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소중한 당신에게 - 제4화 안녕하세요, 어디 아픈 데는 없죠?
4-1
제4화 안녕하세요, 어디 아픈 데는 없죠?
I Hope You're Feeling Well
아오토
크윽...!
오리베
어이, 어떻게 된 거야? 맞고만 있어서는 이걸 돌려받지 못할 텐데?
아오토
......
오리베
모처럼 내가 상대해 주고 있는데 말야. 조금은 재미있게 해 달라고.
아오토
......
오리베
...하. 이번에는 입도 안 열겠다 이건가? 넌 정말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데에 천재적이라니까!
아오토
큭....!
어떤 폭력이 휘둘러져도, 아무리 자극하는 말을 들어도 아오토는 그저 이를 악물고 저항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리베를 노려보는 눈동자에는 여전히 강한 빛이 깃들어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오리베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오리베
오…… 그래? 이래도 아직 포기 안 한다 이거지.
아오토
......
의식이 몽롱한 상태로도 굴복하는 기색 없이 일어서는 아오토의 모습에, 오리베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오리베
그렇다면 지금부터 참을성을 시험해 볼까. 울면서 무릎 꿇고 미안하다고 빌 때까지 놀아 줄게.
아오토
큭....!
오리베
네 마음이 꺾이는 게 먼저일지, 몸이 망가지는 게 먼저일지. 과연 어느 쪽일까?
아오토
큭....!
(굴복할 수는 없어...! 내가 모두를 지켜야만 해!)
그의 눈에 깃든 빛은 사라지지 않았고, 아오토는 이를 악물며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서 오리베와 맞섰다.
오리베
...넌 미쳤어.
아오토
시끄러워! 너같은 거한테 질 수는 없어...!
무서울 정도의 집념으로 몇 번이나 일어서는 아오토의 기백에 오리베가 약간 기선을 제압당한 그 순간이었다.
오리베
큭....!
아오토
하아... 하아...!
내가 이겼어!
그렇게 외친 아오토의 몸이 지면에 내리꽂혔다.
아오토
컥...!
오리베
하, 잘도...!
장난은 이걸로 끝이야, 아오토. 그 근성은 인정하겠지만 너 너무 기어올랐다? 약속은 지키지. 하지만 넌 여기서 짓밟아 주마. 다시는 개기지 못하게 말이야.
그렇게 말한 오리베가 아오토의 머리를 짓밟을 기세로 발을 들어올린 순간이었다.
???
선생님! 여기예요!
오리베
이런... 운이 좋은데, 아오토.
급한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여러 명의 교사들에게 제압당한 오리베는 짜증난다는 듯이 혀를 찼다.
오리베
이거 선생님들 아니십니까... 무슨 일이시죠?
교사
시치미 떼지 마라! 어느 정도는 눈 감아 줬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쳐!
오리베
호들갑 떠시기는. 친구끼리 싸운 거잖아요? 싸우다 보니 좀 격해졌을 뿐이라고요.
교사
이게 무슨 싸움이야! 아무튼 학생지도실로 따라와!
아리타
다친 학생은 제가 돌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교사인 바베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죠.
오리베를 데려가는 교사들에게 그렇게 말한 아리타는 땅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아오토 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카이
어이, 아오토! 정신 차려!
미쿠
아리타 선생님! 어떡하죠, 아까부터 아무리 불러도 아오토가 대답을 안 해요!
아리타
진정하세요. 의식을 잃었을 뿐입니다.
...흐음. 겉보기에는 상처가 크지 않은 것 같군요. 일단은 양호실로 데려가죠.
안심한 듯이 의식을 잃은 아오토를 들쳐안은 아리타는 미쿠, 카이와 함께 양호실로 향했다.
그 이후, 양호실에서 의식을 되찾은 아오토는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아리타와 동행해서 집으로 귀가했다.
아리타
...잘 들으세요, 키쿠다 씨. 만에 하나라도 몸 상태가 이상하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합니다.
아오토
네. 죄송해요, 여기까지 데려다 주시다니.
아리타
아뇨. 만약 귀가하는 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문제니까요. 솔직히 저로서는 한번 제대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오토
괜찮아요! 꽤 얻어맞긴 했지만 제대로 방어는 했거든요. 게다가 보건실 선생님도 겉보기보다 심한 상처는 아니라고 하셨고요.
아리타
하아... 아무튼 조금이라도 어딘가 이상하다면 금방 병원에 가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아, 잊을 뻔했군요. 맡아두고 있던 게 있습니다.
아오토
……! 이건 오리베한테 빼앗겼던... 선생님이 어떻게?
아리타
바베 선생님이 당신에게 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오리베 씨도 반성한 건지 순순히 넘겨줬다고 하더군요.
아오토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리타
감사 인사라면 나중에 바베 선생님께 드리세요.
그럼 키쿠다 씨, 오늘은 푹 쉬시길. 몸 상태가 별로면 무리하지 말고요.
아오토
네. 안녕히 가세요, 아리타 선생님.
아리타를 배웅한 아오토는 겨우 되찾은 봉투를 한동안 바라본 후, 크게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들어갔다.
아오토
나 왔어, 비.
비
......
아오토
하하, 걱정해 주는 거야? 난 괜찮아.
걱정된다는 듯이 수조 안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비에게 웃어준 후, 짐을 내려놓은 아오토가 책상 위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 놓여있는 것은 아직 열지 않은 편지봉투였다.
아오토
......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편지 고마워요.
...저기, 혹시 제 착각이라면 미안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평소하고 분위기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뭔가 있었던 것 같아서 걱정돼요.
아오토
...역시 그런 식으로 편지를 쓰면 금방 알아차리는구나.
평소보다 글자 수가 적은 편지지에는 아오토를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이 되풀이되어 적혀 있었다.
동그란 글씨체의 편지
그리고 여름방학 얘기 말인데요, 죄송해요. 그렇겠죠. 수험생이니까 여름방학때도 바쁠 텐데.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언젠가 다들 시간 날 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오토
...그렇다. 올 여름에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앞으로 영원히 못 만나는 건 아니다.
그러니 됐어.. 이걸로 된 거야...
후... 윽...!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야. 그 아이를 휘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자식이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기 위해서.)
그녀의 다정함이 배어든 말 하나하나를 더듬을 때마다, 아오토의 가슴이 죄어들었다. 지금까지 아무리 불합리한 짓을 당하면서도 참아왔던 고통이 흘러넘치더니 눈물이 되어 편지지를 적셨다.
아오토
(사실은 만나고 싶었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잔뜩 있었어. 드디어 그 아이와 마주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제대로 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뭘 위해서 그런 놈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던 거지...
...젠장, 젠장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빼앗긴 즐거움에 대한 분노, 그녀를 지켰다는 것에 대한 안도, 그리고 만나고 싶다는 마음.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소리지르고 싶어지는 충동을 억누르며, 아오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4-2
다음날.
소문내기 좋아하는 여학생 1
저기, 들었어? 어제 키쿠다 군하고 오리베 군이 싸웠다는 이야기.
소문내기 좋아하는 여학생 2
들었어 들었어. 심지어 키쿠다 군, 후와 군한테도 찍혔다면서?
소문내기 좋아하는 여학생 1
뭐~? 진짜? 장난 아니지 않아? 그 두 사람한테 싸움을 걸다니.
같은 반 남학생 1
아~ 이거 키쿠다도 끝났구만. 그 둘한테 찍혀서 무사한 녀석 지금까지 없었잖아.
같은 반 남학생 2
소문으로 들었는데, 예전 학생회장이 갑자기 전학간 것도 그 녀석들 짓이래. 자세한 건 몰라도 가족 전부 다 숨겨놨던 비밀을 주변에 발설당했대나 뭐래나.
같은 반 남학생 1
으어... 무섭네. 역시 그 녀석들이랑은 절대 엮이기 싫다.
부자연스럽게 텅 빈 창문 옆의 공간, 그 자리에 앉은 아오토를 멀찍이서 둘러싼 학생들이 소리 죽여 대화를 나눴다. 어제 오리베와 있었던 사건이 순식간에 전교생에게 퍼지는 바람에 아오토는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카이
하아... 완전히 자기들 마음대로 떠들고 있네. 애초에 아오토는 피해자잖아. 왜 아오토까지 나쁜 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미쿠
아오토까지 그 둘이랑 같은 취급을 당하는 건 나도 못 참겠어.
아오토
괜찮아, 난 신경 안 쓰니까.
불만스러운 듯한 미쿠와 카이 곁에서, 줄곧 책상 위에 펼쳐놓은 편지지와 눈싸움을 하고 있던 아오토가 입을 열었다.
아오토
게다가 어떤 사정이 있었든 싸움을 한 건 사실인걸. 자업자득이니까 괜찮아 괜찮아. 며칠 지나면 자연히 사그라들겠지.
카이
낙관적이구만.... 너만 괜찮으면 상관없지만.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해라?
아오토
응. 고마워.
같은 반 남학생 1
어이, 인도! 너 오늘 당번 아냐? 선생님이 부르던데!
카이
윽, 까먹고 있었네! 잠깐 다녀올게.
급하게 사라지는 카이를 배웅한 미쿠는 여전히 편지지와 눈싸움하고 있는 아오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 뒤, 그녀는 결심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미쿠
저기, 아오토.
아오토
응? 왜 그래?
미쿠
진짜 괜찮아? 엄청 심하게 얻어맞았잖아? 의식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나랑 아리타 선생님이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런데 아오토는 괜찮다고만 하고, 병원에는 가려고 하지도 않고.
아오토
하하, 진짜 별 거 아냐. 양호실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 뼈 부러진 데는 없다고.
미쿠
그럴지도 모르지만 역시 걱정된단 말야.
아오토
괜찮다니까. 자전거 타고 논밭으로 돌진했을 때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아.
미쿠
...그렇구나. 그럼 됐지만.
괜찮다고만 되풀이하는 아오토의 모습에, 이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미쿠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미쿠
(정말이지, 옛날부터 다른 사람은 엄청 소중히 여기면서도...)
조금은 자기 자신도 소중히 좀 여겼으면 좋겠네...
아오토
...미쿠? 뭐라고 했어?
미쿠
아니, 아무 것도 아냐. ... 벌써 다 썼어?
아오토
응, 뭐 그럭저럭. 오리베도 근신처분 받아서 조용해졌고, 예전에 보냈던 답장 때문에 걱정할 테니까. 빨리 보내야겠다 싶어서.
미쿠
아... 그렇구나.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고민하지 않았던 거였어.
아오토
응... 결국 재미없기 짝이 없는 평범한 내용만 썼지만, 걱정시키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네.
미쿠
...그 아이는 아오토가 보내는 편지라면 어떤 내용이든 기뻐할 거야.
봉투 너머로 소꿉친구인 그녀의 모습을 좇는 아오토의 표정을 보며, 미쿠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가슴 속에서 희미하게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에는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면서.
4-3
미쿠
하아...지친다.
요즘에는 뭔가 엄청 피곤한 느낌이 든다. 딱히 바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부활동 횟수가 늘어났다던가, 연습이 힘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이 원인일까.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라, 그 아이가 보낸 문자? 뭘까?
안녕하세요. 슬슬 돌아왔을 시간이려나 싶어서 문자 보내요. 미쿠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요즘 아오토, 무슨 일 있었나요? 전에 받은 편지에서 조금 위화감을 느꼈거든요. 제 걱정이 지나친 거라면 좋겠지만요...
미쿠
...역시 날카롭네. 하지만 내가 사실을 말해주는 것도 좀... 으음... 적당히 얼버무려야겠어...
어디 보자... 「난 딱히 들은 게 없는데. 학교에선 평소하고 비슷해. 은퇴시합이 머지 않았으니까 긴장한 걸지도 몰라.」
...응, 이러면 되겠지. 송신.
후우...
예전까지는 그저 순수히 그 아이와 아오토의 사이가 다시 좋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는데. 그 아이가 잘못한 건 아니다. 아오토도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건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마음이 괴롭고 피곤해진다.
......
멍하니 방 안을 둘러보다 책장 한켠에 장식된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아이의 유일한 사진. 역광 탓에 그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핀트도 맞지 않는 실패한 사진. 그 곁에서 괜히 더 선명해 보이는 어린 시절의 나와 아오토가 웃고 있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저건 언제 찍은 사진이더라? 떠올려내려고 기억을 더듬는 사이, 멀리서 그리운 소리가 들려왔다.
흐르는 강물 소리,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 매미 울음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런 소리에 이끌리듯 나는 눈을 감았다.
검은 머리의 소녀
아오토, 미쿠! 할머니네 센베 다 팔릴지도 몰라요!
어린 날의 미쿠
후후, 저 아이는 항상 할머니네 가게에 가자고 하면 엄청 신나하네.
어린 날의 아오토
그러게. 하지만 나도 할머니네 센베 좋아하니까 그 마음은 이해해.
검은 머리의 소녀
빨리요! 여기까지 좋은 냄새가 퍼져서 참기 힘들어요~~!!
어린 날의 미쿠
어쩔 수 없지... 그럼 아오토, 저 아이가 있는 곳까지 누가 먼저 가나 승부하자!
어린 날의 아오토
뭐? 갑자기 왜 그러는데?
미쿠
집이 가까웠던 우리들은 철들었을 때부터 매일 질리지도 않고 함께 놀았다. 맑은 날도, 비 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무엇을 하든, 어디에 가든 셋이 항상 함께였다. 그때는 성별같은 건 신경쓰지 않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로를 향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가족같은 존재. 서로가 너무 좋고 너무 소중했기에, 우리는 언제까지고 함께 있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것은 어린아이의 꿈에 불과하다는 현실과 마주치고 말았다.
어린 날의 미쿠
전학...?
검은 머리의 소녀
...네. 아버지 일 때문에 도쿄로 이사하게 됐어요.
미쿠
더운 여름날 오후, 종업식이 며칠 뒤로 다가온 날의 귀갓길.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우리를 불러세운 그 아이가 꺼낸 이야기에, 나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의심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니.
어린 날의 아오토
...거짓말쟁이.
어린 날의 미쿠
!? 아오토!
어린 날의 아오토
계속 같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검은 머리의 소녀
하, 하지만! 거리는 멀어진다고 해도 가끔 놀러올게요! 그러니까...
어린 날의 아오토
우리 아빠도 그랬어. 돌아온다고 약속했으면서 돌아오지 않았어!
검은 머리의 소녀
……!
어린 날의 아오토
너같은 건 정말 싫어! 네 마음대로 어디로든 가 버려!
어린 날의 미쿠
아오토...!
미쿠
당시 아오토의 아버지는 해외 출장 중 행방불명이 되었고, 친척들 사이에 살아 있는 건 기대하기 힘들 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철들기도 전에 어머니를 잃고 혈육이라곤 아버지밖에 없던 아오토에게 있어 그것은 엄청난 쇼크였다. 당시의 아오토는 자기와 친한 이들이 곁에서 사라지는 것을 엄청나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소꿉친구가 전학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오토에게는 많이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어린 날의 미쿠
......
검은 머리의 소녀
...죄송해요.
어린 날의 미쿠
...사과할 거 없어. 아버지 일 때문이니까 어쩔 수 없는걸. 아오토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그러니까 아까 그 말,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아 줘. 아오토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검은 머리의 소녀
...네. 저는 괜찮아요. 잘 알고 있어요.
오히려 아오토는 아버지가 사라지셔서 외로울 텐데, 저는...
어린 날의 미쿠
...저기, 언제 도쿄로 이사가?
검은 머리의 소녀
아... 종업식 끝난 다음에요. 사실은 더 빨리 갔어야 했는데, 그때쯤이 좋을 거라고...
어린 날의 미쿠
그렇구나... 그럼 그때까지는 화해해야겠네.
검은 머리의 소녀
...할 수 있을까요?
어린 날의 미쿠
괜찮아. 이 정도의 싸움이라면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금방 화해할 수 있을 거야.
검은 머리의 소녀
...그래요.
미쿠
당시의 나는 일시적인 싸움일 거라고 별로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음 날이 되면 아오토나 그 아이나 평소대로 이야기하며 화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의 장난이었을까, 다음날. 아오토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선생님께 여쭤 보니 그날 밤부터 고열로 누워 있다고 했다. 결국 종업식 날까지도 아오토는 일어나지 못했고, 그 아이는 아오토와 한 번도 말을 나눠보지 못한 채 이사하고 말았다.
미쿠
...그런 일이 있었지. 그때 일을 생각하면, 편지 주고받는 게 신기할 정도네...
싸운 채로 헤어졌던 그 아이와 아오토는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없이 소원해진 채였다. 둘 다 화해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양쪽 모두와 교류하고 있었던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두 사람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서기로 했다.
소녀의 목소리
“편지라고요...?”
미쿠
그래! 직접 이야기하는 건 힘들다고 해도, 편지라면 진실한 마음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소녀의 목소리
“하지만... 아오토가 귀찮지 않을까요?”
미쿠
그럴 걱정은 없어. 오히려 편지를 받으면 아오토도 엄청 기뻐할 걸. 그때 일에 대해서 아오토도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것 같으니까. 오히려 매년 심해지고 있지...
소녀의 목소리
“심해지다니, 무슨 말인가요?”
미쿠
뭐랄까... 다 자기가 잘못한 거라면서? 너무 깊게 생각하고 있달까. 아, 네 탓은 아니야! 아오토가 멋대로 꼬아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니까.
소녀의 목소리
“...”
미쿠
물론 억지로 쓰라는 건 아냐. 하지만 나는 이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멀어져버리는 게 싫어서...
아, 미, 미안해. 이런 말을 하면 억지로 시키는 것 같겠네.
소녀의 목소리
“...아뇨. 미쿠 말대로예요. 저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사실은 계속 연락하고 싶었어요. 그때 일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어서요. 하지만 괜히 또 상처만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하니 무서워서... 하지만 미쿠 덕분에 마음을 정했어요. 편지 써 볼게요.
답장이 안 온다고 해도, 읽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볼래요.”
미쿠
응!! 읽지도 않고 버리는 짓은 절대 못 하게 할 테니까 안심해!
미쿠
(...그 이후 얼마 안 가서 아오토가 “편지가 왔는데 어떡하지”라며 고민을 털어놨지. 그때 아오토 허둥대는 모습이 볼 만했는데. 그렇게까지 당황하는 모습을 본 건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두 사람이 편지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번 소원해질 뻔했던 두 사람의 관계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화해한 것이 기뻤고, 두 사람이 즐거워한다면 그걸로 좋았다.
...좋았었는데 말이지.
점점 아오토의 입에서 그 아이와 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일이 많아졌다. 그 아이와의 문자에 아오토가 화제로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점점 나만이 두 사람의 의식 밖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가 소중하고 너무 좋은 건 진심이다. 그 아이의 행복을 비는 것도, 아오토의 행복을 비는 것도. 하지만 두 사람이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고 슬프고, 외로웠다.
지금 아오토 곁에 있는 건 나인데. 나도 봐 줬으면 좋겠어. 날 혼자 두지 말아줘.
그 아이와 계속 사이가 좋았던 건 나인데. 나도 신경써 줬으면 좋겠어. 날 두고 가지 마.
아오토가 늘 생각하는 그 아이가 부러워. 그 아이가 늘 생각하는 아오토가 부러워.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독선적이고, 제멋대로인 데다 에고로 가득찬 이런 감정이 있다는 걸 알고 싶지 않았는데.
... 싫다, 나란 애. 정말 싫어
두고 가지 마. 혼자 두지 말아줘. 우리 셋은 늘 함께였는데.
점점 제멋대로가 되어가는 어두운 감정에 뚜껑을 닫듯이, 나는 눈을 감았다.
4-4
고풍스러운 말투의 여학생
고자루~ 미쿠짱, 수고했어요!
그런데 요새 무슨 일 있었나요? 최근 베기에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데...
미쿠
어!? 아하하...그런가? 좀 이르지만 더위 먹었나?
개성적인 말투의 여학생
앗... 그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군. 검도에 있어 더위를 먹는다는 것은 목숨과 관련된 중대 문제. 그렇다면 본인의 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자양강장의 비약을 나눠드리지. 그 어떤 폭염이라 해도 24시간 동안 버텨낼 수 있다네.
미쿠
윽...
(이거 효과가 있기는 한데, 맛이 너무 독특해서 일 주일 정도는 미각이 마비된단 말이지...)
아, 그... 마음만 받아 둘게...
개성적인 말투의 여학생
하지만...
미쿠
괜찮다니깐! 요즘 잠도 잘 못 잤거든. 하룻밤 자면 금방 나을 거야!
고풍스러운 말투의 여학생
으음... 그렇다면 좋겠지만, 혹시 정말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줘!
미쿠
응. 고마워! 그럼 나 먼저 가 볼게! 수고했어!
개성적인 말투의 여학생
음. 잘 가시게.
고풍스러운 말투의 여학생
고자루! 오늘은 빨리 자야 해!
검도부 친구들과 헤어진 미쿠는 무거운 짐을 고쳐멘 후 교문 쪽으로 향했다.
미쿠
어라... 아오토?
문득 교문 쪽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한 미쿠의 심장이 뛰었다.
미쿠
(어제 이상한 생각을 해서 그런가. 괜히 어색하니까 눈치채기 전에 멀리 가자)
그렇게 생각한 미쿠가 등을 돌리는 것보다도 먼저 아오토가 그녀의 존재를 눈치챘다.
아오토
미쿠? 수고했어. 지금 부활동 끝난 거야?
미쿠
아, 그게...응. 아오토도?
아오토
맞아. 카이는 아직 좀 더 연습하다 간대.
미쿠
그렇구나. 예선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아오토
마지막 대회라 기합이 바짝 들어갔나봐.
...모처럼이니까 집에 같이 갈까?
늘 당연한 듯이 되풀이되는 권유였지만 미쿠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거절한다면 이상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한 그녀는 가능한 한 평소처럼 웃어 보였다.
미쿠
그럼 가는 길에 할머니네 가게 들러도 돼? 배 고프거든.
아오토
응. 나도 배 고프니까 가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아오토 곁에 나란히 선 미쿠는 평소와 같은 자신을 연기하며 귀갓길에 올랐다.
아오토
안녕하세요, 센베 할머니. 이거 계산해 주세요.
센베 할머니
어머나, 항상 고맙구나. 그래, 150엔이란다.
응. 딱 맞게 줬네. 미안하구나, 오늘은 센베가 다 팔려 버렸어.
아오토
하하, 괜찮아요. 다음에 올 때 기대하고 있을게요.
미쿠
......
아오토
...미쿠? 웬일이야? 미쿠가 그렇게 고민하다니.
미쿠
어? 아, 응... 배가 고파서 그런지 전부 다 맛있어 보이네. 먼저 바깥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골라서 나갈게.
아오토
……? 응, 알았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끄덕인 아오토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미쿠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센베 할머니
...고민이라도 있니?
미쿠
...고민인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보다 못한 센베 할머니가 말을 걸자, 미쿠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본심을 흘렸다. 그 말을 들은 센베 할머니는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미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센베 할머니
미쿠쨩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할머니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쿠쨩.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결코 잘못된 게 아니란다.
미쿠
……! 어떻게 알았어요...?
센베 할머니
글쎄? 우후후. 할머니는 뭐든지 다 알고 있어. 미쿠짱. 자기한테만 신경쓰고 있으면 중요한 걸 간과하게 된단다. 그러니 고개를 들고 앞을 보렴. 주변을 보는 게 좋을 거야. 답은 분명 거기에 있을 테니까.
미쿠
앞을 보라고요...
센베 할머니의 말을 곱씹듯 중얼거린 미쿠는 마음을 정한 것처럼 끄덕였다.
미쿠
고마워요, 할머니. 좀 편해진 것 같아요.
센베 할머니
후후, 조금이라도 기운이 났다면 다행이구나.
미쿠짱한테 숨겨놨던 센베를 줘야겠어. 아오토짱한테는 비밀이다?
미쿠
후후, 네! 고마워요, 할머니!
센베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 미쿠는 아오토가 기다리는 가게 밖으로 향했다.
미쿠
(고개를 들고, 앞을 향하고, 주변을 본다...)
조언을 마음 속에서 되풀이하며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이윽고 미쿠는 고개를 들고 천천히 눈을 떴다.
미쿠
......
해질녘으로 물든 논두렁 구석, 낡은 벤치에 걸터앉은 채 푸른 하늘 색깔의 편지를 읽고 있는 아오토의 옆모습. 그 입가에 맺힌 미소와 부드럽게 풀린 눈매를 보며, 미쿠의 마음 속에는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솟아올랐다.
미쿠
(...그렇구나. 어느 새 다시 그렇게 웃을 수 있게 됐구나, 아오토)
그 옆모습에 겹쳐보인 것은 먼 옛날의 기억이었다. 소꿉친구가 이사가기 훨씬 전, 천진난만하게 셋이서 웃던 가장 행복한 날의 풍경.
미쿠
(그래... 난 이렇게 웃는 아오토가 좋았어. 하지만 나는 아오토에게 저 미소를 되돌려줄 수 없었어. 그래서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쓰도록 권유한 거야. 그 아이라면 아오토의 웃는 얼굴을 되돌릴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아오토
미쿠? 늦었네... 어? 왜 그래!?
미쿠
어?
깜짝 놀라 달려오는 아오토의 모습을 보며 미쿠는 멍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오토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아니면 어디가 아프다던가...
미쿠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그래? 갑자기.
아오토
왜냐니... 눈치 못 챘어? 미쿠, 울고 있어.
미쿠
아...
아오토의 지적을 듣고 미쿠가 볼에 손가락을 대자 그 끝을 눈물이 적셨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슬픔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고 기쁨조차도 아닌 복잡한 감정이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아오토
아, 아무튼 앉아 봐. 눈 너무 비비지 말고. 붓잖아. 뭐냐... 일단 손수건. 그리고 센베 할머니한테 차가운 것 좀 받아 와야겠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한 것인지, 미쿠를 벤치에 앉힌 후 사라지려는 아오토의 옷깃을 잡아 멈춰세웠다.
미쿠
...괜찮아. 여기에 있어.
아오토
어?
미쿠
부탁이야. 여기에 있어. 혼자 두지 말아줘.…… 잠시면 되니까.
아오토
...알겠어.
미쿠의 간청을 듣고 곁에 앉은 아오토는 약간 주저하면서도 미쿠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이 너무 다정했기에, 미쿠의 눈에서 새로 눈물이 흘러넘쳤다.
미쿠
(내게 있어서는 아오토도 그 아이도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소중한 사람들이야. 그래서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슬프고 괴로웠어.
...나는 두 사람이 웃어 줬으면 했어. 두 사람이 웃어 주고...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나도 그 곁에 서서 지켜보고 싶어. 아오토랑 그 아이랑 나랑 셋이서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어. 그게 내 가장 큰 바람이야)
아오토
...저기, 미쿠. 그...
미쿠
...아오토. 갑자기 미안해.
아오토
어? 아니... 깜짝 놀랐지만 사과받을 일은 아닌걸.
미쿠
...좀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나 봐. 이젠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눈가에 남은 눈물을 닦고 웃어보이는 미쿠 앞에서 아오토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미쿠
아오토.
그걸 막으려는 듯이 미쿠가 아오토의 이름을 불렀다.
미쿠
...집에 가자.
아오토
...응.
붉어진 눈가를 감추지도 않고 활짝 웃어 보이는 미쿠의 모습에 아오토는 그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끄덕였다.
미쿠
(있지, 아오토. 나는 너도 그 아이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부디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 마. 네 몸도, 마음도, 감정도. 네가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너를 소중히 여기고 있어.
나는 이제 참지 않을 거야. 두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도 전부. 그러니까 아오토도 무서워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져. 그러면 분명 그 아이에게 네 마음도 전해질 테니까.)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 미쿠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뜬 후 앞을 보았다. 그 앞에는 지평선으로 사그러드는 저녁놀과 밤하늘을 물들이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