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1화 신성新星
Nova
일행은 숲을 헤치고 들어가 마물의 둥지를 발견했다.
[하아앗!]
이윽고 무사히 마물 퇴치를 끝낸 단장 일행은 마을로 돌아가 천문학자에게 보고를 끝마쳤다.
란돌
아직 점심시간도 안 됐어. 이거 몸도 제대로 못 풀었는걸.
페더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중이야! 란돌, 지금부터 나랑...
란돌
대련하자 이거지? 좋아. 상대해 주마.
몸을 움직이고 싶었던 단장도 두 사람의 단련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 나도...!]
피오리토
흠... 마침 트레이닝도 하고 싶던 참이니 나도 같이 갈까. 코루루쨩도 같이 어때? 식전 운동 삼아서.
코루루
우물우물...
피오리토
...우물우물?
코루루
푸핫! 후... 잘 먹었습니다.
코루루는 입에 물고 있던 하얀 봉 같은 것을 꺼내더니 방긋 웃었다.
피오리토
저기... 그 반짝거리는 봉, 혹시 프라이드 치킨 뼈야?
코루루
맞소이다! 방금 전 꼬르륵 소리를 엄청나게 울려대던 저를 보다 못한 학자님께서 감사하게도 나눠 주신 프라이드 치킨이올시다!
티코
표본에 쓰는 뼈처럼 새하얗잖아. 진짜 깨끗하게 먹네.
코루루
에헤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실컷 즐겼소이다.
페더
프라이드 치킨 맛있지! 부위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것이든 "고기!"라는 느낌이 나서 진짜 좋아!
란돌
넌 고기라면 뭐든 좋은 것뿐이잖아.
코루루
제가 받은 부위는 넓적다리살이외다. 두툼하고 살이 잔뜩 붙은 넓적다리는 씹는 맛이 있어 최고였소이다!
티코
...!?
트루
넓적다리살 좋죠! 고기와 지방이 꽉 차 있는 느낌에, 씹으면 탄력도 넘치고!
티코
...!?
자기 다리를 머뭇머뭇 내려다보는 티코 곁에서 코루루는 피오리토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코루루
피오리토 씨, 조금 전 같이 운동하자고 하셨지요? 소화도 시킬 겸 상대해 드리도록 하겠소이다!
피오리토
...응, 잘 부탁해. 코루루쨩.
(...정말 종잡기 힘들군.)
그렇게 해서 단장, 페더, 란돌, 피오리토, 그리고 코루루는 마을 밖 초원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숙소에 남기로 해서 일행은 둘로 갈라지게 된 것이었다.
란돌
하아... 하아... 슬슬 여기까지 할까.
[그렇게 하자]
[피곤해...!] ->선택
란돌과 단장은 초원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일행은 각자 개인 단련을 한 차례씩 한 후 파트너를 바꿔서 다시 한 번 대련한 참이었다.
코루루
수고하셨소이다. 여기 물이 있으니 드시지요.
란돌
고맙다, 코루루. 페더랑 피오리토는...
란돌이 두 사람에게 질문하려 한 순간, 문득 섬뜩한 투기가 그의 등줄기를 스쳤다.
페더
흐랴앗!
피오리토
..느려!
페더
커헉! 이것도 안 통하는 건가! 그럼 다음에는 반드시...!
란돌
...뭐야, 저 엉망진창인 움직임은? 코루루. 저 녀석들 쭉 저런 상태였어?
코루루
그렇소이다. 쉬지도 않고 계속 맞붙으면서...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소이다.
페더
하아... 하아... 발차기가 그 거리에서도 닿는 거야?
피오리토
오히려 조절한 편이야. 1미터는 더 뻗을 수 있어.
...저기, 몇 번이나 말했지만 슬슬 충분하지 않아?
페더
훗... 몇 번이나 말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해!
간다고우자
강적(라이벌), 그리고 수많은 강자들과의 싸움을 거쳐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거라! 그러던 끝에 이 하늘 어딘가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 또 다시 주먹으로 대화하도록 하자꾸나!
간다고우자. 오랜 세월 동경해 왔던 "구도자"의 말이 페더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페더
피오리토는 확실한 강자야! 주먹으로 더 대화하자고! 우오오오오오!
란돌
(...뭐가 저 녀석을 불붙게 만든 거지? 간다고우자와의 만남? 아니, 그것뿐만이 아냐...)
[회상]
라가초
비켜, 짜샤!
페더
으윽... 역시 넌 대단해! 네 강렬한 주먹을 맛본 순간 영혼이 전율했어! 나는... 내 한계를 뛰어넘을 거야!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내게 그 주먹을 휘둘러 줘!
그 녀석이 어떤 조직에 속해 있든, 나는 그 녀석의 주먹과 대화하고 싶어! 반드시 녀석을 이기고 말 거야!
란돌
(페더를 한 방에 쓰러뜨린 라가초인가 하던 녀석... 지금 페더가 바라보고 있는 건... )
란돌은 입술을 깨물며 소꿉친구의 모습을 응시했다.
한편, 코루루는 피오리토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코루루
저기... 단장님. 피오리토 씨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외까?
[나도 신경쓰이더라] -> 선택
[무슨 소리야?]
평소 트레이닝과 단련에 힘쓰는 피오리토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회상]
피오리토
좋았어, 로자! 지금 물 더 줄게! 여섯 장의 꽃잎을 피워내는 거야!
그녀는 자신의 복직근인 "로자"를 비롯해 각 근육들에게 말을 걸며 하이텐션으로 메뉴를 해치워나가곤 했었다.
[그랬었는데 오늘은 조용하네...]
코루루
아앗!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소이다... 어쩌면 배가 고픈 걸지도 모르외다. 큰일이올시다! 제가 저 둘에게 말하고 오겠소이다.
코루루가 페더 일행의 대련을 멈추기 위해 나서려고 한 순간, 덤불에서 뛰쳐나온 한 마리의 마물이 맹렬히 덤벼들었다.
코루루
......!?
마물은 그 기세 그대로 코루루에게 충돌하더니, 튕겨져나간 그녀를 물고 몸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란돌
뭐야...!?
[코루루!!]
단장이 즉시 손을 뻗었으나 마물은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가 그대로 초원을 달리며 일행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1-2
란돌
페더!!
페더
알고 있어!
코루루가 잡혀가는 것을 목격한 페더와 피오리토도 대련을 멈추고 마물을 쫓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코루루
......
마물의 입에 물려 있는 코루루는 축 늘어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피오리토
저 마물 뭐야...!
란돌
명백하게 코루루를 노렸어! 이게 대체 무슨...
의문의 소녀
히히히... 정답 가르쳐 줄까?
갑자기 일행의 눈 앞으로 거칠게 생긴 도끼를 든 소녀가 뛰어내렸다.
의문의 소녀
늑대 1호, 숲으로 들어가~
소녀가 나른하게 중얼대자, 초원을 달리고 있던 마물이 방향을 틀더니 숲 안으로 들어갔다.
페더
마, 마물을 마음대로 움직인다니?
의문의 소녀
히히힛... 컴온~ 어리석은 녀석들아~
소녀가 기분나쁜 미소를 짓자, 이번에는 대량의 마물이 나타나 단장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피오리토
네가 조종하고 있는 거야? 당당히 앞에 나설 줄이야.
의문의 소녀
푸흡... 크큭!
피오리토
...뭐가 웃긴데?
의문의 소녀
아하하~ 못 참겠어. 어떻게 안 웃냐고~~~
의문의 남자
트리스테트 씨... 지나치게 빠른 호출이군요. 계약한 것보다 일이 늘어나잖습니까.
트리스테트
그치만 너무 멍청하길래~ 라비리타랑 라가초한테도 보여 주고 싶더라고~
소녀에 이어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 중 한 명은 페더와 악연으로 얽힌 상대, 라가초였다.
페더
라가초! 너...!
라가초
오, 페더라고 했던가? 잘 있었냐?
란돌
이 자식...!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당장 코루루 돌려줘!
라가초
아앙...? 너랑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니거든?
란돌
큭...!?
라가초
히히히힛!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잖냐. 걱정되게스리. 응?
먹어라!
라가초가 지면에 주먹을 꽂아넣자, 불타오르는 화염의 벽이 솟아올라 그와 페더, 란돌을 둘러쌌다.
페더
으어! 뭐야?
란돌
제길! 단장네하고 격리됐어...!
라가초
하하핫! 캠프파이어 시작이다! 너희 담당은 나거든. 착하지? 안에서 재밌게 놀아보자!
라가초가 소리높여 웃자, 페더는 재빠르게 그가 있는 방향으로 주먹을 향했다.
페더
그렇구나! 즉 너를 쓰러뜨리면 된다 이거지! 우오오오오!
라가초
하핫, 열심히 해 봐라~ 스치지도 않는다만! 뭐, 저기서 쫄아 있는 긴 머리보단 낫구만.
란돌
...!
(제길,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느껴져... 내가 달려든다 해도 방해만 될 뿐이야...)
한편, 화염의 벽 건너편에서 단장과 피오리토는 적을 물리치고 코루루를 쫓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리스테트
히히히...
라비리타
핫!
총격에 이어 마물들의 공격이 이어져 돌파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라비리타
죄송하지만 시간을 버는 게 제 일이거든요.
트리스테트
조금만 더 놀아주셔야겠어~ 어리석은 단장~ 하고 어리석은 6호 씨?
이미 코루루를 물고 있던 마물은 숲 안쪽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이대로는...!]
단장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던 그 순간이었다.
무지개색 활을 든 소녀
찾았다, 리스쨩!
피오리토
......!
빛나는 화살을 쏘아내며 단장 일행 곁으로 내려선 것은 무지개색 활을 쥐고 있는 처음 보는 소녀였다.
무지개색 활을 든 소녀
여러분, 괜찮으세요?
[당신은...?]
쿠피탄
저는 쿠피탄이라고 하는데요... 그게 음... 여러분 편이에요!
트리스테트
겍...! 하필이면 또 너야?
쿠피탄
리스쨩, 위험한 짓은 그만 해! 같이 돌아가자. 응?
트리스테트
하... 진짜 넌 어리석음의 극치라니까.
쿠피탄이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의 출현에 상대가 긴장의 빛을 띠었다.
피오리토
지금이야...!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피오리토가 마물 무리의 한 점을 돌파해 숲으로 달려나갔다.
라비리타
이런...! 한 방 먹었군요.
트리스테트
어쩔 수 없구만~ 늑대 2, 3, 4호!
라비리타와 트리스테트는 마물에 타고 피오리토를 쫓았다.
쿠피탄
놓치지 않을 거야...!
마물
캬앙!
트리스테트
유감이네요~ 고기 방패 디펜스~!
쿠피탄
리스쨩...!
[쫓아가자!]
단장은 쿠피탄과 함께 마물 무리를 헤쳐나가며 숲 속으로 사라진 적의 뒤를 쫓았다.
한편, 단장 일행과 떨어진 상태인 페더와 란돌의 전투도 이어지고 있었다.
라가초
오, 안됐지만 슬슬 갈 시간이네. 잘 있어라!
페더
기다려! 아직 네 주먹의 소리를 듣지 못했어!
라가초
...뭐?
페더
나는 너와 주먹으로 대화하고 이기기 위해서 계속 단련해 왔어! 너는 어떻게 강한 거지? 어째서 코루루를 납치한 거지? 그 격투술은 어디서 익힌 거지?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라가초
"이야기"라고...?
페더
그래! 주먹으로 이야기하면 반드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겨나!
라가초
주먹으로 이야기한다고...? 후우. 이거 참 재미없는 농담이구만.
라가초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특유의 자세를 취했다.
라가초
말해줘도 못 알아들으니까 두들기는 거 아냐.
"크림슨 핑거"... 죄를 자아내어 손톱이 되어라!
란돌
...! 페더, 뭔가 온다!
페더
덤벼, 라가초!
라가초
그 눈빛은 뭐야... 짜증나게 하지 말라고, 자식아!
으랴아아아아!
페더
큭...!
라가초의 연속된 공격은 정확하게 급소만을 노렸고, 페더는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페더
이, 이건...!? 라가초의 주먹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잖아...?
라가초
난 너랑 할 말 따위 전혀 없거든. 이거나 처먹어라!
페더
...큭!
란돌
페더!!
란돌
크허억...!
페더
...!?
페더가 온 몸에 뒤집어쓴 것은 친우가 내뿜은 선혈이었다. 그는 꽃잎을 흩뿌리듯이 쓰러지는 란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숲으로 뛰어들어간 피오리토는 길 없는 수풀을 헤쳐나가 코루루를 납치한 마물에게 접근한 참이었다.
피오리토
하앗!
마물
...!
마물에게서 풀려난 코루루가 천천히 눈을 떴다.
코루루
피오리토, 씨... 덕분에, 살았소이다...
코루루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짓자 피오리토가 손을 내밀었다.
피오리토
다행이네, 코루루쨩.
...그런데 정말 미안해.
코루루
어...?
순간, 피오리토가 끼고 있던 낡은 건틀릿에서 빛이 뿜어져나오더니 코루루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피오리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라비리타
수고하셨습니다, 피오리토 씨. 모든 것은 "성좌"대로... 계획은 성공이군요.
피오리토
......
라비리타
실로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스파라이의 능력이 부럽군요. 돈 벌기 쉬울 것 같은데요.
트리스테트
히히힛... 연출은 노잼이었지만 말야~
"네가 조종하고 있는 거야?" 라니! 우리가 올 거라는 거 다 알고 있었으면서?
피오리토
......
트리스테트
히익...! 뭐, 뭐야. 그렇게 노려보지 마!
피오리토
...대상의 운반을 부탁하지. 그래서 단장네는?
라비리타
이미 숲에 들어왔습니다. 그럼 남은 일도 잘 처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피오리토
...알겠어.
트리스테트
그럼 안녕~ 천재 배우님~
피오리토
......
피오리토는 코루루를 데리고 가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피오리토
(아직도 손이 떨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건 각오하고 있었는데도...)
피오리토는 입술을 깨문 후,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다시 숲을 달리기 시작했다.
1-3
란돌
......
중상을 입은 란돌은 숙소로 실려와 침대에 누운 채 티코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티코
......
페더
티코! 란돌은? 괜찮은 거야?
티코
...처치는 해 뒀어. 갈비뼈 11개 골절에 대량 출혈, 내장은 파열 직전.. 특히 폐에 부러진 뼈가 꽂혀서 심각했거든.
페더
...그, 그럼 혹시...!
티코
아, 걱정하지 마. 그 부분은 이미 다 나았거든. 다만 특수한 마력이 잔류하고 있어서... 대미지를 입은 부위 중심으로 중증 화상이 남아 있어. 이게 저주같은 거라 좀 골치아픈데... 대처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거든.
페더
그렇구나... 나 때문에 란돌이...
티코
...... 너무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어. 란돌은 나한테 맡기고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지를 생각해야지.
페더
......
란돌이 페더를 감싼 직후, 라가초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그 자리를 훌쩍 떠났다.
한편, 단장과 쿠피탄은 라비리타와 트리스테트를 쫓아 숲 속으로 들어갔으나...
루리아
거기서 완전히 목표를 잃은 채로... 숲에 있던 피오 씨하고 합류해서 다 같이 숙소로 돌아온 거군요.
쿠피탄
죄송해요... 기세좋게 달려나갔으면서 도움이 되지 못했네요.
비이
응? 누님은 누구야?
쿠피탄
아... 소개가 늦었죠. 저는 쿠피탄이라고 해요.
쿠피탄은 그녀를 처음 보는 동료들에게 인사했다. 이후 일행은 숲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비이
근육 누님이 처음에 숲으로 들어갔지? 코루루는 못 본 거야?
피오리토
...미안. 숲 안이 상당히 어두워서 나도 적을 놓치고 말았어...
쿠피탄
......
피오리토
왜 그렇게 봐?
쿠피탄
아, 아뇨... 그 후엔 어떻게 하셨나요?
피오리토
코루루쨩을 유괴한 녀석들이나 마물이 남긴 흔적이 없나 조사해 봤어. 하지만 수풀이나 지면 모두 아무런 흔적도 없더라고.
숲을 조사한 단장도 피오리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것도 없었어" 라고 고개를 떨구었다.
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숲에서 신나게 날뛰었다면 뭔가 남아있을 만도 한데.
쿠피탄
상대가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에 능숙하던가... 아니면 누군가가 뒷공작을 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피오리토
......
비이
제길...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이후, 단장 일행은 코루루의 유괴와 얽힌 상황을 정리해 보기 위해 거실로 모였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페더였다.
페더
라가초... 그 녀석은 뒷세계의 조직인 "나비스" 조직원이었지.
비이
그렇다면 코루루를 납치한 것도 나비스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네.
"나비스". 뒷세계의 어둠 심층부에서 암약하며 수많은 범죄에 얽혀 있는 조직의 이름이었다. 도시전설처럼 취급되며 실재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비밀주의를 관철하고 있었으나, 페더는 예전에 우연히 만난 라가초의 정체를 쫓는 가운데 나비스가 실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소수정예 조직을 유지하며 일반인을 이용해 계획을 실행하곤 했지만, 그 목적 등은 아직도 수수께끼에 싸인 채였다.
루리아
어째서... 어째서 코루루쨩을 유괴한 걸까요?
티코
......!
쿠피탄
히익...!?
티코
아...미안. 나비스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좀 사정이 있거든. 나도 나비스를 쫓고 있는데...
쿠피탄은 격한 감정을 숨기고 있었던 티코의 모습에 압도당한 듯하면서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쿠피탄
코루루 씨를 유괴한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그라시저 때문일지도 몰라요.
비이
그라시저...? 코루루가 쓰는 창 말야?
쿠피탄
네. 그 무기는 나비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거든요.
티코
특별한 무기...?
그 말을 들은 티코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티코
그러고 보니... 페르디난드라는 나비스 소속 남자가 말했었거든. 어떤 성정수를 손에 넣기 위해서 무기를 모으고 있다고...
쿠피탄
그런...! 거기까지 알고 계셨던 거군요.
비이
뭐야? 무지개 누님은 나비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쿠피탄
그렇죠. 뭐든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정보는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몇 년이나 혼자 나비스를 쫓으며 사소한 자료나 기록까지 모아왔으니까요.
쿠피탄은 자신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쿠피탄
티코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나비스는 어떤 성정수를 현현시키기 위해 특별한 무기를 모으고 있어요. 그것이 호로스코프(점성무기)... 전 하늘에 23개 존재하는 무기죠.
페더
호로스코프...?
쿠피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깨에 걸치고 있던 가방에서 아름다운 활을 꺼내들었다.
쿠피탄
사실은 제가 가지고 있는 이 "무지개의 활"도 호로스코프 중 하나랍니다. 그 뿐만이 아니에요. 피오리토 씨의 "스파라이"도, 트루 씨의 "듀랜달"도... 그리고 티코 씨의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코루루 시의 "그라시저"도 모두 호로스코프예요.
트루
그런 건가요? 이 성검 듀랜달이...
충격받은 일행 앞에서 쿠피탄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쿠피탄
호로스코프는 각지에서 전설로 이어져 내려올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누구나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호로스코프에게는 의지가 있어서 사용자를 고른답니다. 여러분처럼 호로스코프에게 선택받은 자들을 나비스에서는 "적합자"라고 불러요.
페더
그러고 보니 라가초도 신기하게 생긴 건틀릿을 끼고 있었지... 녀석도 적합자인 거야?
쿠피탄
맞아요. 아까 여러분을 습격했던 인물들은 아마도 오디터(감사자)... 나비스의 주전력이자 전원 적합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들었어요. 이건 제 추측이긴 하지만, 나비스는 호로스코프 그 자체보다도 적합자를 모으고 싶은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비이
잠깐만. 그렇다면...
[회상]
란돌
그나저나 뭐랄까. 묘한 멤버가 모였군.
비이
직전에 마침 이런저런 의뢰가 들어오는 바람에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이 한정되어 버렸지.
스텔라 섬에 도착한 직후 별 생각 없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 단장은 뭔가를 깨달았다.
[이 섬으로 유인당한 건가...?]
쿠피탄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요. 일반인을 이용한 유도는 나비스의 전형적인 수법이거든요.
루리아
나비스는 코루루쨩을 유괴해서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요?
쿠피탄
짐작되는 것이 있어요. 최악의 케이스이긴 하지만...
쿠피탄은 고개를 떨구더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말했다.
쿠피탄
..."세뇌"예요.
티코
세, 세뇌...?
쿠피탄
네. 적합자를 세뇌시켜 나비스에 순종하는 인간으로 바꾸어 버리는... 그런 수단이 나비스에 있어요.
피오리토
그, 그럴 수가...
쿠피탄
제 소중한 친구도 나비스에 붙잡혀갔죠. 오디터 중 하나인 트리스테트... 리스쨩도 세뇌당해서 나비스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페더
트리스테트라니... 그 마스크 쓴 마물 조종자 말인가?
쿠피탄
...예전에는 마스크같은 거 쓰지 않았었어요. 하나도 안 어울리는걸... 저는 리스쨩을 구해내기 위해서 나비스를 쫓고 있는 거예요.
저기...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라 믿기 힘드실지도 모르겠지만...
[믿어] -> 선택
[아직 못 믿겠어]
비이
뭐, 무지개 누님이 거짓말 할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기도 하고,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겠지.
상황을 정리한 단장이 힘있게 선언했다.
[반드시 코루루를 구해내겠어!]
루리아
그럼요, 당연하죠! 절대 세뇌당하게 두지 않겠어요!
쿠피탄
서두르는 게 좋을 거예요. 리스쨩은 나비스에 납치된 지 3일만에 오디터가 되었으니까요. 여러분은 저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라요... 부디 저도 돕게 해 주세요.
트리스테트를 쫓는 소녀, 쿠피탄의 도움으로 사건의 실체를 조금 더 명확하게 알게 된 일행. 그들은 코루루가 "세뇌"당하기 전에 반드시 구해내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페더
......
피오리토
......
그 뒤에서 두 개의 별이 방황하며 빛을 잃으려 하고 있었다.
1-4
의논 끝에 일행은 코루루를 구출하기 위해 역할을 나누어 단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단장, 쿠피탄, 트루는 항구로. 페더와 피오리토는 시가지로 향했다. 또한 티코는 란돌의 치료를 위해 숙소에 남고, 비이와 루리아가 그것을 돕기로 했다.
피오리토
...그럼 그렇게 가 볼까.
페더
......
피오리토
...페더? 멍해 보이는데, 듣고 있었어?
페더
어...? 미안, 무슨 얘기였어?
피오리토
탐색할 구역 분담. 페더는 남쪽 맡아달라는 이야기.
페더
아...그랬지! 어서 코루루를 찾아내자!
피오리토
페더, 너...
피오리토는 뭔가 말을 이으려 하다가 중간에 삼키고 말았다.
피오리토
...아무것도 아냐. 나중에 합류하자.
피오리토
......
페더와 헤어진 피오리토는 아직 날이 밝은데도 불구하고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아무도 없는 거리로 들어섰다.
피오리토
(일반인(스타)의 조작이군... 틀림없어, 여기야)
피오리토는 주변을 살피며 "휴점일" 이라는 안내가 걸린 낡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망설임없이 지하로 내려가자, 좁은 공간에 놓인 테이블 주변으로 몇 명인가가 착석해 있었다.
페르디난드
안녕, 피오리토 군. 슬슬 올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피오리토
...미안. 조금 늦어졌어.
라비리타
그런 입장이니 어쩔 수 없으셨겠죠. 마실 것은 홍차면 될까요?
피오리토
...아니, 필요 없어.
피오리토가 자리에 앉자 페르디난드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디난드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우리는 그라시저의 적합자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것도 오디터 제군들 덕분이지.
페르디난드
오디터 세콘도(제2위), "슬란드"의 적합자, 트리스테트.
페르디난드
오디터 테르초(제3위), "크림슨 핑거"의 적합자, 라가초.
페르디난드
오디터 퀸토(제4위), "그랏드 아이"의 적합자, 라비리타.
페르디난드
오디터 세스토(제6위), "스파라이"의 적합자, 피오리토.
...이상 4명에게는 3인의 의장 대표로서 내가 감사를 표하도록 하지.
라비리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감사라면 말이 아니라 금액으로 표해 주셨으면 합니다.
라가초
어이, 라비리타! 여기서 돈 얘기같은 걸...
페르디난드
괜찮단다, 라가초. 그의 그런 부분을 좋아하지. 보고에 따르면 계약한 내용보다 많이 일한 모양이더군. 그 부분은 확실히 보상하도록 하겠어.
라비리타
후훗... 대단히 감사합니다.
페르디난드
아! 예상과 달랐던 것이라고 하니 트리스테트, 네 움직임도 대단하더군.
트리스테트
후후, 그치 그치? 역시 내가 "위"라니까~
페르디난드
그리고 무엇보다... 피오리토 군.
피오리토
......!
페르디난드
집을 떠나 잠입 임무라니, 고된 나날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작전에서는 그 성과를 충분히 발휘해 주었어! 내부에서 단장 일행을 속이며 조사, 유도, 공작까지... 홀로 다양한 활약을 보여주었더군.
피오리토
...고마워.
페르디난드
사실을 말하자면 자네가 돌아올 집을 착각하는 건 아닌지 조금 불안했었지.
피오리토
......!
페르디난드
허나 기우였던 모양이야. 아, 하지만 만약을 위해... 코루루 군을 숨겨둔 장소는 자네에겐 알리지 않도록 하겠어. 어쩌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단장 일행에게 흘려버릴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럼 앞으로도 그들에게 의심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시 잘 부탁하지.
회의가 끝났다. 홍차를 즐기고 있는 페르디난드를 남기고 4명의 오디터들은 계단을 올랐다.
라가초
잘 됐구만, 세스토(6위)쨩. 체어맨한테한테 칭찬받으니 기분 좋냐?
피오리토
...뭐?
라가초
쳇,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도 올린 적 없는 주제에 말이지... 전리품 좀 들고 았다고 태도가 건방진 거 아냐?
피오리토
...뭐? 당신, 자기가 칭찬받지 못했다고 속이 뒤틀린 건가?
라가초
하...? 기어오르지 말라고.
피오리토
선배는 좀 수그리는 게 어떨까?
라가초
이 자식...!
라비리타
두 분 다 진정하시죠. 항상 말씀드립니다만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트리스테트
쯧쯧... 어리석은 녀석들은 이래서 원~
라가초
...뭐라고?
트리스테트
히익...!? 째, 째려봤자 네가 잘못한 거거든. 네가 아래거든~?
라가초
쳇...! 이 정도는 늘 있던 일이잖아?
라비리타
뭐 그렇죠. 당신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피오리토 씨. 실례지만 무슨 일 있었습니까?
피오리토
......!
라비리타
평소의 당신이라면 더 여유롭게 대응했을 겁니다. 이중 생활의 고충이라면 제가 언제든 대화 상대가 되어 ㄷ...
피오리토
기분 나빠. 마음대로 단정짓지 마.
트리스테트
히히~ 한 방 먹었구만~~! 어리석고 기분나쁜 라비리타~!
라가초
흥, 이거 고맙구만. 니 썰렁한 대사를 들으니 나도 급 냉정해진다.
라비리타
아아, 정말이지! 당신들이란...!
피오리토
......
피오리토는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출구를 향해 걸었다. 그 발소리는 갈 곳을 잃은 것처럼 허공 속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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