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의 환영

......

 

아오이도스

하아... 하아...

 

라캄

해냈구만...

 

비이

견뎌냈구나, 아오이도스!

바알

아직 호흡은 거칠지만 일단은 문제없어 보이는군.

 

 


 

 

발렌틴

...저스틴.

 

저스틴

네. 기억을 흔드는 데에는 실패한 모양이군요. ...하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봐야겠죠.

 

 


 

 

저스틴

아오이도스 씨,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저희 악보입니다.

 

라캄

이, 이봐...! 우리 스테이지는 아직 안 끝났어!

아오이도스

...아니, 괜찮아. 다음엔 이 녀석들과 연주할 거니까.

 

...!

비이

아, 아오이도스? 왜 그래?

 

 

저스틴에게서 건네받은 악보를 훑어보자마자 아오이도스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발렌틴

최고의 악보야. 그렇지? 벤자민.

 

아오이도스

...그래.

 

 

주변의 분위기는 급변했고, 아오이도스는 기타의 헤드를 비틀더니 천천히 검을 뽑기 시작했다. 악보의 첫 페이지에는 피로 적힌 글자가 보였다.

 

"DOSS의 베이스, 드럼, 사이드기타를 처형한다"

 

 

저스틴

...뮤지션은 악보를 거역할 수 없죠. 처형할 수밖에 없잖아요?

 

아오이도스

크크큭...

 

발렌틴

처형이 끝나면 벤자민이 돌아올 거야...! 그리고 나를 베는 거다! 어서!

저스틴

자, 페스 사상 최대의 중대발표입니다. 지금 DOSS 리더의 정체가 밝혀지는 겁니다. 처형할 시간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해 기타를 들었는지 지금 모두에게 보여주세요!

아오이도스

...! 무엇을 위해서...

 


 

 

남자

이, 이봐... 정말 이렇게 따라와도 되는 거야? 응?

 

어린 벤자민

......

 

남자

히히... 예, 예쁜 얼굴이네. 꼭 여자애같다.

 

어린 벤자민

......

 

 


 

 

남자

으아아악!

 

어린 벤자민

......

 

 

집을 나온 후로 쥐를 죽이는 것은 그만두었다. 대신 죽여도 될만한 녀석을 찾아내어 죽이게 되었다. 

 

 

남자

아... 윽...

 

어린 벤자민

......

 

 

하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뭐가 어떻게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니라고 생각했다. 쥐의 비명, 남자의 비명. 둘 다 닮았지만 둘 다 아니었다. 몇 번이나 낙담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어린 벤자민

......

 

수수께끼의 기타맨

찾고 있던 건 찾아냈어? 꼬맹아.

 

어린 벤자민

......

 

 

 

 

수수께끼의 기타맨

계속 찾아다녔지? 귀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린 벤자민

......

 

 

그렇다. 나는 찾고 있었다. 어른들이 쥐를 잡을 때 났던 비명소리를 들은 후로 계속해서...

 

 

수수께끼의 기타맨

내가 좀 도와줄까?

 

 

그러더니 그 남자는 기묘하게 생긴 악기를 꺼내들었다.

 

 

수수께끼의 기타맨

찾고 있던 게 이거야?

 

 

그는 현을 짚더니 한번 가볍게 쓸어내렸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수수께끼의 기타맨

그럼 이건?

 

 

노브를 조정하고 다시 한 번 쓸었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수수께끼의 기타맨

이런 건 어때?

 

어린 벤자민

...!

수수께끼의 기타맨

이거랑 비슷해? 오, 너 제법 재능이 있는데. 한번 쳐 봐.

 

어린 벤자민

......

 

 

치는 방법조차도 몰랐다. 그냥 마구 울려댔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 벤자민

아... 아...

 

수수께끼의 기타맨

말로 표현하기 힘들면 이 녀석으로 비슷한 소리를 찾아내면 돼. 변태를 찾아내서 죽이는 것보다는 훨씬 간편하지.

 

 

내가 태어난 순간에도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던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기분나빠하던 조산사의 얼굴도. 그 후로 계속 마음 속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 벤자민

...!

 

비슷한 소리는 있었다. 쥐의 비명소리, 남자의 비명소리. 어떻게 해야 내가 찾고 있던 소리와 만날 수 있을까.

 

 

수수께끼의 기타맨

이거 너 줄게. 기타라고 해. G-u-i-t-a-r. 마음대로 치면서 마음에 드는 소리를 내 봐. 네가 품고 있는 게 분노인지 슬픔인지 허무함인지, 나는 모르겠다만.

 

어린 벤자민

아... 아아...!

수수께끼의 기타맨

하지만 네 마음 대신 그 녀석이 울려줄 거야. 찾고 있던 건 그 녀석한테 물어봐. 기타가 너의 대변자니까.

 

어린 벤자민

Aaaaaah!

 

마침내 나는 십수년을 참아왔던 울음소리를 이 세상에 내질렀다.

 

 


 

 

벤자민

어때, 아오이도스. 그리운 기억이지?

 

아오이도스

그래. 기타를 손에 든 후로 알게 됐다. 나와 비슷한 녀석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그런 녀석들이 원하던 것이 다크 GIG이야.

 

군중들

잔학! 잔학! 잔학!

벤자민

녀석들은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던 남자를 찾아냈고, 그 괴물이 "평범함"이라는 잔혹한 감올을 깨고 나와 울부짖기를 원했어. 원해주었지. 

 

저스틴

날... 날 버리지 말란 말입니다!

 

벤자민

이 녀석도 감옥에서 뛰쳐나온 쪽이야. 그와 동시에 다크 GIG을 갈망하는 쪽이기도 했지. 내가 차분한 음악을 원한 순간 공포에 질릴법도 해. 

 

아오이도스

네가 감옥으로 돌아갈 가능성 때문인가. 그리고 그 앞에 기다리는 건 상실이겠지. DOSS 팬들이 날 잃는다면 미쳐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벤자민

그래. 상실이야. 그래서 저스틴은 날 죽였어. 네가 말한 대로 녀석은 미쳐버린 거지. 자, 선택할 때가 왔다. 너는 DOSS와 잔학삼형제 중 어느 쪽을 택할 거지?

 

아오이도스

나는...

 

 


 

 

아오이도스

......

 

 

앵콜을 부르짖는 박수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반박하기 힘든 최고의 GIG을 목격했기에 자연스럽게 솟아나오는 박수였다. 

 

 

아오이도스

......

 

 

계속해서 이어지는 박수소리를 한 몸에 받으며, 남자는 그 자리에 못박혀 있었다.

 

 

라캄

아오이도스...!

저스틴

벤자민...!

 

아오이도스

...이 세계는 잔혹해.

 

라캄, 저스틴

...!

아오이도스

신은 항상 내게 원하지. 그대는 이래야만 한다고. 지금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그 이상을 가져다두고, 길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내팽개쳐버려. 내가 추구하는 모습, 되어야만 할 모습... 그 흔들림은 내게서 오감마저도 빼앗아가.

 

어느 날 아침, 공동 세면대에서 이를 닦고 있었어. 그런데 치약 맛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느꼈지. 내가 사랑하는 딸기맛에 희미하게 감도는 민트의 향기... 그건 기묘한 감각이었어. 그러더니 아카이도스가 와서 말하더군. "그 칫솔, 내거야" 라고.

 

그 순간, 그 칫솔은 내 것이면서 아카이도스의 것이기도 했어. 어느 쪽이든 칫솔임에는 틀림이 없지.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쓰고 있던 칫솔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OK. 내가 멸망한 후에 봤던 풍경을 너희들에게도 보여주겠어. 

 

 

아오이도스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휘감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용한 음색, 슬픈 듯한 멜로디. 아오이도스가 고심 끝에 적어내린 것은 발라드였던 것이다.

 

 

저스틴

......

 

아오이도스

황혼에 비친 날개를 차가운 밤바람이 꿰뚫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가슴에 품은 채

끊어진 발자취 위로 겹쳐지는 발걸음 얼어붙을 듯한데

잔향만이 울리는 거리에서 너를 찾아서...

Oh My Melodies 모순뿐인 날개가

Oh My Love 등에서 흩어져내리면

분명 네 따스함을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unfinished 또 다시 무너질 듯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On my own

 

군중들

......

 

 

어둠 속에서 희망을 찾아낸 것처럼, 슬픔만으로 차 있지 않은 노래. 그것은 청중들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이 순간을 영원히 새기려 하고 있었다.

 

 

 

 

아오이도스

Oh My Love 유리구두를 내려놓고

Oh My Love 끝없는 하늘로

저 종이 울려퍼지는 저편으로

결별의 꽃다발을

Oh My Love 형태 없는 소원이

Oh My Love 열매맺는 날까지

내일을 이어가고 싶어

unfinished 살며시 내민 맹세를

묘표에 바치고

unfinished 다시 떠나겠다는 결의를

네게 보여줄게 On my own

 

 

조용했던 박수는 이윽고 노도와 같이 커지며 스테이지를 뒤덮었다.

 

 

저스틴

......

 

 

관객들은 아오이도스에게 박수를 보낼 뿐, 그 자리에 무릎꿇은 저스틴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했다. 최고의 GIG의 끝을 최고의 형태로 장식한 아오이도스를 향한 박수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박수칠 뿐이었다.

 

 

아오이도스

...벤자민은 죽었어. 

 

저스틴

그게 당신의... 그의 선택인가요. 그의 입으로, 앞으로도 제가 원하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오이도스

훗...

 

 

그리고 정적이 깨졌다.

 

 

아오이도스

Graaaaah!

군중들

...!

 

잠시 후, 박수마저도 끊어졌다.

 

 

저스틴

어... 응...?

 

아오이도스

벤자민은 죽고, 아오이도스도 죽었다. 그렇기에 DOSS는 죽었다. 잔학삼형제 또한 죽었다! 그리고 그 둘을 합쳐, DOSS the Second Season... "DOSSSS"로서 되살아난다!

 

웅성거림이 회장을 가득 덮었다.

 

 

관객 1

DOSS와 잔학삼형제의 중대발표라는게...

 

관객 2

양대 거물 밴드의 통합발표였던 거야?

 

저스틴, 발렌틴

......

 

라캄, 비이, 바알

......

 

 

흥분에 휩싸인 관객들과는 달리, 스테이지 위의 다섯 멤버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캄

이, 이봐! 갑자기 대체 무슨 소리야!

비이

아무 계획도 없이 이상한 발표 하지 말란 말이야!

아오이도스

DOSS의 팬이든, 잔학삼형제의 팬이든 다 내 팬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모두가 나를 원하고, 찬미하고, 긍정하지. 그리고 필요로 하고 있어. 그래. 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 그런데 그들을 버릴 수 있겠어? 신은 내게 선택하기를 종용했어. DOSS인가, 잔학삼형제인가. 그렇다면 나는 선택하지 않겠어. 둘 다 버리고 둘 다 택한다. 그것뿐이야.

 

저스틴

......

 

아오이도스

왜 그러지. 또 나와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시험삼아 따라올 건가?

 

저스틴

제가 원하지 않는 노래를 부르실 거잖아요?

 

아오이도스

네가 원하는 노래도 부를 거야.

 

저스틴

완성도가 별로면 또 찌를 겁니다.

 

발렌틴

덤으로 나도 찔러 줘, 저스틴.

 

 

그런 대화를 하고 있자니, 어디선지 모를 암운이 몰려오며 천둥번개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아오이도스

훗... 최고의 날씨야.

 

...OK! DOSSSS 최초의 곡은 잔학삼형제 시대의 음악으로 시작하지! "Grudge of the Scapedog!"

 

저 들개를 쫓아가 돌을 던지고 봉으로 때리면서

마을을 좀먹은 저주는 저 녀석이 원흉 원흉 원흉

비명이 피어오르지 짓이겨서 닥치게 만들어

이번에 저주의 인과를 뒤집어쓸 자는 누구냐 누구냐 누구냐

 

잔학삼형제의 팬들

잔학! 잔학! 잔학!

 

DOSS의 팬들

......

 

 

DOSS의 팬들은 그것이 잔혹하기만 한 가사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DOSS였던 그를 알지 못했다면 첫 프레이즈만 들은 시점에서 멀리했을지도 모른다. 벤자민의 노래는 누군가의 고독을 대변했고, 아오이도스의 노래는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었다. 그 둘이 하나로 합쳐진 순간...

 

 

바알

...훗. 어디로 향하든 그 길을 지켜보도록 하지.

 

 

뭔가 거대한 예감이 들었고, 멤버들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벤자민과 아오이도스가 계속 품어왔던 확신에 가까운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The End of THE DOSS

 

 


 

 

매니저

수고했어, 아오이도스. 오늘 스테이지는 예상 밖이던걸.

 

아오이도스

상정하던 바야. 예상의 범위 안에 머무른다면 나라고 할 수 없지.

 

매니저

후후, 정정할게. 오늘은 예상한 대로였어. 전공 제일이었지.

 

배달부

저기, 죄송합니다. 슬슬 사인 받을 수 있을까요?

 

아오이도스

...안 돼. 종이가 너무 작아. DOSSSS의 멤버는 6명이야. 모두가 풀 사이즈로 사인할 수 있을 정도의 종이를 준비해 오도록.

 

배달부

아, 아니, 저기... 수취 확인 사인을요...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