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비 오는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남학생 1
하... 우리도 벌써 중 3인가. 넌 학원 다닌다고 했었지? 학원 수험 대비는 어떤 느낌이야?


남학생 2
그게 말이지, 선배 얘기로는 여름방학에도 매일 강의를 듣거나 모의고사 쳐야 된다더라고. 그런 걸 어떻게 해~!


남학생 1

으엑, 방학 내내 공부라니 말도 안 돼... 난 학원 안 가길 잘 했다.


여학생 1
들었어? 레이카는 이번 방학 때 하와이에 간대!


여학생 2
뭐~? 부럽다! 난 올해도 군마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나 가는데.


여학생 1
현 밖으로 나가는 게 어디야~ 우리집은 친척들이 다 근처에 살아서 현 밖으로 나갈 일도 없는데.

 

 

 


스쳐지나가는 학생들의 대화를 멍하게 흘려들으며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잔뜩 흐린 하늘의 회색 구름. 비에 잠긴 논밭과 콘크리트 틈새로 차오르는 물웅덩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를 찌르는 비 냄새와 흙 냄새,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강해진 풀 냄새. 철들었을 때부터 변함이 없는 모습이지만,  내가 먹은 나이의 수만큼 오래된 풍경.


하지만 주변의 변화란 원래 그런 것이다. 새 것이었던 우편함이 어느 새 녹슬어 있었다던가, 옆집에서 기르는 개가 어느 새 새끼를 낳았다던가. 그것은 전부 사소한 일상일 뿐, 되풀이되는 나날을 바꿀 정도의 자극은 되지 못한다. 작년까지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공포의 대왕도 내려오지 않았고, 세상에는 변한 것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뿐인 나날들. 그런 지루한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은 저 하늘처럼 무섭고 어두운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
아...

 


광고물 더미 속에서 나타난, 마치 맑은 날의 푸른 하늘을 베어낸 듯한 한 통의 편지. 나는 그 봉투가 젖지 않게끔 소중히 품에 넣고 서둘러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젖은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책상으로 향했다. 오래 써서 낡아버린 커터칼로 봉투를 연 후,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접혀 있는 편지를 펼쳤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안녕하세요. 

 

벚꽃도 지고 완전히 따스한 계절이 되었네요.

요즘에는 비가 오면 매일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다니던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곤 해요.

 

도쿄에는 개구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답니다.

대신 들리는 거라고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전차 소리뿐이죠.

개구리라고 하니... 어렸을 때, 당신이 잡은 커다란 개구리를 보고 울어버린 적이 있었죠. 그립다~

 

아, 지금은 개구리도 도마뱀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면 비 씨도 쓰다듬어 줄 수 있을 거예요.
아마도요.

 


살짝 동그랗고 예쁜 글씨로 적어내려간 그 아이의 평범한 잡담을 하나하나 훑을 때마다 내 마음은 따듯해져 갔다. TV 안의 세계라고만 생각했던 도시 이야기나 모르는 사람들과의 교류. 내가 다니는 학교와는 다른 학교의 행사. 그런 것들을 알게 될 때마다 내 세계가 넓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두근거렸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낮은 따듯해졌지만 밤은 아직 쌀쌀할 때도 있으니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러면 안녕히 계세요.


키쿠다 아오토 님께,
총총.

 

 

 


아오토
......

 


마지막 한 글자까지 주의깊게 읽어내린 후, 편지를 정성스럽게 접어 다시 봉투 속에 넣었다. 창문 밖에서는 변함없이 빗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비가 갠 후의 하늘처럼 맑았다.

 

 

 


???
......


아오토
비? 배 고파서 그래?



......

 

아오토
내가 어렸을 때부터 키우고 있는 도마뱀, 비.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됐다.

 


......


아오토
헤실거리기는. 이라고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린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무심코 양 볼에 손을 갖다댔다.

 

 

그렇게 티 났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왜냐면 그 아이는 먼 곳으로 이사갔어도 변함없는 나의 소중한 소꿉친구니까. 쏴아아 하는 빗소리가 들려오는 창문을 보며, 그 아이에 대해 떠올렸다. 그 아이가 살고 있는 곳도 여기처럼 비가 내리고 있을까.

 


...도쿄라... 멀구나.

 


부모님의 전근으로 먼 곳으로 이사가 버린 소중한 그 아이.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으며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오래 전의 기억,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여름날. 커다란 솜사탕같은 뭉게구름이 떠 있던 푸른 하늘 아래, 새하얀 원피스를 휘날리며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 주던 그 아이의 모습을 말이다.

 

 

 

 

안녕하세요*, 소중한 당신에게

Sincerely, Your Dearest Friend

 

 

*원문인 拝啓(はいけい)는 편지 첫머리에 적는 상용 인사말로, 사전에서는 삼가 아룁니다 정도로 번역됩니다. 내용이나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편지쓰기 형식을 감안해 통상적인 인사말로 대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