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남자들의 만가

남자들의 만가 - 제2화 옛 가족들과 새로운 아부지

어가푸 2022. 5. 2. 21:00

 

 

2-1

 

 



제2화 옛 가족들과 새로운 아부지
Old Ties, New Allfather

 

 


 

 



스컬
젠장, 이거 놔! 이 몸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천재 스컬 님이라고!

오다즈모키 잔당 1
죄인 주제에 건방지게 입 놀리지 마, 짜샤!

스컬
야, 너! 이 몸을 구해 줘! 원래 가족이었잖아!

오다즈모키 잔당 2
크하하하하! 누가 구해주겠냐, 이 배신자야! 넌 곧 갈가리 찢겨 죽을 거라고!

스컬
쳇, 웃기지 마!


빡빡하게 묶인 밧줄을 풀어보기 위해 몸을 움찔거리던 스컬의 눈에 거대한 요새의 모습이 비쳤다.


스컬
뭐, 뭐야? 저 무식하게 큰 건...

오다즈모키 잔당 1
햐하하핫! 저게 우리 새로운 아지트라고!

 


하늘을 찌르는 산봉우리 사이로 거대한 문을 설치한 아지트는 자연의 요새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거대한 문을 빠져나오자 개썰매에 무기와 탄약, 식량을 싣고 있는 신도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스컬
이게 뭐야... 패싸움이라도 걸 작정인 거야?

오다즈모키 잔당 1
아~니. 이미 싸움은 시작됐다고! 지금 교단 샤마스는 각국에서 날뛰고 있지! 질서의 기공단도 손쓰지 못할 정도로 보중된 악당들이라는 말씀!

스컬
뭐? 구, 구라 까는 건 아니겠지?

오다즈모키 잔당 2
그런 구라를 뭐하러 까냐. 완전 사실이거든.

스컬
제길... 이렇게 제정신 아닌 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아... 그래, 그러면 되겠다. 일단은 동료가 된 척을 하다가...

오다즈모키 잔당 3
야, 너 여전히 마음의 소리 다 새어나오고 있거든? 이 대가리 텅텅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탈출할 기회는 없을 거다. 넌 저기 있는 데스 매치 돔에서 끝장날 테니까!

스컬
데스 매치 돔? 그게 뭔데?

오다즈모키 잔당 1
뭐, 간단히 말하자면 사냥터라고 할 수 있지! 그 안에 집어넣어지면 집행자한테 사냥당해서 끝장나는 거야.

스컬
자자, 잠깐만. 인마! 늬들 진심이냐?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었잖아?

오다즈모키 잔당 2
가족은 무슨~? 아니지. 넌 아부지의 원수라고~!!


"원수"라는 말을 들은 신도들은 일제히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기둥에 묶여 있는 스컬을 노려보았다.


스컬
하, 하핫...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이야... 쳇, 이 몸께서 되고 싶은 거물은 이런 종류가 아닌데 말이지.

교단 샤마스의 신도 6
까불지 마, 당장이라도 찢어죽여 줄까? 응?

빼빼 마른 남자
크헉...

스컬
어이, 너 뭐 하는 거야! 왜 그 녀석을 괴롭히는데!

교단 샤마스의 신도 6
왜는 무슨, 펫을 두들겨패는 게 잘못됐냐? 아앙~?

빼빼 마른 남자
으윽... 죄, 죄송합니다...


스컬은 방약무인한 신도의 행동을 보며 얼이 빠지고 말았다.


오다즈모키 잔당 3
하빈이야말로 지고의 존재! 그러나 그것도 다 교단 샤마스에 들어와야 가능한 일이지!

스컬
하... 이거 제대로 미쳤구만...


아지트 중앙 광장까지 도착한 스컬은 개썰매에서 끌려내려와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스컬
크억...

???
효~효효효~


기묘한 웃음소리가 아지트 안에 울려퍼지자 방금 전까지의 소동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주변 전체가 적막에 휩싸였다.


스컬
뭐야 뭐야, 기분 나쁘게. 갑자기 왜 다무는 거야?

 

 

 


???

나의 가족들아... 다들 잘 지내고 있나~?

교단 샤마스의 신도 6
햐앗하하! 라이로구르 아부지 등장이시다!

교단 샤마스의 신도들
우오오오오! 아, 부, 지! 아, 부, 지! 아, 부, 지!

라이로구르
우리 그루자렛자 님의 영혼에 기도를!

교단 샤마스의 신도들
히이이하앗!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자유와 함께!위~~ 샤마스으!!!

스컬
저 녀석이 새로운 아부지라고...?

라이로구르
우리가 이 하늘을 손 안에 넣기 위해 뛰쳐나온 이 타이밍에 그루자렛자 님의 원수인 스컬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기회! 스컬의 목을 영혼에게 바침으로써 새로운 계시가 내려올 것이~다!

교단 샤마스의 신도들
우오오오오! 아, 부, 지! 아, 부, 지! 아, 부, 지!

라이로구르
우리의 원수, 스컬이여...

스컬
아앙?


기묘한 풍채의 라이로구르가 스컬을 노려보자, 그는 상대의 눈에 깃든 광기 탓에  등줄기가 절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스컬
(이 녀석... 뭐지? 목을 꽉 조르는 듯한 더러운 느낌이 드는데...)

라이로구르
효~효효효효~ 자! 우선은 스컬에게 절망을 맛보여 주거라~!

교단 샤마스의 신도들
햐앗하하하!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자유와 함께!위~~ 샤마스으!!!


광기에 물든 신도들은 스컬을 둘러싸고 신나게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스컬
그, 크어억.. 헤헤... 우, 웃기고 있네... 이 정도로 절망이라고...? 크윽... 너무 상냥해서 희망적인 미래밖에 안 보이는걸...!

교단 샤마스의 신도 8
질리지도 않고 나불거리는구만! 으랴앗!

스컬
크억...!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스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사나이다운 그루자렛자의 뒷모습이었다. 그 등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그는 잡히지 않은 채 먼 곳으로 사라져갈 뿐이었다.


스컬
아부... 지...

 

 

 




2-2


스컬
으, 음.... 뭐야, 감옥 안이잖아? 제길...!

그나저나 그 녀석들, 진짜 사정 안 봐주고 패네... 크으~ 온 몸이 욱신거리는구만...

???
하아... 넌 여전히 소란피우지 않는 날이 없구만?


스컬은 근처 감옥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암흑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스컬
어, 너는! 오다즈모키에 있었던... 그런데 왜 감옥에 있는 거야?

옛 오다즈모키 멤버
왜는 무슨, 간단한 이야기지. 난 라이로구르 녀석이 별로거든. 그랬더니 건방지다면서 여기에 처박더라고~ 크하하하! 말해서 손해봤어!

스컬
멀쩡한 놈도 있어서 다행이네.

옛 오다즈모키 멤버
하, 머리 텅텅 빈 스컬한테 칭찬받을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구만.

이봐... 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질문해도 돼?

스컬
엉? 상관없어. 천재인 이 몸께 흥미가 생기는 건 당연하니까!

옛 오다즈모키 멤버
쳇, 그치만 분명 넌 아버지를 해치웠지. 평범하진 않아... 어떤 의미로는 천재야. 그래서 말인데, 너 말야... 그때 어떤 기분이었냐?

스컬
어떤 기분이냐니... 뭐가?

옛 오다즈모키 멤버
킥... 당연히 아부지를 해치웠을 때 말이지.

스컬
아~ 말로 간단히 표현하긴 힘든데... 뭐랄까, 이 몸에게 제멋대로 자유를 강요한 엄청난 아부지를 말이지... 뭐가 됐든 뛰어넘어야겠다고! 그런 부자유한 자유를 뛰어넘어야겠다고! 라면서... 그, 몸이 확 뜨거워지더라고. 그 뭐냐... 그, 무아지경이라고 하나? 하지만 달성감보다도 뭔가... 이 기분은 뭐지... 쳇...!


어느 샌가 그루자렛자를 떠올리는 스컬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자유라는 단어에 얽매여 있기는 했으나,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 왔던 가족이기도 했던 것이다.


스컬
뭐, 아무튼 주어지는 자유는 사절이다 이거야. 이 몸은 자유를 이 손으로 쟁취할 거니까!

옛 오다즈모키 멤버
그래서 넌 그 손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었냐?

스컬
보면 알잖아, 멍청아. 너덜너덜한 이 손에 뭔가가 쥐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

옛 오다즈모키 멤버
그렇겠지~ ...하지만 그래도 넌 여기 놈들보다 자유로운 것 같은데?

스컬
뭐? 그게 무슨 뜻이야.

옛 오다즈모키 멤버
교단 샤마스에 입교한 놈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조차 포기해 버렸어. 사고가 정지되어 있다고.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자유"라는 이름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속아서 조종당하고 있지. 아니면... 폭력과 재물에 빠진 것뿐일지도 모르고...

스컬
뭐, 잘은 모르겠지만. 이 몸은 그 괴상한 놈의 가족이 되고 싶지는 않아.

옛 오다즈모키 멤버
헤헤, 나도 그래.

???
우우우...

스컬
뭐야, 안에도 누구 있어?

옛 오다즈모키 멤버
아... 지금은 거의 껍데기만 남은 거나 마찬가지지만 원래는 실력이 엄청났던 용병이나, 격투 챔피언도 있고... 뭐 여럿 있어.

스컬
왜 그렇게 강해보이는 놈들이 이런 데에 갇혀있는 건데?

옛 오다즈모키 멤버
글쎄.

스컬
야! 거기 안에 대빵 큰 놈!

???
으어어어어...

스컬
이 몸께서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게 쫄 건 없잖아... 괜찮냐?


스컬은 다른 감옥 쪽으로 말을 걸어봤지만 누구나 겁먹기만 할 뿐, 입을 열려고 들지 않았다.


스컬
뭐, 이제 안심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재인 이 몸께서 왔으니 반드시 여기서 꺼내줄게!

......


그러나 스컬의 마음과는 달리 그 목소리는 감옥 안에서 공허하게 울려퍼질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흘렀다. 감옥 안이 정적에 휩싸인 그날 밤의 일이었다.


스컬
(스컬 주니어랑 발루루간 녀석... 무사히 단장 있는 곳에 도착했을까?)

뭐, 걱정하지 않아도 스컬 주니어는 이 몸을 닮았으니 잘 했겠지. 하핫!

(그나저나 이 몸께서 계속 이런 곳에 있을 수는 없는데...)


어떻게든 탈옥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스컬
아~ 젠장! 천재인 이 몸께서도 알 수 없는 일이 있다니~ 하아.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배 고프네. 밥 정도는 좀 줄 것이지.

 

 

 


???
뀨뀨...

스컬
엉?


배가 고파 주저앉은 스컬의 눈 앞에 귀여운 동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컬
오? 오오오~ 복실복실하고 귀여운데. 야야, 이리 와 봐. 이리 와~

???
뀨뀨...

스컬
오~~~ 착하지 착하지~ 너 진짜 착한 애구나~! 그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 이름 지어줄게!

그럼... 좋아! 스컬 주니어 주니어는 어때?

???
......

스컬
야야,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엄청 괜찮은 이름 아냐? 

그럼... 그래! 다람찌*라고 하면 어떨까? 좀 귀엽지 않냐?

*リス公

다람찌
뀨뀨...

스컬
오, 마음에 들었어? 좋아! 그럼 넌 오늘부터 다람찌야. 잘 부탁한다!

다람찌
뀨...

스컬
응? 다람찌 너 배 고프냐? 아... 잠깐만. 어디 보자...


스컬은 뭐 없나 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강아지용 육포가 들어 있던 것을 생각해냈다.


스컬
스컬 주니어 간식으로 주려고 주머니에 박아 놓고 까먹었었네. 자, 다람찌. 이거 먹어. 사양하지 말고, 응?

다람찌
뀨뀨...


스컬은 다람찌가 볼주머니를 우물거리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스컬
아, 꼬르륵꼬르륵 시끄럽네! 누구야? 누구 배가 이렇게 시끄러워?

어, 나구나! 그래 맞아. 그랬지! 이 몸께서 배가 고팠었지! 아... 저기, 다람찌. 이 몸한테도 조금만 나눠 주면 안 될까?

다람찌
우물우물...

스컬
저기, 다람찌... 쪼금만. 쪼금만이면 되니까... 응? 아주 쪼금만...

다람찌
우물우물...

스컬
큭...!


참지 못한 스컬은 결국 다람찌에게서 육포를 빼앗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스컬
아, 다람찌! 인마, 거기 서! 사양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조금은 사양하란 말이야! 응? 조금만 달라고오~!

다람찌
뀨뀨...


스컬의 손을 빠져나간 다람찌는 경쾌하게 벽을 기어오르더니 천정의 갈라진 틈 사이로 도망쳤다.


스컬
아~ 젠장! 이 정 없는 녀석! 하아... 젠장할. 아무데나 화풀이하고 싶네! 

어? 이 천장... 꽤 낡아빠졌는데...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지! 하하하, 역시 이 몸은 천재라니까! 이런 낡아빠진 벽은 부숴주마!


벽을 기어오른 스컬은 천장의 갈라진 틈을 몇 번이나 후려쳐서 큰 구멍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윽고 그는 천장 위를 따라 교단 샤마스 아지트에서의 탈주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2-3


교단 샤마스가 진을 치고 있는 마을. 그곳은 너무도 황폐해서 버려진 마을로 착각될 정도였다.


라이자릿드
흠... 이 마을은 어디선가 본 기억이...

(크큭... 그런가. 이것도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

노인
왜 그러십니까?

라이자릿드
신경쓰지 마라. 마음의 나침반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지. 그뿐이다.

 

 




이야기는 예전으로 돌아간다. 

렘 왕국에서 모습을 감춘 채 행방불명이었던 그루자렛자. 어느날 그런 그가 무법자 집단 "오다즈모키 갱스터"를 창설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렸을 때부터 사나이다운 그루자렛자에게 동경을 품고 있던 라이자릿드는 그 소문을 듣고 조국을 떠났다.

그리고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미개척의 땅 노스 바스트에 있다는 아지트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루자렛자
너는... 라이자릿드가 아닌가! 여기는 나와 피가 이어진 자가 올 만한 장소가 아니다! 조국에서 빈둥거리며 살아가면 좋을 것을... 어째서 이런 곳에 온 거지?

 

 

 


어린 라이자릿드
빈둥거리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어요. 저는...! 당신처럼 필사적으로 이 목숨을 불태우며 살아가고 싶어요! 결국엔 당신을 뛰어넘는 위대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요!

그루자렛자
호오... 너같은 어린애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크큭. 그 두 눈에 깃든 강한 의지의 빛... 각오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라이자릿드. 나와 혈연으로 이어진 자여, 네게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 내 가족이 되어라!

허나 너는 어디까지나 막내... 수많은 형제들에게서 제대로 배우도록!


그렇게 해서 라이자릿드는 소원대로 오다즈모키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의 남자가 되기 위해 형님들에게 배우며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았다. 어느 날은 구역 다툼 항쟁에 참여하고, 또 다른 날은 대게를 둘러싸고 탐사선의 승무원들과 패싸움... 그리고 다른 날은 그들과 대립하던 마을을 덮쳤다. 

그렇다. 어느 날까지는...





그루자렛자
아들들이여! 너희들이 움직여 준 덕분에 웨이스트 힐 대부분의 마을이 우리 지배하에 들어왔다. 허나! 깊은 산골짝에 있는 마을만은 우리에게 반항의 의사를 내보였다고 하던데...

오다즈모키1
그 마을은 해산물 양식으로 상당히 벌어들이는 것 같던데. 그런데 우리한테 내놓을 식량은 없다고 뻔뻔하게 굴더란 말이지~

그루자렛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들들이여!

오다즈모키2
그야 뻔하죠, 아부지! 쳐부숴 줄 수밖에요~!!

오다즈모키 일당
히얏하하하하!


그렇게 해서 라이자릿드가 소속된 부대는 산골짝에 있는 마을을 습격하러 떠났다. 그러나 현지 상황이 들었던 것과는 달랐기에 라이자릿드는 당황하고 말았다.





어린 라이자릿드
이, 이게 뭐야... 노인하고 여자, 애들밖에 없잖아...

노인
이번에 생각지도 못한 일로 양식에 실패하는 바람에... 마을 남자들은 모자란 식량을 채우기 위해 탐사선에 탄 후로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남은 이들도 간신히 끼니만 이어가는 상황입니다... 부디, 부디 눈감아 주시길...


엎드려 비는 노인의 등 뒤에는 빼빼 마른 여자들과 울 기운조차 잃은 듯한 어린애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라이자릿드
(안 돼... 이런 사람들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어...)

오다즈모키1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냐! 빼앗기기 싫으면 강해지라고! 그게 세상의 이치란 거다!

노인
저, 저희는 오다즈모키 여러분께 반항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이번만은 봐 주셨으면 할 뿐입니다... 제발...

오다즈모키1
시끄러워어어어!

노인
으윽...!

어린 라이자릿드
!?


오다즈모키 일당은 애원하는 노인을 때려눕히더니 공포에 질린 여자들을 위협했다.


오다즈모키1
보나마나 어딘가에 식량 잔~뜩 숨겨놓고 먹고 있겠지? 다 찾아내 주마!

오다즈모키2
히야하하하핫!

어린 라이자릿드
저기! 다들 잠깐만 기다려!

오다즈모키2
아앙? 왜 그러냐, 막내야?

어린 라이자릿드
저기 형님... 이렇게 저항도 못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빼앗아야 하는 거야? 우리 오다즈모키는 마음껏 날뛰는 걸 정말 좋아하지. 하지만 그건 약한 이를 괴롭히는 게 아니잖아? 왜냐면 그건 남자답지 못한 일이니까... 안 그래?

오다즈모키1
......

오다즈모키2
우리가 마음껏 날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항하지 않는 것 또한 이 녀석들이 택한 길이야. 동정할 필요 없어!

어린 라이자릿드
하지만...

오다즈모키1
어이, 할배... 지금 있는 식량만 내놔. 이번에는 그걸로 봐 줄 테니까.

노인
그걸 내놓으면 저희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하시는 겁니까...?

오다즈모키1
그건 알 바 아냐 망할 영감아! 너희들은 너희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란 말이야!


라이자릿드는 오다즈모키가 노인을 걷어차려 하는 걸 보고 자신의 몸을 날려서 감쌌다.


어린 라이자릿드
으윽...

오다즈모키1
너... 그렇게 물러빠져가지곤 강한 남자 못 된다?

어린 라이자릿드
확실히 형님들 말대로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 마을에는 손대지 않으면 안 될까? 응? 형님들!

오다즈모키1
뭐? 너 이 자식, 바보냐!

어린 라이자릿드
크으윽... 형님, 부탁해...!

오다즈모키1
아부지의 명령을 무시하겠다는 거냐?

어린 라이자릿드
커억, 큭...


마을 사람들은 계속 얻어맞으면서도 부탁을 멈추지 않는 라이자릿드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
이 대체 무슨...

오다즈모키3
이봐, 슬슬 충분하지 않아?

오다즈모키1
뭐?

오다즈모키3
막내. 너도 지금 네가 아부지를 거역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어린 라이자릿드
아부지도... 이 마을의 사정을 아신다면 이해해 주실... 거야...

오다즈모키3
좋아. 그러면 아부지한테 가자. 그래서 직접 니 생각을 늘어놔 봐.

오다즈모키1
어이, 마음대로 그런 짓은...

오다즈모키3
막내는 아부지 친척이야. 모르는 일이지...


이렇게 해서 명령에 거역하게 된 라이자릿드는 아지트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루자렛자에게 그 심판을 맡기게 되었다.

 

 




2-4


어린 라이자릿드
......

그루자렛자
우리의 막내여... 자유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적들에게 알랑거려서는 안 된다. 물러서선 안 된다! 반성해서는 안 된다! 망설이지 마라! 망설인다면 네 심지가 흔들릴 것이다. 

지금은 우리를 따라 그저 마음껏 날뛰어라! 거기서 의심이 생겨난다 해도... 한 번 정한 마음을 굽혀서는 안 된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 해도! 그 끝에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어린 라이자릿드
......


오다즈모키 일당이 지켜보는 사이, 그루자렛자는 고개를 숙인 채 들지 않는 라이자릿드를 꽉 껴안았다.


그루자렛자
가족이기에 더더욱 네가 알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삼키고 너를 천 길 골짜기로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겠구나.

어린 라이자릿드
아부지...?

그루자렛자
지금 이 시간부로 라이자릿드를 추방한다.


예상치도 못했던 결단에 오다즈모키 일당들이 술렁였다.


그루자렛자
조용히!

라이자릿드여... 너는 나와 다른 길을 나아가려 하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다시 오다즈모키에 돌아오길 원한다면 남자 중의 남자가 되어 돌아오도록 해라! 

그것이 한 번이라도 너의 아부지가 되었던 내가 주는 단 하나의 조건이다.


냉엄한 결단을 내린 그루자렛자의 눈에 희미하게 눈물이 비쳤다.


그루자렛자
안심해라. 네가 거취를 걸고 지켜낸 마을에는 손대지 않겠다.

어린 라이자릿드
아부지...

그루자렛자
잘 가라, 막내여...!

어린 라이자릿드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깊이 고개를 숙인 라이자릿드는 오다즈모키 일당에게도 감사를 표한 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지트를 떠났다.

그렇게 해서 라이자릿드는 노스 바스트의 산 속에 틀어박혀 남자 중의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었다.





라이자릿드
남자란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했던가...


산골짝의 마을에 발을 들인 라이자릿드와 노인은 자욱한 탄 냄새를 맡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불에 탄 가옥과 나무들이 숯이 되어 나뒹굴고 있어 절로 눈을 감고 싶어지는 참상이었다.


노인
아, 아아... 이 어찌된...

라이자릿드
약자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행위... 이것이 교단 샤마스의...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자유인 것인가?

노인
아, 으...

라이자릿드
......

노인
기다리십시오! 이 꼴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가시려는 겁니까?

라이자릿드
가야만 한다. 놈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거든.

노인
......

라이자릿드
후우... 안내해 줘서 고맙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숨어있도록.

노인
아뇨,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라이자릿드
...!?

노인
마을과 상관없는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계시는데 이 마을 사람이 숨어있을 수는 없습니다...

라이자릿드
크큭... 각오가 깃든 멋진 눈빛이군. 당신도 진정한 남자야. 그렇다면... 함께 가도록 하지.


두 사람은 마을 중앙으로 향하는 길을 위풍당당히 걸어나갔따. 이 마을을 교단 샤마스에게서 돌려받기 위해서.