 괴물처럼 외딴 집에 몰아넣지를 않나... 이런 건 꽝을 뽑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어린 쿠피탄
그런 걸까?
어린 트리스테트
그렇지 않냐? 너도 이런 넓은 방에서... 혼자 있잖아.
어린 쿠피탄
아냐, 지금은 둘인걸?
어린 트리스테트
...!?
어린 쿠피탄
후후. 리스쨩하고 만났는걸.
어린 트리스테트
세상 편하게 사는 녀석이구만...
다음날 밤부터 트리스테트는 쿠피탄을 겁주려고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만난 지 1년이 흘렀지만 매일 밤의 교류회는 지속되고 있었다.
어린 트리스테트
내가 만든 머리핀이야. 너 줄게.
어린 쿠피탄
뭐...? 리스쨩이 나한테...? 와아! 바로 끼워 볼게!
어린 쿠피탄
어때? 어울려?
어린 트리스테트
큭, 크크큭...! 진짜 그걸 쓰다니, 완전 어리석어~ 나무덩굴하고 돌멩이로 적당히 만든 건데~?
어린 쿠피탄
내가 기쁘니까 괜찮아! 소중히 간직할게!
어린 트리스테트
어이, 내 감정 안 보여? 완전 놀리는 색일 텐데.
어린 쿠피탄
리스쨩의 감정은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 우린 친구니까! 무지개의 활에 기대지 않아도 뭐든지 서로 이해할 수 있는걸!
어린 트리스테트
...아, 그러셔.
어린 쿠피탄
리스쨩,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린 트리스테트
안 부끄럽거든~~~!! 완전 어리석은 녀석!
어린 쿠피탄
후후, 하하하하!
어린 트리스테트
히히, 히히히히...!
다음날, 두 사람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어린 쿠피탄
저 사람들... 왜 우리를 쫓아오는 거야?
어린 트리스테트
글쎄. 일단 도망치자.
갑자기 나비스의 손에 쫓기게 된 쿠피탄과 트리스테트는 도피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서 마을로, 섬에서 섬으로, 둘이서 계속 도망치던 어느 날이었다.
트리스테트는 갑자기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희생되는 건 나 혼자면 돼"
그곳에는 트리스테트의 쿠피탄을 향한 마음이 적혀 있었다.
쿠피탄
...리스쨩은 자기가 나비스로 가는 대신 저를 놓아주게끔 교섭한 거였어요. 그로부터 나비스의 추격자가 나타나지 않게 됐죠. 하지만 오히려 제가 나비스를 쫓고 됐고요...
그리고 실종으로부터 3일 후, 오디터로서 "일"을 하는 트리스테트를 보았다고 했다.
비이
트리스테트가 세뇌라는 걸 받은 건가.
쿠피탄
...장난은 쳐도 정말 나쁜 일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오디터가 된 리스쨩은 사, 살인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쿠피탄은 눈을 내리깔았으나, 곧 각오를 다진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쿠피탄
여러분도 같은 경험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반드시 코루루쨩을 구해내기로 해요.
비이
고마워. 우리도 무지개 누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협력할게!
쿠피탄
네...?
[트리스테트를 구해내자]
쿠피탄
단장님... 네, 반드시요!
단장이 힘있게 말하자, 쿠피탄도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오리토
(세뇌라...)
그 곁에서 피오리토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3-4
천문대가 늘어선 연구 구역으로 향한 일행. 하지만 연구 구역의 경비가 엄중하여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비이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다니...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트루
수위 분한테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쫓겨나고 말았죠. 수상한 사람을 들여보낼 수는 없다고...
일행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그들이 본 적 있는 얼굴이 나타났다.
천문학자
기공사 분들 아니십니까...! 무슨 일이신가요?
비이
학자 아저씨! 우리 사실은 말야...
단장 일행은 코루루가 위험한 조직에 유괴당해 천문대에 잡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했다.
천문학자
그렇군요... 사정은 잘 알았습니다만 이 구역은 좀 이야기가 복잡해서요. 여러분은 여기에 천문대가 이렇게 많은 이유를 아시나요?
피오리토
아까 책에서 봤어. 각각의 연구기관이 독자적인 시설을 세웠다면서?
천문학자
맞습니다. 서로의 연구 성과를 숨기기 위해 이러한 사태가 일어난 거죠. 그리고 연구기관 사이의 다툼을 막기 위해, 이 구역에서는 중립적인 관리국이 엄중한 경비를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문대에 수상한 사람이 침입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천문학자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뭔가 결심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문학자
그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저도 꼭 돕고 싶습니다.
비이
그럼 안에 들여보내주는 거야?
천문학자
유감스럽게도 제겐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관리국장과 교섭해 보도록 하죠. 안심하세요. 국장님은 마음이 넓은 분이시거든요. 분명 협력해 주실 겁니다.
천문학자는 "내일 아침까지 연락하겠다"고 약속한 뒤 연구구역으로 들어갔다.
비이
코루루... 무사해야 돼!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예상하면서도, 일행은 코루루의 안부를 염려하며 그저 천문대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창문 없는 어둑어둑한 방. 철창살으로 둘러싸인 우리가 보였다.
코루루
체스토오오오오오!
붙잡힌 코루루는 있는 힘껏 그라시저를 철창살 쪽으로 휘둘렀다. 그러나 그 일격은 간단히 튕겨나가고 말았다.
라가초
...아직도 모르겠냐? 몇 번을 해도 소용없다고. 안쪽에서의 공격은 절대 먹히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니까.
코루루
......
라가초
쳇, 대답도 안 하냐? 뭐 상관없지. 밥 먹을 시간이야. 군말 말고 드셔.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접시가 철창살 안으로 들이밀어졌다.
코루루
......
라가초
신용이 안 간다 이거야? 어딘가의 세스토쨩같이 굴기는.
자, 잘 봐.
라가초는 접시 위의 프라이드 치킨을 훌쩍 들어올리더니 자기 입에 넣었다.
라가초
이걸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겠지?
코루루
...! 프라이드 치킨...!
코루루는 접시 위의 요리를 손에 들더니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다.
라가초
오? 정신없이 달려드네. 세스토쨩 보고대로였구만.
음식을 해치워나가는 코루루 곁에서 라가초는 한 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라가초
"장미와 왕자님"... 그 녀석이 이런 책을 읽을 줄이야.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어도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제각각 달라."
...하, 연애 이야기는 도저히 못 봐 주겠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라가초가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때였다.
트리스테트
오~ 대상한테 먹이 주는 거 끝났나 보네.
라비리타
열심이시네요. 아, 피오리토 씨에 대한 사과도 수고하셨습니다.
라가초
...쳇, 시끄러워. 일에 방해되니까 가 버려.
라비리타와 트리스테트는 라가초의 말을 무시하고 감옥 안의 코루루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트리스테트
히히히, 어리석구만~ 치킨이나 우적우적 먹어치우고 말야.
코루루
......
트리스테트
그보다 이 적합자는 왜 여기에 온 걸까?
라비리타
글쎄요? 교섭 재료로 쓰거나... 어쩌면 우리 동료가 되는 건지도. 몇 번이나 전례가 있으니까요.
라가초
의도같은 거야 우리가 알 바 아니지. 모든 건 체어맨의 성좌대로잖아?
트리스테트
와, 성실하시네~ 우직하다고 하나? 요컨대 너도 어리석다 이거지.
코루루
(제가 왜 여기에 납치당한 건지는 이 사람들도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외까...)
코루루는 그들의 말을 엿들으며 마물에게 습격당했던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코루루
(흐음... 숲 속에서 피오리토 씨가 구해줬던 것 같은 기억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잡혀 있는 상태였소이다. 뭔가 기억이 툭 끊어져버린 느낌이외다.)
마물
...!
코루루
...!
코루루가 고민하는 사이, 마물이 훌쩍 뛰어오르더니 천천히 오줌을 갈기기 시작했다.
트리스테트
히히히히~ 우리를 향해서 오줌싸고 있어~ 완전 어리석기 그지없구만~ 오줌 맞는 적합자도, 사람들 앞에서 오줌이나 싸는 이 녀석도~ 이 녀석들은 내 아래! 내가 위란 말이지~!
라가초
어이, 지나치게 접근하지 마. 너 동물 알레르기라서 눈물 콧물 질질 짜잖아.
트리스테트
시, 시끄러워!
라비리타
상스럽게 왜 이러십니까. 손님이 보는 앞인데.
...코루루 씨, 식사하시는 중에 실례했습니다. 그나저나 9천억 루피쯤 조달해서 저한테 주시면, 감옥을 빠져나가게 해 드릴 수 있는데요.
코루루
......
라비리타
아, 너무 비싼가요? 죄송하지만 제가 나비스에 추방당했을 경우 짊어지는 기회비용도 포함하고 있거든요. 허나 목숨에 비하면 저렴하죠! 소중한 동료들이 걱정하고 있답니다.
안심하세요. 돈을 조달할 방법도 소개해 드리죠. 돈으로 생명은 살 수 없지만, 생명은 돈으로 바꿀 수 있거든요. 자, 어서 저와 계약을...
라가초
야, 돈의 망령! 너야말로 상스러운 짓 좀 하지 마!
코루루
......
코루루는 약간 당황했지만 냉정하게 적의 모습을 살폈다. 그러면서 묵묵히 프라이드 치킨을 먹어치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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