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1화 DAUGHTER
어느 날, 아우라이 그랑데 대공역을 여행하고 있던 단장 일행 앞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가 날아왔다. 편지를 보낸 곳은 칠도제국연합에 속하는 로안느 섬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조직, 리에 파미유라는 곳이었다.
잉그베이
로안느...? 그리운 이름이군.
루리아
편지를 보낸 리에 파미유라는 곳은 로안느 정부 타도를 내걸고 있는 반정부조직이라고 적혀 있네요.
오이겐
반정부조직이라니, 흉흉하구만...
라캄
어디 보자... "정부 잔당이 농성하고 있는 부유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서... 예전에 그 요새를 답파한 적 있는 영웅 잉그베이와 그가 소속된 기공단에게 조력을 요청하고 싶다" 라...
잉그베이
오호... 라캄, 그 편지 나한테도 보여 줘 봐.
잉그베이는 흥미가 생긴 모양인지 의뢰가 적혀 있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내용을 훑어본 순간, 그는 얼굴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잉그베이
...단장. 미안하지만 이 의뢰 건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들어줄 수 있겠나.
그의 이름은 잉그베이. 그 옛날 "겉멋과 기행의 기공단"에서 단장을 맡고 있던 남자다. 그는 전 공역을 아우르는 경험을 가진 전설의 기공사라고 불리고 있었다.
잉그베이
의뢰 내용만 보자면 우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나라의 권력다툼이다만... 난 이 로안느 섬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어.
루리아
이유라고요...?
잉그베이
그래. 이 로안느 섬에는... 내 딸이 있을지도 몰라.
비이
그 너덜너덜한 편지를 보낸 사람 말야? 어떻게 아는데?
현역에서 은퇴했던 남자가 복귀한 이유는 어느 날, 그의 딸을 자처하는 인물이 보낸 한 통의 닳아빠진 편지 때문이었다.
루리아
그 편지에는 "구해줘" 라고 적혀 있었죠...?
잉그베이
편지에 적혀있던 날은 10년도 훌쩍 지난 날짜였다만 말이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서인지 어디서 보냈는지는 끝내 찾아낼 수 없었어. 하지만 오늘 이 편지에 적혀있는 글자... 난 이걸 본 적이 있어. 몇번이나 되풀이해 보았떤 그 "구해줘" 라는 글자와 같은 필적이야.
잉그베이의 말을 듣자마자 단장은 "가자"고 말했다.
루리아
후후, 그러게요! 당연히 가야죠!
잉그베이
메르시. 고맙다, 단장. 그 편지 속의 "구해줘" 라는 글자가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었다. 내 여행의 끝도 머지 않은 모양이군.
비이
......
이윽고 그랑사이퍼는 로안느 섬을 향해 방향키를 꺾었다.
루카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군. 내가 리에 파미유의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루카브다. 그리고 이쪽은 귀공들과의 연락을 맡았던 부관 에리카다.
에리카
안녕하세요. 에리카라고 합니다.
잉그베이
...!
루카브
단장 공, 이번에 우리 의뢰를 받아들여 준 것에 감사한다.
[아직 정식으로 받아들인 건 아냐] -> 선택
[감사를 표하기엔 아직 일러]
루카브
성급하게 굴어서 미안하다. 물론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판단해도 상관없다. 그럼 바로 본론에 들어가도록 하지.
여기 로안느 섬의 상공에 떠 있는 부유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영웅 잉그베이를 거느리고 있는 귀 기공단의 힘을 빌리고 싶다. 얼마 전 고생 끝에 우리 리에 파미유는 지금까지 폭정을 일삼아 온 로안느 정부를 타도할 수 있었다. 허나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부 수뇌부는 우리에게 구속되기 전에 요새로 숨어들고 말았지.
비이
편지에도 쓰여 있던데 그 부유요새라는 건 뭐야?
루카브
별의 민족의 유적이다. 패공전쟁기에 군사거점으로 쓰인 모양이다.
잉그베이
...그렇군. 그래서 거기를 공략하려는 건가.
비이
알고 있어?
잉그베이
내가 이 방패를 주운 게 거기거든. 이미 20년 전의 이야기다만... 그때는 폐허였어.
루카브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침입자를 막기 위한 강력한 광선을 쏘아내더군. 그 탓에 배와 동료들을 잃었다. 아마도 정부 측에서는 요격 장치를 기동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거겠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요새에 진입한 경험이 있는 영웅 잉그베이와 그가 소속되어 있는 기공단에 협력을 요청하게 된 거다.
에리카
그 요새에는 별의 민족이 남긴 이형의 병기가 잠들어 있다는 전설도 있어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유익한 정보와 전력이 꼭 필요하거든요.
루리아
별의 민족이 남긴 이형의 병기... 그런 것이...
비이
그나저나 여긴 괜찮아? 저거, 우리 위에 있는 거 맞지? 지금 광선을 쏘기라도 한다면...
루카브
광선은 강력하지만 사정거리가 짧다. 게다가 저 요새는 자력 비행도 불가능한 모양이더군. 뭐, 그만큼 편리한 물건이었다면 애초에 로안느가 연합에게 착취당할 일도 없었겠지.
잉그베이
연합... 칠도제국연합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오래되긴 했지만, 로안느는 취약한 입장이었지?
루카브
그 인식 그대로다. 이 나라는 연합에 정치와 경제를 휘어잡힌 채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강요당해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합의 앞잡이가 된 현 로안느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리에 파미유를 결성한 것이다.
루리아
그러고 보니... 어떻게 잉그베이 씨가 저희 기공단에 있다는 사실을 아신 건가요?
루카브
정보수집에 능한 에리카가 독자적인 정보망을 펼치고 있었던 덕분이지.
에리카
...영웅 잉그베이에 대한 정보는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요.
잉그베이
......
루카브
부유요새에 방문했던 경험은 물론, 각지에서 수많은 전설을 남긴 잉그베이의 영웅담은 차원이 다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잉그베이
상황은 대충 이해했어. 우리에게 내전을 위한 용병으로 차출되어 달라는 이야기로군. 내가 부유요새에 갔던 건 옛날 이야기고, 그런 정보라도 상관없다면 가르쳐줄 수 있다만...
어떡할 건가? 단장. 나는 상황을 보니 협력하게 될 것 같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내란이다. 단장이 개입할지 어떨지는...
[협력하는 건 좋지만...]
루카브
그렇게 된다면 이쪽으로서는 기쁠 따름이다만... 뭔가 문제라도 있나?
단장은 "잉그베이의 딸을 찾는 걸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잉그베이
단장...
라캄
뭐, 그러게. 우린 이 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루카브
좋다. 그 건에 대해서는... 에리카, 네게 일임하지.
에리카
뭐!? 아, 아니지... 네!
단장은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루카브
그럼... 우선 여기에 익숙해져야겠지. 에리카가 시설을 안내해 줄 거다.
에리카
아, 알겠습니다. 그럼 여러분, 이쪽으로...
갑자기 침착함을 잃은 에리카가 인솔하는 대로, 일행은 정부의사당을 떠났다.
1-2
에리카가 안내하는 대로 시설을 한 차례 돌아본 일행은 의사당에 접해 있는 안뜰을 산책하고 있었다. 리에 파미유 구성원들이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 대단히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에리카
...여기는 정부 요인들이 얼마 전까지 사용하고 있던 시설이야. 통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하리라고 생각되지만 뭔가 부족한 게 있으면 말해 줘.
루리아
감사합니다, 에리카 씨!
에리카
후후... 그럼 한동안은 자유시간으로 할까? 다들 편하게 지내.
루리아
네~에! 비이 씨, 정원을 좀 더 탐색해 봐요!
비이
하하... 참, 루리아 녀석은 기운도 좋다니까~ 그나저나 부관 누님, 괜찮은 거야? 요새는 그대로 있는 거지? 엄청 느긋하네.
에리카
느긋하다고...? 아하하, 그렇게 보이나?
비이
응?
에리카
이것도 루카 오빠의 작전이야. 우리는 이 나라를 녀석들에게서 해방시킨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저 요새로 도망친 정부는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는 상태지. 식량은 있는 것 같지만 말야. 저쪽의 사기가 아직 높은데 우리가 쳐들어가 봤자 오히려 적에게 유리해질 뿐이잖아? 그러니까 시간을 들여 점점 말라죽게 만들고 있는 거야.
라캄
서두를 필요 없다는 건가. 오히려 저쪽에서는 빨리 덤비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에리카
분명 그럴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이 의사당 좀 봐. 호화롭지?
에리카는 양 팔을 펼치더니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에리카
국민들에게 고통스러운 생활을 강요하면서 놈들만이 윤택하게 지내고 있었어.
나는 어렸을 때 배가 고파서 어쩔 줄을 몰랐던 나머지 나무 껍질을 벗겨 삶아먹을 정도였지. 배급이 너무 적어서 친구랑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한 끝에 말야...
라캄
그런 일이 있었나...
에리카
하지만 놈들에겐 그런 경험이 없어. 이렇게 많은 술과 식량을 쌓아두고 있었을 정도니까. 지금은 동료들이 마을로 나가서 빈곤한 가정에 나눠주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이 남았지. 그러니 한동안은 저 낡아빠진 요새에서 가혹한 생활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 지금까지의 우리처럼 말이야...
잉그베이
......
에리카
요컨대 녀석들이 안절부절못할 때를 노리고 있는 거야. 동료들끼리 싸우게 될지도 모르지. 아, 물론 배로 도망치지 못하게끔 계속 감시를 붙이고 있어.
오이겐
합리적인 작전인 것 같군. 적의 연대의식에 금이 가면 쓸데없는 싸움도 줄어들 테니.
비이
그럼 이번 의뢰는 무난히 끝나려나?
에리카
응... 하지만 염려되는 것도 있어. 요새로 도망친 정부 측에는 앤더슨 대장이 있거든.
잉그베이
호오...
라캄
앤더슨? 대장이라면 군인인 거야?
에리카
응... 게다가 말도 안 되게 강해. 군인들로부터의 신뢰가 엄청 두터우니 군의 사기는 낮아지지 않았을 수도 있어. 좀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서, 저런 정부에 있어도 앤더슨만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었어.
조심해. 국내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니까. 엄~청 큰 도끼창을 들고 있어.
비이
자, 장난 아니네... 방심하면 안 되겠어...
에리카
너무 융통성이 없어서 정부 내에서도 거슬려하는 모양이니까 파고들어갈 틈새는 있을 것 같지만 말야.
오이겐
오호... 조사가 철저한걸. 정보수집에 능하다는 얘기는 그냥 추켜세우느라 하는 소리가 아니었던 모양이네.
에리카
이래 봬도 부관이니까. 하지만 정보 수집뿐만은 아냐. 라이플 다루는 실력도 리에 파미유 내에서 제일이라구.
루리아
그렇군요!
비이
오~ 그거 대단한걸!
에리카
그러니 제대로 된 전력이라 생각해 줘. 뭐, 당신들 기공단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발목 잡지는 않을 거야.
라캄
상황은 대충 이해했어. 그럼 난 이 근처의 기류에 대해서나 조사해 볼까.
오이겐
나도 이 사이에 무기를 손질해 둬야겠군.
단장 일행은 각자 그 자리를 떠났고, 어느 샌가 정원에는 에리카와 잉그베이만이 남았다.
에리카
...루카브가 당신과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니까 나중에 의사당에 들러 줘.
잉그베이
잠깐...
여성 병사
저, 저기...! 혹시 잉그베이 님이신가요?
잉그베이
그렇다만... 넌 누구지?
여성 병사
아아... 영웅 잉그베이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잉그베이 님의 엄청난 팬이에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식사라도 하러 가지 않으시겠어요? 아, 지금은 무리라면 저녁에라도...!
잉그베이
마드모아젤. 미안하지만 한 마을에서는 한 여자만 두기로 정했다.
여성 병사
죄,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실례했습니다!
잉그베이
실례같은 건 전혀 되지 않았어.
에리카
말해두는 걸 잊었는데, 부디 쓸데없는 소동은 일으키지 말아줬으면 해.
잉그베이
이런, 내 불찰이군. 저쪽의 여성이 너무나 매력적인 나머지 무심코 말을 걸고 말았다.
여성 병사
에, 에리카 부관! 방금은 제가 먼저...
에리카
후우... 잘 들어.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여성 병사
아, 예...! 즉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리카
소문에 걸맞는 카사노바시군. 이대로 두면 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 당장 의사당으로 가 주겠어?
잉그베이
미안하지만 이 장소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지. 간단한 안내도라도 그려 줄 수 있겠나?
에리카
...저쪽에 보이니까 헤맬 일이 없지만... 뭐, 좋아.
자. 그럼 빨리 가.
잉그베이
메르시.
...가기 전에 한 마디만 해도 되겠나?
에리카
뭔데?
잉그베이
나는 널 만나고 싶었어, 마이 스위티.
에리카
......
잉그베이
에리카... 그 편지를 내게 보낸 건 너지? 기공단에 온 편지도. 내 앞으로 전해진 딸의 필적과 똑같았어. 무엇보다 그 모습... 정말 많이 닮았군. 어머니는 잘 계시나?
잉그베이는 품에서 낡은 편지를 소중히 꺼내더니 에리카 앞에서 펼쳤다.
에리카
...그래. 그 편지는 분명 내가 보냈어. 하지만 잉그베이라는 영웅은 없었고. 당신에게 기대한 내가 바보였지.
잉그베이
...편지에 적힌 날짜는 10년도 전이더군. 내용은 흐려져서 읽을 수 없었다만, 무슨 일이 있었나?
에리카
"리에의 악몽"... 20년 전, 당신이 마을에 남아있어 주기만 했다면 엄마가 돌아가실 일은 없었어...!
잉그베이
...!? 그래... 그녀는 죽은 건가... 어째서 그렇게 된 거냐. 에리카, 대체 무슨 일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에리카는 잉그베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을 채 빠르게 그 자리를 떠났다.
잉그베이
......
홀로 남겨진 잉그베이도 험악한 표정으로 그곳을 떠났다.
1-3
제롬 대통령
어째서 내 치세에 이런 일이... 다른 대통령일 때였으면 좋았을 텐데...
로안느 정부 중신 1
그때 정부군을 둘로 나누지 않고 루카브와 정면승부했다면 지금쯤 우리가 완전히 승리하지 않았을까?
로안느 정부 중신 2
아니지... 전력차도 못 읽나? 이 부유요새로 도망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이미 전멸했을 걸세!
로안느 정부 중신 3
애초에 부유요새로 도망칠 게 아니라 다른 섬으로 망명하는 게 낫지 않았겠나? 어째서 이런 곰팡내나는 곳으로 숨어든 거지!
부유요새의 관제실에서는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는 제롬 대통령, 그리고 정부 수뇌부가 의논을 나누고 있었다.
???
"아하하하하하하! 활기찬 대화인걸! 다들 엄~청 즐거운 모양이야!"
토끼 인형을 들고 어린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부인인 캐롤린이었다.
???
제롬 대통령,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앞으로의 방침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정부군의 대장을 맡고 있으며,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한 원숙한 노병이 대통령에게 말을 걸었다.
제롬 대통령
오오, 앤더슨!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가르쳐 주게.
앤더슨
예. 저희 군은 부유요새에서 농성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반면 반정부조직은 요새에서 쏘아내는 광선을 경계한 나머지 섣불리 공격해 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요컨대 고착상황입니다만, 언젠가 칠도제국연합에서 이 이상상황을 눈치채고 원군을 보내올 것입니다.
제롬 대통령
응, 그래. 그래야지. 우리는 그때까지 시간을 벌기만 하면 승리한다는 거군.
앤더슨
그 말씀대로입니다. 타국과의 통신 설비가 없기 때문에 아직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기공정으로 피난을 겸해 직접 원군을 요청하는 방법도 검토했습니다만... 적도 전력을 다해 쫓아올 것입니다.
로안느 정부 중신 1
되든 안 되든 병사만이라도 보내 보면 어떤가?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부하의 생명을 걸고 도움을 요청하자고 하는 중신을 향해 앤더슨 대장은 냉정히 대답했다.
앤더슨
현재 배의 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만약 격추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절망적인 상황이 될 겁니다. 그러니 배를 사용하는 것은 최종 수단으로 삼고, 그걸 쓰는 것은 우리가 탈출할 때여야만 합니다. 목숨을 건 탈출이 되겠지요.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닙니다. 즉, 전략적으로 판단했을 때 아직 우리는 한 척도 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요새가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이고 광선의 사정거리도 충분했더라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을 겁니다만...
제롬 대통령
으음... 역시 유적은 유적이야. 여기저기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군.
앤더슨
수많은 조건하에 현 상황을 검토해 보면 농성을 계속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제롬 대통령
흠...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게 확실한 거겠지. 알겠네. 군의 지휘는 일임하겠네.
앤더슨
예.
제롬 대통령
뭐, 우리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은 연합 측에서도 금방 알아챌 거네. 머지 않아 원군이 오겠지.
그때, 관제실 구석에서 우아하게 차를 홀짝이고 있던 남자가 대통령 쪽으로 다가왔다.
???
대통령... 정말 그걸로 괜찮겠습니까?
제롬 대통령
하인리히인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그의 이름은 하인리히. 로안느 정부의 재무 고문으로, 대통령의 조언자 역을 맡고 있었다.
하인리히
정보기관의 연락에 따르면 반정부조직은 영웅 잉그베이가 속해 있는 실력 좋은 기공단을 고용한 모양이더군요...
제롬 대통령
뭐라고... 그 녀석들, 어느 새 그런 짓을! 어째서 더 빨리 보고하지 않은 건가!
앤더슨
영웅 잉그베이라...
하인리히
이거 참, 실례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열변을 터트리시는 동안 끼어들 여지가 없어 저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지요.
앤더슨
그렇군... 앞으로도 그 입으로 홍차를 맛보고 싶다면 중요한 이야기는 가장 먼저 말하도록.
하인리히
예, 그럼요.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잠잠해졌던 관제실은 하인리히가 꺼낸 정보로 인해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1-4
정부의사당의 집무실, 루카브의 곁에는 잉그베이가 서 있었다.
루카브
영웅 잉그베이, 귀공의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잉그베이
영웅 소리는 필요 없어. 그리고 감사 인사는 협력하기로 한 단장에게 말해 줬으면 좋겠군.
루카브
그래, 물론이다. 사례도 지불하도록 하지. 내가 리에 파미유를 결성했을 때가 딱 저 나이쯤이었다. 특별한 인연이 느껴지는군.
그럼 미안하지만 바로 부유요새를 공략하기 위한 작전 회의에 들어가도록 하지. 저게 내뿜는 광선의 대책 말인데...
잉그베이
그 전에 질문해도 되겠나?
루카브
상관없다만...
잉그베이
리에의 악몽이란 대체 뭐지? 리에 마을과 관련된 거겠지?
거기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 에리카의 어머니였지. 만난 곳은 거기가 아니지만 나도 몇 번인가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루카브
알고 있다. 거기는 나의 고향이기도 하니까. 유감스럽게도 귀공을 본 기억까지는 없지만.
잉그베이
그런가... 어렸을 때의 너와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르겠군.
루카브
리에의 악몽이라...
한편, 정부의사당 정원에서는 단장 일행이 리에 파미유 동지들의 연회에 어울리고 있었다.
에리카
...리에의 악몽은 약 10년 전에 로안느 정부가 일으킨 스캔들을 말해.
루리아
스캔들...이요?
에리카
유죄인지 무죄인지,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단죄당한다는 뜻이지.
그날, 내 고향 리에 마을에서는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차례차례 반란 용의로 연행되었고, 엄마를 포함한 100명의 어른들이 옥사했어. 남은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마을은 소멸했어. 그 고아들 중 하나였던 루카브가 중심이 되어 조직을 만들어 주었지.
근 10년 간 조직은 커졌지만, 다른 창설 멤버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루카브와 내가 최고참 멤버야.
오이겐
그거 괴로운 이야기군...
라캄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건데?
라캄의 물음에 에리카는 고개를 저었다.
에리카
당시 아직 아이였던 우리들은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밝혀낼 수 없었어. 지금도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남은 것은 100명이 죽었다는 사실뿐이야.
잉그베이
...내가 이 곳을 떠난 후 그런 일이 있었나.
루카브
결코 치유되지 않는, 바닥 없는 고통을 원동력삼아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잉그베이
에리카의 과거에 대해 뭔가 기억하고 있는 게 있나? 리에의 악몽이 벌어졌을 즈음, 에리카는 내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너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녀석은 내 딸이다.
루카브
그렇게 알고 있어. 영웅 잉그베이에 대한 이야기를 에리카에게서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잉그베이
그런가...
루카브
리에의 악몽이 일어나기 전의 에리카는 잉그베이에 대해 강한 경애심을 품고 있었다. 잉그베이라는 영웅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어머니에게서 항시 듣고는 했었으니까. 그렇게 자란 에리카에게 있어, 무슨 일이 있을 때에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란 영웅 잉그베이였던 거겠지.
잉그베이
영웅이라...
비이
저, 저기...
에리카
응? 왜애? 비이 군도 술 마시고 싶어?
비이
아니, 그게 아니고... 아까 너희 둘이 말다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연회에 참가한 사람들도 다들 수근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루리아
저기... 저기, 에리카 씨는 혹시...!
에리카
아~ 응. 누가 들어버린 건가~ 뭐, 그런 데서 이야기했으니... 응. 잉그베이 딸이야.
라캄
진짜야? 드디어 만난 거야?
오이겐
이거 놀랐는걸...! 오기 전에 이 섬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듣기는 했다만...
[드디어 만났구나] -> 선택
[정말 잘 됐다]
에리카
아... 그러지 마. 감동의 재회같은 것도 아니니까.
비이
응...? 그치만 그 녀석은 줄곧 딸을 만나기 위해서...
오이겐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거 아냐. 아버지와 딸이라는 건 그렇게 쉬운 관계가 아니니까 말이지... 나도 배운 바가 있고. 아무튼 지금은 재회한 것에 일단 안심하는 정도로 해 두지.
루리아
네에~? 그, 그런...
라캄
뭐, 오이겐 말대로야. 이후로는 당사자들끼리 얘기하면 돼. 게다가 우리에겐 일이 있잖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모든 게 끝난 후에 할 일 아냐?
루리아
네에...
에리카
너, 너무 풀 죽지 마! 그렇게까지 신경쓸 거 없는데... 괜히 미안하네.
부모자식간의 불화를 눈치챈 단장 일행이 입을 다물자, 오히려 에리카가 당황했다.
에리카
그, 그럼 묻겠는데... 그 사람 어떤 사람이야? 그... 잉그베이 말야.
루리아
잉그베이 씨는 항상 동료를 생각하고 정말 믿음직한 분이세요!
비이
훌쩍 사라질 때도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곤경에 처하면 구하러 와 준단 말이지~
에리카
동료들에게는 신뢰받고 있구나.
오이겐
녀석은 자신의 직감으로 행동하는 대담한 남자지만 인정머리가 없지는 않아.
라캄
기공사로서의 경험도 풍부하지. 의뢰를 자기 혼자 해결하는 경우도 많아.
에리카
그래...
구해줄 때도 있구나...
홀로 중얼거리는 에리카의 말은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고, 그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루리아
에리카 씨...?
에리카
어? 아, 미안. 무슨 얘기였어?
비이
이번 일 마무리되면 뭐 하고 싶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부관 누님은 뭐 하고 싶어?
에리카
뭐...?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이라... 으음...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여...
비이
여?
에리카
연애같은... 거라던가?
일동
......
비이
어, 의외로 평범하네.
에리카
그, 그야 평범하지...! 아니면 뭐. 내가 연애하는 게 뭐 잘못됐어?
루리아
그래요, 비이 씨! 실례라구요!
비이
아, 아니... 미안. 그런 뜻은 아니었어!
라캄
지금까지의 생활에선 겪기 힘들었던 일이잖아? 좋은 것 같은데.
병사 1
에리카 부관! 연애하고 싶으시면 제가 입후보해도 될까요?
에리카
탈락입니다~
병사 1
그런...!
오이겐
푸하하하하하...!
그러나 무심코 내뱉은 에리카의 "연애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이들이 앞다투어 후보로 나섰다.
병사 2
에리카 부관의 애인 결정전이 여기서 개최된다고 들었는데요...
병사 3
출전 선수 등록은 어딘가요?
병사 1
결정전 아니라고! 나만 신청한 거라고!
병사 2
그 신청 거절당했잖아!
에리카
아... 진짜! 이상한 소리 하지 말 걸. 자, 해산! 모이지 마!
루리아
하와와... 에리카 씨, 엄청 인기가 많으시네요...!
에리카
에이 설마. 반쯤은 놀리느라고 분위기 타고 온 거야.
오이겐
글쎄다. 몇 명은 눈빛이 진심인 것 같던데.
에리카
뭐, 뭐어...? 말도 안 돼.
라캄
아하하하!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상이 기다릴 것 같군!
루리아
그러게요. 어서 평화로워지면 좋겠네요, 에리카 씨.
에리카
응... 고마워. 로안느는 분명 평화로워질 거야.
자, 오이겐이랑 라캄, 더 마실 거지? 쭉쭉 마셔~
라캄
어, 어어...
오이겐
헤헤, 이거 고맙군!
잉그베이
그나저나 에리카는 너를 꽤나 신뢰하고 있는 것 같던데, 너희의 관계성은 어떻지?
루카브
아, 언제부턴가 나이 많은 내가 에리카를 돌봐주는 사이 자연스럽게 여동생같은 존재가 됐다.
잉그베이
오빠 역할인 네가 곁에 있었기에 에리카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가. 고맙다, 루카브.
루카브
인사할 필요 없어. 나도 동포들과 의지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잉그베이
훗... 재미 없는 남자로군. 애인은 없나? 혹시 에리카라던가...? 설령 그래도 신경쓸 거 없어. 내겐 아무 말도 할 권리가 없으니까. 행복하게 해 줘라.
루카브
아니... 에리카와 그런 관계가 된 적은 없다.
잉그베이
그런가. 따로 사귀는 여자가 있나?
루카브
잉그베이, 나는 동정이다.
잉그베이
......
어, 어어... 그래... 훗, 그거 좋군. 새하얀 지도같은 느낌인걸. 스러진 동료들을 두고 혼자서만 연애같은 걸 즐일 수는 없다는 건가?
루카브
...타고난 성격 때문이다.
잉그베이
그거 더 마음에 드는군. 이번 일이 일단락되면 술이나 한 잔 하지 않겠나?
루카브
술...?
잉그베이
여성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 제대로 설파해 주고 싶군. 실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겠어. 나를 위한 보수는 그거면 충분하다. 어떤가? 물론 평화로워진 로안느에서 말이지.
루카브
...생각해 보지.
잉그베이
약속한 거다.
루카브
그럼... 시간이 아깝군. 슬슬 회의를 재개해도 되겠나?
잉그베이
그래... 그럴까.
일행들은 그렇게 각자 리에 파미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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