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제2화 인력引力
Gravitation

 

 




항구에 도착한 단장, 쿠피탄, 트루는 정기선의 운항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주변 공역에는 항행 제한이 걸려 있어, 섬 밖으로 도망치려면 항구를 경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트루
저희가 스텔라 섬에 도착한 이후로 연락선의 발착은 없었던 모양이네요.

쿠피탄
달리 수상한 배를 봤다는 이야기도 없었어요. 그렇다면...


[코루루는 이 섬에 있어...!]


나비스 조직원들은 섬 어딘가에 코루루를 숨긴 채 그곳에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트루
여러분이 만난 오디터라는 사람들을 찾도록 하죠. 단장님, 그 사람들의 얼굴을 알고 싶은데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요?


[알았어]


트루는 장갑을 벗고 단장의 손을 살짝 잡았다.

 

 



트루
......!

라가초, 라비리타, 트리스테트... 이 사람들이...

쿠피탄
우와...


쿠피탄은 트루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트루
...?

(아, 그렇지. 쿠피탄 씨와는 오늘 맛 막난 참이라 내 능력을 보는 것도 처음이겠구나.)

저기... 저는 무언가에 깃든 기억과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있어요. "환시의 힘"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직접 접촉하면 힘을 쓸 수가 있죠. 방금은 단장님의 기억을 본 거예요. 

아, 평소에는 장갑을 껴서 힘을 쓰지 않도록 하고 있답니다! 남의 사정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요.

쿠피탄
아, 그렇군요. 그게 그검... 듀랜달의 능력인 거군요.


트루가 가지고 있는 검을 본 쿠피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대로 트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루
듀랜달의 능력이라. 그런 건가요?

쿠피탄
음...? 네. 적합자가 끌어낼 수 있는 호로스코프의 능력 아닌가요?

트루
호로스코프의 능력? 그렇게 적혀 있었던가...?


트루는 품에 넣어 두었던 수첩을 꺼내 페이지 하나하나를 살피듯이 읽었다.


트루
으음... 이건 환화幻花라고 하는 균사에 감염되었을 때 얻은 능력인 것 같으니, 듀랜달과는 관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보다도 무기에 능력이 있나요? 듀랜달을 만져도 특별한 느낌은 들지 않던데요...

쿠피탄
관계가 없다고요...!? 애초에 능력을 느끼지도 못했다니, 설마 그런...


쿠피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뭔가를 판별하려는 것처럼 트루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눈이 젖어들며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나 싶더니...

 

 

 


쿠피탄
재송해요오오오오~~!!

트루
네에!?


갑자기 쿠피탄이 울음을 터트리자, 단장과 트루는 당황하고 말았다.


쿠피탄
으으, 잠시라도 의심했던 제가 바보였어요! 거, 거짓말 따위... 훌쩍. 였을 리가 없어요! 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의 색인지! 투명한 데다가, 흐극. 청량하고, 고귀하고... 무릎꿇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색이에요오~~!

트루
앗, 콧물이...! 여기 제 손수건 쓰세요!

쿠피탄
크응....! 흐응!!!!

후... 죄송해요. 이제 진정됐어요.

트루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그쳤어...!?)

쿠피탄
실례했습니다... 트루 씨의 마음의 색이 너무 아름다워서 못 볼 꼴을 보이고 말았네요.

트루
마음의 색이요...?

쿠피탄
다른 사람의 감정을 눈으로 보는 것... 그것이 이 "무지개의 활"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에요.


쿠피탄은 어깨에 걸고 있던 활을 흔들어 보였다.


쿠피탄
호로스코프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 드렸었죠? 사실은 그 특별한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적합자 최대의 특징이랍니다. 예를 들면 티코 씨의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치료와 관계된 능력...이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한 티코의 마법의술을 떠올리며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쿠피탄
설명이 부족해서 죄송했어요. 능력에 대해서는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트루
전혀 몰랐어요... 영웅 롤랑의 기억이 잔뜩 깃든 검이라는 것 정도밖에...


트루는 듀랜달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쿠피탄
무지개의 활의 능력으로 저는 사람의 마음의 "색"이 보여요. 이렇~게 눈에 집중하면 확대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세세한 색까지 알 수 있죠... 트루 씨는 투명하게 느껴지는 희망의 노란색...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에요. 갓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한없이 순수하고, 사악한 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질 않는...

아, 다시 울 것 같아... 저 고귀한 감정에 닿으면 찡해져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오거든요.


쿠피탄은 눈가를 부비고 코를 훌쩍이며 부끄럽다는 듯이 웃었다.


트루
뭔가 쑥스럽지만... 갓난아기라고 하는 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저는 무언가를 엄청 까먹는 모양인데, 아침에 일어나면 제가 누군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거든요. 트루라고 하는 것도 진짜 이름이 아닐지도 몰라요.

 

 



2년 전, 트루는 환화가 군생하는 구멍에 떨어져 정신을 잃은 채, 누군가가 발견할 때까지 계속 독을 흡수하고 있던 적이 있었다. 겨우 생명은 건졌으나 후유증에 의해 매일 자고 일어나면 모든 기억을 잃는 몸이 되고 만 것이었다.


쿠피탄
매일이 새로운 아침이라니... 트루 씨는 저희가 알지 못하는 감각을 맛보고 계시는 거군요! 훌쩍... 멋져요, 고귀한 색이에요...!

트루
와앗... 쿠피탄 씨, 또 콧물이...


단장도 당황하며 손수건을 꺼내 쿠피탄에게 건네주었다.



 


그 후, 항구 주변을 조사하는 사이 쿠피탄과 트루는 능력을 사용해 보려고 했지만...


쿠피탄
수상한 감정의 색이 찔끔찔끔... 하지만 배부를 때까지 먹고 싶다던가, 돈이 필요하다던가. 정상적인 범위 내예요.

트루
환시의 힘도... 어렵네요. 오디터들이 떨어뜨린 거라도 발견한다면 이야기가 빠를 텐데요.


착실히 단서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안타까운 시간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윽고 스텔라 섬을 구름이 감싸더니 차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트루
코루루 씨, 괜찮으실까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일행은 코루루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그러나 소원을 빌 만한 별들은 두꺼운 구름 저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2-2


란돌
......

루리아
란돌 씨...! 정신이 드셨군요!


란돌이 의식을 되찾자, 루리아와 비이, 티코가 침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란돌
대체...뭐가 어떻게 된 거야?


티코가 현 상황을 설명하자, 란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란돌
그럼 코루루는... 제길, 누워있을 때가 아ㄴ...

큭...!?

티코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한동안은 절대 안정이야. 자연 치유 능력을 활성화시켜서 잔류 마력을 서서히 제거한다는 실험적 치료를 해 보고 있거든. 게다가 수술 때문에 몸에 부담도 갔을 테니까 느긋하게 쉬어야만 해.

란돌
하지만...!

티코
...단장으로부터의 전언. "란돌은 다친 거 회복하는 게 일이야." 

코루루는 단장네가 찾고 있으니까 안심했으면 좋겠어.

란돌
......!


티코의 말을 들은 란돌은 일으키려고 했던 몸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란돌
...미안하다. 마음이 초조해서. 상당히 심한 상처였을 텐데 치료해 줘서 고맙다, 티코.

티코
인사라면 비이랑 루리아한테도 해 줘. 상처 치료나 약품 조달같은 거 여러모로 도와 줬거든.

란돌
그랬구나... 고맙다, 비이. 루리아.

비이
인사는 됐어! 란돌이 회복해서 다행이다.


란돌은 침착함을 되찾고 복부에 남은 상처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회상]

란돌
페더!!

크허억...!

페더
...!?

 




란돌
(한심하구만... 그 녀석의 방패가 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니. 

...지금의 내게 페더와 나란히 설 강적으로서의 자격은...)


창문 밖에서는 커튼을 드리운 듯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페더
음... 비 오네.


페더는 비를 맞으면서도 코루루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시가지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페더
코루루가 있는 곳에는 분명 라가초도 있을 거다...





[회상]

라가초
주먹으로 이야기한다고...? 말해줘도 못 알아들으니까 두들기는 거 아냐. 으랴아아아아!

페더
큭...!





페더
...그때, 그 녀석의 주먹에서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어...! 나는 그 녀석과 주먹으로 대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길 수 있을까?


페더는 그렇게 중얼댄 후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페더
아냐, 그게 아냐 페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회상]


란돌
크허억...!

페더
...!?





페더
란돌 몫까지 싸워서 코루루를 구출해내야지!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페더가 마을 안을 뒤지며 돌아다니고 있을 때, 문득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
제, 제발 봐 주세요! 이 돈은 어머니를 위해서...

깡패 1
어이... 좀 봐 줬으면 하는 건 우리 쪽이거든.

깡패 2
됐고 얌전히 이리 넘겨. 손 가게 하지 말고 자식아!


깡패 집단에 둘러싸여 협박을 당하고 있는 남자. 페더는 그 모습을 발견함과 동시에 뛰쳐나갔다.


페더
거기 형님, 도망쳐! 여긴 나한테 맡기고!

남자
...! 고, 고맙습니다!

깡패 1
...하아? 넌 뭐야?

깡패 2
줘맞고 날아가고 싶냐, 짜샤!

페더
...흡!


페더는 혈기왕성하게 덤벼드는 깡패들을 가볍게 피해냈다.


페더
너희들! 머리 좀 식히시지!


그리고 그대로 스텝을 밟으며 깡패들을 기절시키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

려고 했으나.

 

 



페더
어...!?


페더의 주먹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온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깡패 1
푸하하핫! 갑자기 굳어버렸잖아!

깡패 2
두들겨! 두들겨 패자고!

페더
커헉...!?

깡패 1
아까 그 호구한테 못 뽑은 만큼 즐겁게 만들어 주시지!

페더
왜...!? 왜 안 움직이는 거야!


페더는 반격하지 못하고 깡패들의 샌드백이 되어가고 있었다.


깡패 1
으하하! 이 자식 좋은 샌드백인데!

깡패 2
먹어라!

페더
가르쳐 줘! 어째서 난 주먹을 휘두를 수가 없는 거지?

깡패 1
뭐, 뭐야 이 녀석... 지금 우리한테 묻는 거야?

깡패 2
기분 나쁜데... 울 때까지 두들겨패서...

피오리토
하앗!

깡패들
크억!


그 순간, 피오리토가 뛰어들어오더니 순식간에 기절한 깡패들이 산처럼 쌓였다.


피오리토
괜찮아, 페더?

페더
그래, 피오리토...

피오리토
집합장소에 안 나타난다 싶더니만... 왜 이런 녀석들한테? 어디 다치기라도 했어?

페더
모르겠어.

피오리토
뭐...?

페더
모르겠어. 아무 것도. 

제길...!

피오리토
페, 페더...!?


피오리토는 달려나가는 페더의 등으로 손을 뻗으려고 했다.


피오리토
......


그러나 그 손은 힘 없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피오리토
...뭘 하고 있는 건지. 나한테 그런 권리는 없는데.


피오리토는 꽃무늬가 그려진 미니백에 들어간 책을 꽉 감싸안았다.





[회상]

 

 



피오리토의 아버지
왕자님은 조타수에게 말했습니다.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어도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제각각 달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가 있으면, 누군가를 증오하는 이도 있지. 너는 지금 무엇을 떠올리고 있니?"





피오리토
......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지금의 나를.


피오리토의 말은 빗방울과 함께 땅 위로 흘러내렸다. 비는 계속 거세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2-3


밤이 되어 숙소에 모인 단장 일행은 각자 코루루 탐색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다.


트루
...결론적으로 나비스는 섬에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항구에서는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피오리토
이쪽도 눈에 뜨일 만한 결과는 없어. 마을이 생각보다 커서 다 뒤져보지 못한 것도 있지만.

비이
그럼 내일은 마을 남은 부분하고... 서북쪽 숲, 천문대가 있는 연구 구역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티코
후우...

루리아
아, 티코 씨. 페더 씨의 상태는 어떤가요?


엉망진창이 되어 숙소로 돌아온 페더는 티코의 치료를 받으러 간 상태였다.


티코
상당히 얻어맞은 것 같던데, 별다른 상처는 없었으니까 괜찮아. 평소에 단련해 둔 덕도 있거든. 다만 지금은 정신없이 자고 있으니까... 그대로 두는 게 좋을지도.

비이
페더가 깡패한테 밀리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피오리토
......

루리아
......


불안이 솟아올라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와중, 티코는 괜히 더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티코
다들, 오늘은 그만 쉬는 게 좋겠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몸도 마음도 더 지쳐 있을 거거든. 오늘 밤은 푹 자고 내일이야말로 코루루를 찾아내자. 응?

쿠피탄
......


티코의 말을 들은 일행은 각기 숙소 내의 방으로 돌아가 불을 끄는 것이었다.





티코
......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티코는 방을 살짝 빠져나와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티코
하여간... 다른 사람들한테는 푹 자라고 말해 놓고 정작 의사는 잠들지 못하다니 웃기는 일이거든. 그보다 비가 그칠 줄을 모르는데, 산책하기에는 좋지 않네...

???
훌쩍... 패앵!

티코
......

숨을 거면 좀 더 제대로 해야지. 코 푸는 소리 아까부터 다 들리거든.


티코가 중얼거리자 건물의 그늘에서 콧물을 늘어뜨린 쿠피탄이 조심스레 나타났다.


쿠피탄
재, 재송해요오... 훌쩍. 티코 씨, 못 주무시는 게 걱정되서, 따라오다가...!

티코
괘, 괜찮아...? 그렇게 우니까 오히려 이쪽에서 걱정되거든. 자, 코 풀어.

쿠피탄
크응~~~! 그치만 티코 씨의 마음이... 흑...!

티코
음... 쿠피탄은 "감정의 색"이 보인다고 했던가? 그렇게 별로야?


쿠피탄은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더니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쿠피탄
불안, 비애, 분노가 뒤섞인 새카만 감정이 "두 개" 보여요...

티코
......!

쿠피탄
...처음 봤어요. 두 사람 분의 고통을 안고 있는 모습은요. 저기, 괜찮으시면 이야기 좀 하지 않으실래요? 누군가와 고통을 나누면 편안히 주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내키지 않으신다면...! 금방 돌아갈게요!

티코
......





티코는 쿠피탄과 함께 마을 광장으로 가서 지붕이 달린 긴 의자에 앉았다.


쿠피탄
이거, 초코 쿠키예요. 단 걸 먹으면 진정되니까 괜찮으시면 드세요.

티코
고마워. 하나 받을게.

음... 달고 맛있다. 쿠피탄이 만든 거야?

쿠피탄
네! 에헤헤, 살짝 자신 있어요.


티코는 쿠키를 다 먹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티코
...두 개의 "감정".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거든... 들을래?


쿠피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티코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들고 사람들을 치료하며 여행하고 있던 티코. 그녀는 어떤 마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자신을 따르는 소녀 샤논과 친해졌다.

 

 



샤논
내가 하고 싶은 건 공부가 아니거든! 의사가 되어서 바깥 세상을 잔뜩 보고 싶은 거거든!

티코
후후... 샤논은 귀엽군요.

샤논
티코보다?

티코
아뇨. 제 다음으로요.

샤논
아하하하! 티코는 재미있다니까!

 

 

티코
거기에 그 남자... 페르디난트가 나타났어. 처음에는 많이 다쳐서 내 진료소를 찾아왔기 때문에 내가 치료해 줬지. 그 이후로도 남자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샤논의 집에까지 들어가서...

 

 


 


샤논의 아버지
크흑...!

샤논의 어머니
꺄아아아아아! 여, 여보...!

페르디난드
이미 죽었어. 왜 얌전히 집을 나가주지 않았던 걸까? 

자, 식사해 볼까. 가족이란 그런 거잖아? 마침 좋은 음식 재료도 있었고.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야. 다들 옛 아버지를 극복하자고.

샤논의 어머니
아아아아아아! 아아... 아... 아아아!

샤논
......

페르디난드
자, 샤논. "재료"에 감사하면서 먹으렴. 그리고 둘 다 잘 들어. 지금부터는 나를 "파파"라고 부르는 거야.


페르디난드는 샤논과 어머니에게 자신이 살해한 아버지의 고기를 먹여 복종시켰다.





티코
당시 마을에서 부상자가 계속 나오는 것이 누군가의 작위라는 사실을 눈치챈 나는 그 남자가 문제라는 것을 밝혀내고 집에 들렀어. 하지만...

거기서 그 남자는... 내 눈 앞에서... 어머니와 "나"를...


페르디난드
에잇!

샤논의 어머니
...?

페르디난드
그쪽도!

 

 

 


샤논
!!?

티코
샤논...샤논!

샤논
......

티코
샤논... 이대로 보내지 않겠어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제가 구해줄게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여! 샤논의 혼을 내게 이식하라!





티코
이후로 샤논과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의 힘으로 둘이서 하나가 되었어. 인격도 기억도 뒤섞인 채 오늘까지 같이 살아왔지.

쿠피탄
그럼 제가 본 건 티코 씨하고 샤논 씨의...


티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티코
우리는 페르디난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비스를 쫓아왔어.

쿠피탄
...두 분의 비애와 분노는 "복수심"이었던 거군요.

티코
그때, 페르디난드가 뭘 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부하한테 지시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상급자일 거라고 추측했거든.

쿠피탄
맞아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체어맨"이라고 불리는 것 같았어요.

티코
그래? 역시... 녀석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어.


티코는 눈 앞의 어둠을 날카롭게 노려보았으나, 문득 그런 자신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몸의 힘을 풀었다.


티코
아... 이거려나. 녀석을 쫓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잠이 안 오거든.

쿠피탄
아뇨, 그... 잠들지 못하는 원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티코
뭐...?


쿠피탄은 티코의 주변을 맴도는 다양한 색이 섞인 "검정"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쿠피탄
가장 강한 감정은 "불안"... 이 눈부신 빨강은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 인가요?

티코
걱정...?

아, 그렇구나. 코루루야. 나도 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자꾸 생각하게 되거든...

쿠피탄
역시... 엄청나게 반짝거리고 보석처럼 밝은 빨강이었거든요.

티코
그런 거야? 불안이라고 하면 좀 더 지독한 색깔일 거라는 이미지가 있었거든.

쿠피탄
아뇨, 친구분을 걱정하는 고귀한 마음이니까요! 단장님 일행은 모두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계세요.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죠.

...딱 한 명, 신경쓰이는 분도 있긴 하지만...


생각에 빠진 듯한 쿠피탄과는 달리 티코는 후련해 보이는 모습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티코
아름다운 불안이라... 쿠피탄과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아. 카운셀러로서의 재능이 있네.

쿠피탄
...감사합니다. 다들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럼 마무리로 하나 더. 푹 잠드실 수 있도록...

"무지개의 화살"이여... 변덕스러운 아이에게 기도하여 황금빛 꿈에 다리를 놓으라.


쿠피탄이 주문을 외우자, 그 손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력의 화살이 생겨났다.


쿠피탄
이 화살을 잡으세요. 불안이 씻겨나가고 점점 잠이 올 거예요.

티코
흐음...?

아... 하암. 진짜 졸리기 시작했어...

쿠피탄
무지개의 활에서 생겨나는 "무지개의 화살"의 능력이에요. 화살에 닿은 상대의 감정의 색을 일시적으로 바꾸는 특수한 힘이 있거든요... 옛날에 큐피드라는 분이 연애감정을 조작하는 데 사용했다는 일화가 있어요.

티코
호오... 뭔가 대단한걸...

 

 




티코와 쿠피탄은 밤이 이슥한 길거리를 함께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쿠피탄
저기, 티코 씨. 코루루 씨를 구해내면... 또 이렇게 함께 산책해 주실래요?

티코
응. 나쁘지 않은걸. 이번에는 쿠피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거든.

쿠피탄
에헤헤... 감사합니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이런 일은 신선해서... 들떠 있을 때가 아니지만요. 

안녕히 주무세요, 티코 씨.

티코
잘 자, 쿠피탄.


거대한 악에 맞서는 소녀들은 잠시나마 나이에 어울리는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은 각오가 깃든 눈으로 각자의 방을 향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2-4


티코와 쿠피탄이 숙소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각. 피오리토는 침대 위에서 트레이닝에 열중하며 스스로를 맹렬히 몰아붙이고 있었다.


피오리토
하아... 하아... 크, 하아... 아직 부족해. 이 정도로는...!

...!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와 피오리토는 땀을 닦은 후 호흡을 진정시켰다.


피오리토
음... 들어와.

루리아
아, 피오 씨. 죄송해요. 밤이 늦었는데...

비이
화장실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잠이 안 와?

피오리토
아니, 그냥 잠이 깨서 가볍게 운동하던 중이야. 걱정시켜서 미안해. 하지만 슬슬 자려던 참이었어.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줘]


피오리토
...응, 고마워.

루리아
아~ 그 얼굴! 그러면 안 돼요, 혼자 다 껴안으려고 하시다니.

자, 약속이에요! 저희는 동료니까요!


루리아는 방긋 웃더니 피오리토의 손을 잡아 그녀의 약지와 자신의 약지를 교차시켰다.


피오리토
잠깐, 루리아쨩...?

비이
또 한밤중에 혼자 어디론가 가 버리면 난감하니까.

좋았어, 하는 김에 우리도 하자!


비이와 단장도 뒤를 이어 장난치듯이 피오리토와 손가락을 걸었다.


비이
근육 누님, 상태 별로 안 좋지? 혹시 전에 말했던 이야기할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게 관계되어 있는 거야?

피오리토
......!

비이
아, 아니. 괜히 억지로 들으려는 건 아니고.

루리아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비이
단 거 먹고 싶어지면 두부 푸딩 또 만들어 줄게!

피오리토
......


피오리토는 단장 일행이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상]


피오리토
근육은 배신하지 않지만 사람은 배신한다... 그게 내 신조야. 강해지기 위한.

 

근육은 제대로 단련하면 강해져. 내 마음에 응답해서 아름답게 피어나지. 하지만 다른 사람은 달라. 내 마음같은 건 상관없이 배신당하고 져 버리지. 그러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아. 나는 홀로 강해질 거야. 





피오리토
계속... 그렇게 살아왔었는데. 하지만...





[회상]


비이
뭘 깜짝 놀라? 같은 배에 타고 있으니 서로 돕는 게 당연하지!

루리아
피오 씨가 어떻게 생각하시든 저희는 강하고 다정한 피오 씨를 믿고 있어요!





피오리토
동료라...

 

 

 


소녀의 환영
그건 아니잖아? 단장의 배에 타고 있는 건 나비스가 "잠입 임무"를 명했기 때문이지. 만남 자체도 나비스가 만들어낸 필연. 너한테 있어 단장은 이용해야 하는 상대에 불과해. 

피오리토
......


피오리토는 꽃무늬 미니백에서 낡은 책을 꺼내들었다.


소녀의 환영
동료같은 건 필요 없어. 나는 혼자서 피어날 거야. 기억해 내란 말이야. 맹세했잖아?

피오리토
......


낡은 페이지의 냄새가 돌이킬 수 없는 나날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어린 피오리토
저기, 아빠! 책 읽어줬으면 좋겠어...

 

 

 


피오리토의 아버지
하하, 좋지. 장미를 키우는 왕자님 이야기 말이지?

어린 피오리토
어!? 어떻게 알았어?

피오리토의 아버지
후후, 글쎄... 역사의 신비를 밝혀낼 정도라서 그럴까?


피오리토와 그녀의 아버지 쥬다는 둘이서 작은 섬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쥬다는 고고학을 전공한 인물로, 친구인 연구원과 함께 어떤 출토품의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피오리토는 그 연구 사이사이의 시간을 노려 책을 읽어달라고 하기 위해 아버지의 방을 찾고는 했다.


쥬다
"장미와 왕자님"... 피오는 이 책을 좋아하는구나.


어린 피오리토
응! 처음에는 장미를 키우는 왕자님 이야기가 재미있네~ 싶었어! 그치만 몇 번이나 읽다 보니까 왕자님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조난당한 조타수가 신경쓰이더라고...

쥬다
오...! 피오는 정말 똑똑하구나. 이야기의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이건 사랑을 깨닫는 이야기지... 청자인 조타수의 감정의 변화에 주목하다니 멋지구나.

어린 피오리토
에헤헤... 특히 좋아하는 데는 여기야!


쥬다는 피오리토가 가리킨 페이지를 천천히 읽었다.

 


쥬다
왕자님은 조타수에게 말했습니다.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어도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제각각 달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가 있으면, 누군가를 증오하는 이도 있지. 너는 지금 무엇을 떠올리고 있니?"

어린 피오리토
멋지다아...! 조타수 씨는 왕자님을 생각하고 있었지!

쥬다
그래. 조타수는 왕자님을 사랑하고 있었어. 친구로서, 소중한 사람으로서.

어린 피오리토
소중한 사람... 나는 이 책을 꼭 껴안으면 아빠 얼굴이 떠올라!

쥬다
후후. 아빠는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피오를 떠올리는걸?

어린 피오리토
아~~~ 치사해! 그럼 나도!


걷잡을 수 없이 행복했던 날들. 그러나 그런 일상은 너무나도 한 순간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쥬다
커헉...!?

연구원
고마웠다, 쥬다. 덕분에 연구는 충분히 진행됐어. 호로스코프 "스파라이"... 이건 내가 맡도록 하마.


연구원은 책상 위의 출토품-낡은 건틀릿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나이프를 잡아빼더니 바닥에 불씨를 떨어뜨렸다.


연구원
자료는 전부 재로 만들어 주마. 그러기로 약속했거든.

...그럼.

어린 피오리토
아빠, 아빠! 오늘은 책을...

......!?


피오리토는 불길이 퍼져나가는 방 안에 쓰러진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어린 피오리토
아빠! 왜? 어떻게...!?


피오리토는 주변을 둘러보다 이 방에 있어야 할 물건과 사람이 없어진 것을 눈치챘다.


어린 피오리토
설마... 연구원 아저씨가!?

쥬다
미안하다, 피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 그는 "나비스"라는 조직에 이용당한 거야...

어린 피오리토
뭐...?


솟아오르는 피를 울컥 토하며, 쥬다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쥬다
얼마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내 연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피오의... 소중한 책에 책갈피를 끼워 뒀단다. 그 페이지에 나온 장소로... 가 보렴. 그 후에는 나비스의 추격자들로부터 도망쳐서...

어린 피오리토
무슨 소리야... 하나도 모르겠어!

쥬다
커헉...!

정말, 미안하다...


쥬다는 간신히 손을 뻗어 피오리토의 뺨을 쓰다듬었다.


쥬다
...피오는 귀엽고 똑똑하지. 분명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거야... 나는 피오가 올려다보는 밤하늘에...


불에 탄 기둥이 쓰러져내리고, 집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어린 피오리토
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아!


피오리토는 책을 가슴에 꽉 껴안은 채 밖으로 달려나갔다.

 

 


 


2-5


어린 피오리토
...연구원 아저씨는 아빠를 배신했어. 





[회상]


쥬다
그는 "나비스"라는 조직에 이용당한 거야...





어린 피오리토
아저씨도 "나비스"도... 절대 용서 못 해...!


하룻밤 후, 피오리토는 가슴에 껴안고 있던 책을 펼쳤다.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는 왕자님이 자신의 출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어린 피오리토
6의 12... 제대로 된 번지수라면 이 숲일 거야.


그 정보를 토대로 도착한 지점에서 피오리토는 어떤 나무 상자를 찾아냈다. 그 안에는 낡은 건틀릿이 들어 있었다.


어린 피오리토
어...? 이건 아빠가 연구하던...


동봉되어 있는 메모에는 이 무기가 악인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끔 진품을 여기에 숨겨 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린 피오리토
그럼 연구원 아저씨는 가짜를 가져간 거구나...


???
그렇군요. 안내 감사합니다.

어린 피오리토
...!?

 

 

 


라비리타
설마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정보 관리를 위해 처분당한 연구원 씨가 무덤에서 뛰쳐나오겠네요.

어린 피오리토
(미행당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이 사람이...!)


피오리토는 입술을 덜덜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


라비리타
아가씨.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 그걸 내려놓고 도망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돈이 되지 않는 살인은 싫어하거든요. 그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은데요.

어린 피오리토
......

(나비스를... 무너뜨려야 해!)


그 순간, 피오리토의 손 안에서 스파라이가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라비리타
...설마 적합자...!? 제발 참아주시죠... 스파라이를 가져가지 못하면 돈을 받지 못한단 말입니다! 

 

 

라비리타가 즉시 총을 쏘았으나, 스파라이의 빛이 탄환을 튕겨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스파라이는 피오리토의 손에 채워져 있었다. 마치 태양이 뜨면 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라비리타
...곤란해졌군요. 정말 적합에 성공할 줄이야.

어린 피오리토
(느껴져...! 난 확실하게 이길 수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피오리토는 크게 숨을 내쉰 후, 라비리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운명을 바꿀 말을 내뱉었다.


어린 피오리토
...당신. 날 동료로 삼아 주지 않겠어?

라비리타
...오호?

어린 피오리토
당신은 이 무기가 필요하지.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내가 당신 동료가 되면 전부 해결되잖아?


흔들림없는 시선을 보내는 피오리토 앞에서 라비리타는 턱에 손을 갖다대며 고민했다.


라비리타
흠... 바보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전투를 피할 수 있고 조건도 충족되겠군요. 오히려 추가 보수가 나올지도...)


라비리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오리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비리타
좋습니다. 당신을 데려가도록 하죠. 다만 체어맨의 판단에 따라서는 그 자리에서 살해당할지도 모릅니다만.

어린 피오리토
...상관없어. 어차피 갈 곳도 없는걸.

(이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의미 없어... 그 후에 나비스의 다른 동료에게 추적당할 뿐이겠지. 힘이 부족해. 정보가 부족해. 지금은 감정에 휩쓸려가선 안 돼.

나비스를 쳐부수고 아빠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나는 나비스에 들어갈 거야.)


피오리토는 광기와 비슷한 각오로 어둠의 세계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어린 라가초
헤에...! 니가 그 소문의 신입이냐?

어린 피오리토
...잘 부탁해, 선배.


그 날부터 피오리토는 나비스의 손에 길러졌다.


어린 피오리토
아무도 믿지 않아.


주변의 모두는 적이었다.


어린 피오리토
정보를 모아야 해.


마음을 죽이고 나비스에 공헌하며 오디터의 자리에 올랐다.


피오리토
...더 많은 힘을.


가장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 합리적인 트레이닝에 몰두했다.


피오리토
...나는 혼자서 피어날 거야.


그것이 피오리토의 결의.





어린 피오리토
생각났어? 단장도 코루루도 페더도, 라가초도 라비리타도... 내 꽃을 피워내기 위한 비료야.

피오리토
...알고 있어.


피오리토는 책을 내려놓은 후 불을 끄고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비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피오리토
그래, 나는... 누군가를 증오하는 쪽의 인간이야.


커튼을 닫자 기억 속의 어린 환영은 사라졌다. 눈을 꽉 감았지만 잠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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